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가 불바다가 된 시각

고성 산불(2019.4.4.)(1)

by 가을하늘

2019년 4월 4일 목요일 저녁 8시쯤.

사회부 팀장은 그날 일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그날 메인 뉴스에 잡힌 리포트 영상을 검수하고 내일 아침에 낼 기사 원고 몇 개를 봐주면 거의 일은 끝나고 퇴근이다. 이 시간이면 사무실에 앉아 있는 기자도 별로 없다. 주 52시간제 도입과 이런저런 이유로 요즘은 기자들도 일찍 퇴근한다. 적어도 저녁 메인 뉴스가 끝날 때까지는 당연히(?) 남아서 자리를 지키던 풍경은 진작에 사라졌다.


한 귀로는 사무실 TV에서 나오는 타 방송 뉴스를 듣고 있던 그때, 어느 종편 채널 뉴스에서 산불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를 연결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앵커] ...지금 000 기자가 강풍 소식을 전하러 강원도 미시령에 나가 있는데 이 근처에서 또 큰 불이 났다고 합니다. 000 기자를 바로 지금 연결하겠습니다. 000기자, 지금 뒤에도 바로 불길이 보입니다. 근처에서 큰 불이 났다면서요? [기자] “…저희 중계팀은 이 미시령고개가 시작되는 요금소, 그러니까 관통 도로 요금소 앞에 있었습니다. 미시령이 전국에서 가장 센 바람이 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촬영을 하던 중에 근처에서 불꽃이 튀고 연기가 나는 걸 목격했습니다...”


시선을 끄는 타사 뉴스가 나가는 동안 뇌리에 몇 가지 생각이 스친다.

‘서울 산불인가? 아, 강원도구나. 우리 나와바리(담당 취재영역)는 아니군. 근데 우리 회사 기자는 현장에 갔나? 우리 9시 뉴스에서도 저렇게 그림 좋은(?) 곳에서 해야 할 텐데… 아 참, 강릉국 기자는 1보 기사를 썼나? 혹시 산불이 커지면 서울 인력이 지원나가야 할텐데, 설마 이 밤에 인력 소집할 정도로 일이 커지진 않겠지?’

그러고 보니, 다행히 우리 강릉지국 기자도 8시쯤 이미 1보 단신 기사를 써놓은 게 보였다. 일단 사회부 사건팀장이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일은 없는 셈이다. 불이 더 확대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 순간부터는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내심 ‘구경꾼’ 심리가 작동한다. 지금 가장 바빠지는 부서는 ‘네트워크부’다. 지역국 기자나 데스크와 업무 연락을 하고, 지역 기자들의 원고와 리포트를 검수하는 부서다. 사회부 바로 옆에 있다. 사회부 팀장은 네트워크부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슬쩍 쳐다봤다. 그때, 네트워크부의 한 선배가 다급히 강릉 기자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뭐? 뭐라고? 산불이...속초 시내로 번지고 있다고?”


산의 불이 산 아래까지 급속히 퍼지고 있었다. 일이 커지고 있었다. 불똥이 사회부로도 튀려 한다. 구경꾼 심리는 삽시간에 당사자의 심정으로 바뀐다. ‘이웃집 일’이 ‘우리집 일’이 됐다. 이 밤에 인력을 소집해 강원도로 보내야 하나? 설마 설마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싸던 짐을 풀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국장실과 편집부 쪽에는 몇몇 간부들과 기자들이 얘기를 나누며 바삐 오가고 있다. 이제 곧 뉴스가 시작될 시각이다. 직전에 배포된 9시 뉴스 최종 큐시트에는 강릉지국 기자가 뉴스 중간에 전화 연결을 하는 방식으로 한 꼭지만 잡혀 있다. 어느새 뉴스 시그널 음악과 함께 타이틀 화면이 나온다. 뉴스가 시작됐다.

아는 사람만 느낀다. 뉴스가 진행되는 그 시각 현장 상황은 훨씬 심각해졌다. 그러나 9시 뉴스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는 이 심각해진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기가 어렵다. 미리 짜놓은 큐시트를 무시한 채 산불 소식을 크게 벌려 보도해야 할지, 아니면 준비한 한 꼭지만 하고 말지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그 판단을 하기엔 들어온 정보는 너무 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