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이나 휴일에 지진이 나면?

마라도 지진(2021.12.14.) (2)

by 가을하늘

방송통신위원회 표준 매뉴얼을 보면, 규모 5.0 이상의 지진 발생 시와 지진해일 경보 발령 시, 공습경보 등 민방위경보 발령 시 KBS만 유일하게 10분 이내 특보 방송을 시작해 30분 이상 하도록 되어 있다. 지진은 언제 발생할지 알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KBS는 평일이건 휴일이건, 낮이건 심야건, 취약 시간대이건, 언제든 10분 이내에 특보를 열 수 있도록 대비를 해야 한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인력 운용 체계를 짜는 부서장이 되어 보면 알 수 있다. 24시간 365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에 대비해 10분 내에 방송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니. 그것도 뉴스제작부서는 뉴스제작부서대로, 취재부서는 취재부서대로, 부조 내 기술부서는 기술부서대로. 만약 어느 한 부서라도, 담당자 한 명이라도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방송 시스템은 제대로 온에어 되기가 어렵다.

이 무거운 의무는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을 거치면서 KBS에 부여됐다. 그러나, 한동안은 이 의무가 KBS에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았다. 그런 큰 지진이 몇 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했기 때문에 생각 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몇 번의 인사발령을 거치고 나면 다들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잊고 지낸다. 그래도 문제없이 몇 년은 지나가니까.

지진 발생 시 긴급히 뉴스특보를 여는 절차를 가장 확실하게 잘 아는 부서와 직원은 부조 내 기술 감독과 영상 감독, 음향 감독 등 엔지니어들이다. 이유는 이 부서는 3교대 근무를 하며 24시간 뉴스룸을 지키며 가장 경험이 많고, 훈련도 가장 많이 했고 그만큼 숙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도본부 내 기자들이 돌발적인 재난이 닥쳤을 때 각자의 역할에 대해 잘 숙지하고 있지 못했다. 주로 정시 뉴스 진행하는 것에만 익숙했기 때문에 취약시간 돌발 대응은 익숙하지 못하다. 특히 보도본부는 <9시 뉴스>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때문에 돌발 특보에 대해선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훈련량도 가장 부족했다.

또한, 취재부서 기자들의 경우 9시 출근 18시 퇴근의 통상근무를 주로 하고, 밤 9시 뉴스 때문에 일부 인원이 몇 시간 더 남아 일하는 정도이다. 심야나 휴일에는 당직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취재기자들 중에서 순서를 정해 소수 인원만이 뉴스룸에 남아서 휴일 근무나 철야 근무를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심야나 휴일 등 취약 시간에 강진이 발생해 10분 내에 뉴스특보를 시작하려면 그 시각 통합뉴스룸에 남아 있는 극소수의 인원이 초기 취재와 특보 제작을 막아야 하는 까닭에 어려운 것이다.

이런 취약점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결국 지금의 인력 시스템을 전면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취재기자 인력 운용도 3교대 근무가 가능할 정도로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게다가 교대근무만 운영한다 해서 취약시간 재난방송에 완벽히 해내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낮시간과 같은 규모의 취재 기자를 새벽 심야시간에 운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보다는 취약시간대에 비상상황 발생에 대비해 부르면 언제든 바로 달려 나올 수 있는 인력 풀을 짜서 운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즉 비상근무 시스템이 필요하다. 과거엔 휴일이나 심야에 재난이 터져서 집에 있는 직원을 호출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회사로 달려오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 때문에 근거 규정을 만들고 인력 증원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소집을 명하면 즉각 응소할 대상자, 즉 비상근무 대상자 지정 같은 게 필요하다.

그러나, 효율적인 인력 운용과 주 52시간 등등을 감안해야 하는 회사 경영진은 비상근무 시스템을 갖추는데 소극적이다.

“우리에게 부여된 의무가 너무 비효율적이고, 무겁다”라고 KBS인들이 항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시청자와 여론이 KBS 편을 들어줄 리 만무하다. “KBS의 책무가 너무 무거우니 경감시켜 주자”라고 말해줄 리 없다. 오히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더 뼈를 깎는 노력과 대응 태세를 갖추라는 요구를 한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져만 가고 있다. 이젠 대형 재난이 닥쳤을 때 KBS가 이를 민감하고 신속한 대응을 못하고 선제적으로 특보를 열지 않으면, 여론이 나서서 비난의 댓글을 보내고, 수신료의 값어치를 못한다며 꾸짖는다. 간혹 KBS보다 MBC나 SBS, YTN이 순발력 있게 특보를 열고, 더 충실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마저 있다. 이럴 때는 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의 위상은 여지없이 타격을 받고, 온갖 인터넷 매체나 방통위 등 정부, 국회 등으로부터 꾸지람을 듣는 수모를 겪는다.

그럼에도 왜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왜 이런 미흡한 인력 운영 구조를 개편하지 않고 있나? 그런 재난이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손 놓고 있어도 된다는 건가? 정녕 인원이 부족해서 이런 체계를 만드는 게 불가능한가? 이게 최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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