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 뭐지? 뭐였더라?

마라도 지진(2021.12.14.) (1)

by 가을하늘

2021년 12월 14일 17시 19분. 회의실에서 회의하던 중 보도국 전체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사회부 옆 대형 디스플레이에서 현재 규모 5.3의 강진이 발생했다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제주도 서귀포시 서남서쪽 41km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규모 5.3이면 꽤 큰 지진이다. 본격 지진 관측 이래 2016년 경주 지진이 규모 5.8로 제일 크고, 그다음이 2017년 포항 지진으로 규모 5.4이니, 규모 5.3이면 해역에서 난 지진이긴 해도 피해가 날지도 모르는 수준이다. KBS는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10분 내로 특보를 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규모 5.3 발표가 난 지 5분여 뒤, 기상청이 수동 분석한 상세 정보는 규모 4.9로 다소 하향됐다. 4.9면 30분 안에만 특보를 하면 되지만, 일단 처음에 5.3으로 발표될 때 이미 지진조기경보가 울려서 비상이 걸린 데다 때마침 오후 5시 뉴스를 하던 중이어서 바로 특보를 이어서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재난센터 팀장은 그 시각 5시 뉴스를 진행하고 있던 NS-2 뉴스 부조(부조정실)로 달려갔다. 부조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가관이었다.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TV 화면에는 자동으로 대형 적색 자막이 표출되고, 강한 경보음과 함께 “규모 5 이상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뉴스 속보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음성이 자동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소리를 듣고 저마다 ‘이건 뭐지? 훈련하는 중인가?’ 하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규모 5.0 이상의 지진은 10분 내로 특보를 해야 하므로 거의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여야 하지만,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몰랐고, 그때 KBS가 긴급히 조치해야 할 각자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보도본부 구성원 개개인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고, 잘 모르던 시기였다.

그 시각 스튜디오 안에서 한창 5시 뉴스를 진행하고 있던 아나운서들은 귀에 꽂고 잇는 이어폰으로 들리는 당황한 사람들 소리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있었으나, 부조 내의 뉴스 PD와 CP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여 잘 들리지 않아, 준비된 일반뉴스를 계속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발생 직후부터 온에어 화면에선 ‘삐~삐~삐~삐’하는 경보음과 “규모 5 이상 강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뉴스속보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이 경보음과 안내멘트는 지진 발생 직후 8분간 계속되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게다가 볼륨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현재 방송 중인 리포트의 오디오는 다 이 소리에 덮인다.

뉴스 진행 도중 갑자기 지진 특보로 전환하는 건 쉽지 않다. 특보 전환이 지체되는 사이에도 세팅되어 있던 지진 경보음과 안내멘트는 반복되고 있고, 동시에 화면에는 지진과 관련 없는 리포트가 계속 나갔다. 말하자면, 화면엔 일반뉴스가 나가고, 오디오는 뉴스 리포트상 기자의 오디오와 지진 경보음과 안내멘트가 뒤섞여 나오는, 비정상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약 2분 여가 지난 뒤 앵커가 지진 관련 소식을 전하긴 했지만, “네. 조금 전 제주 서귀포시 서남서쪽 32km 해역에서 규모 5.3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라는 짤막한 한 문장이었다. 그러고는 앵커는 또다시 지진 관련 뉴스가 아닌 다른 뉴스를 전하다가, 잠시 후 AI로 만든 자동 지진 콘텐츠가 가까스로 작동해 지진 특보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지진 특보는 처음 10분간 AI 자동 지진 콘텐츠가 플레이되고, 그 뒤엔 기상청 지진분석과장을 전화 연결해 현재 지진에 관한 개요를 듣도록 돼 있다. 그런데, 기상청 지진분석과장의 연락처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못 찾아 특보 초기엔 연결하지 못했다. 지진분석과장의 전화 연락처는 큐시트에도 적어놨고, 보도정보 시스템 내 여러 곳에 적어 놨지만, 아무도 이 지진분석과장을 연결해야 되는 건지를 모르고, 누가 이 분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담당이 정해져 있지 않아 서로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보다 못한 재난센터 팀장이 직접 지진분석과장에게 연락하겠다며 연락처를 찾으려는 순간, 재난센터 팀장조차도 갑자기 맞닥뜨린 지진 특보에 머리가 하얘지면서, 연락처 적어놓은 곳을 떠올리지 못한다. “뭐지? 뭐지? 그게… 어디 있더라??”

지진처럼 돌발 재난에 대응해 평소 업무분장을 치밀하게 해 놓고 훈련을 성실히 해두지 않으면, 갑자기 특보를 해야 할 상황에 머리는 텅 비고, 생각이 잘 안 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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