울산 주상복합 화재 (2020.10.9.) (2)
2020년 10월 8일 목요일 밤 11시 14분쯤.
울산시 남구 달동 33층짜리 주상복합 삼환아르누보 건물 3층에서부터 불이 시작됐다. 11시 48분쯤 소방 당국이 대응 2단계를 발령하자, 10분 뒤 야근자가 속보 자막을 냈다. 이어 자정을 넘긴 시각 <뉴스라인> 진행 도중 앵커가 1보를 전했다. 화면은 불타는 주상복합 건물을 원경으로 찍은 제보 영상을 송출했다. 제보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출처 불명’의 제보영상이었다.
이날 <뉴스라인>이 끝나고 곧이어 새벽 0시 21분쯤부터 뉴스특보를 시작했다. 러닝타임은 계속 늘려 1시간 가까이 진행했다. 그 뒤에 새벽 1시 19분부터 또 45분 넘게 진행해 새벽 2시 5분까지 뉴스특보를 했다.
이런 심야 시간에 돌발적으로 특보를 길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 밤에 뉴스룸에 남아 있는 인력이 별로 없고,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생방송 제작을 그 밤에 갑자기 할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요즘은 심야에 갑자기 기자들을 회사로 들어오라고 지시하기도 어렵다. 한 10년~20년쯤 전 시절엔 집에서 자고 있는 기자들에게 연락해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기자정신’에 호소해 나오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게 전혀 통하지 않는 시대다. 요즘 기자들이 기자정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다음날이 공휴일인 한글날이고 이어 토, 일요일로 이어지는 연휴 전날밤이었다. 요즘은 이런 경우 지방으로, 해외로 놀러들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락해 봐야 그 밤에 달려올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선 우선 근거가 될 규정을 마련해야 하고, 단계별로 담당자를 명시적으로 지정하고, 업무분장을 명확히 한 비상근무체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하며, 평시에 훈련도 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완벽한 규정은 여전히 미비하고, 훈련도 부족하다. 재난방송주관사로서 법에는 재난방송을 위한 인적, 물적, 기술적 기반을 마련하라고 되어 있지만, 취약 시간에 터진 비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비상근무 체계가 완벽히 갖춰져 있지는 않다. 이건 지금까지도 별반 나아진 게 없다. 이게 제대로 갖춰졌다면 비상시 출근해야 하는 직원의 명단이 있어야 할 테고, 해당 직원이 스스로 비상시 맡은 업무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하지만, 명단도 없고, 직원들 스스로가 알고 있지도 않다. 재난이 하필 그런 취약한 시간대에 공교롭게 발생하지 않은 덕에 그냥 넘어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취약 시간에 큰 재난이 발생하면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이날은 어떻게 긴 시간 특보를 할 수 있었나? 크게 2가지 점에서 감사하게도 행운이 따랐다. 첫째는 갑자기 생방송 특보를 해야 할 상황에 이 업무를 무난히 수행할 수 있는 베테랑급 팀장 기자 2명, 즉 당시 뉴스제작부 팀장과 재난센터의 팀장이 공교롭게 회사 부근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퇴근한 뒤였지만 이들은 문자를 보자 부리나케 사무실로 복귀하여 특보 진행을 도왔다. 이들이 어떻게 사무실에 나타났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회사 앞에서 저녁 먹다 튀어 들어왔죠.”
또 하나는 재난방송 전문위원의 신속한 출연이었다. 재난 특보의 성격상 현장에 간 기자들은 라이브 연결 시 대부분 경황도 없고, 취재도 부족해 웬만해선 길게 끌고 가기 어렵다. 스튜디오에 외롭게 앉아 진행하고 있는 앵커도 자료가 없이 머리가 텅 빈 상태로 어떻게든 방송 시간을 채워 나가야 한다. 이럴 때 앵커 옆에 앉아서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과 해설을 해줄 전문가가 있으면 특보를 길게 끌고 가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때마침 화재 전문가 이영주 교수가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화재 소식과 출연 요청을 받고 불과 30분 만에 스튜디오로 달려왔다. 새벽 1시쯤부터 스튜디오에 들어간 이 교수는 고층 건물의 화재 시 전개 양상과 특성, 주민들의 대피 정보 등 요긴하고도 전문적인 정보를 막힘없이 한 시간 가까이 말을 이어가며 생방송을 주도했다. 특보는 새벽 2시까지 순조롭게 이어졌다.
다시 돌아보면, 위 2가지 행운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특보를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도 특보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춰놓아야 한다. 훈련도 충분히 해야 한다. 누가 봐도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갖춰 놓으려 하지 않는다. 재난은 일 년에 어쩌다 한두 번이고, 그것도 취약시간대에 걸릴 확률은 더 낮다. 때문에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 굳이 비상근무체계를 만들어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 없이도 수십 년간 잘해 왔고, 또 무슨 일 생기면 그때 가서 짜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위의 경우처럼 그때그때 행운도 찾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이런 내부 상황을 알 리 없고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기 때문에 '내가 야근할 때 큰 일만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