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산불(2019.4.4.)(2)
화마가 속초로 접근하던 그 시각 <KBS 9시 뉴스>가 시작됐다. 톱은 산불이 아니었고, 전날 치러진 4.3 보궐 선거 관련 소식이었다. 두 번째 꼭지도 선거 관련이었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바로 그 시각에 산불은 이미 속초 시내 일부를 집어삼키는 중이었다. 저녁 7시 17분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발생한 산불은 초속 20미터에 이르는 태풍급 강풍을 타고 속초로 들어와 교동과 장사동 등 곳곳을 집어삼켰다. 주민들은 황급히 대피하거나, 소방서에 구조를 요청했다. 8시 40분쯤에는 52명이 입소해 있는 ‘까리따스 요양원’에까지 접근하더니 9시쯤 불은 거의 바닷가에 닿았다.
화마가 고성군에서 속초 시가지를 절반 가까이 덮는 데 불과 한 시간 남짓 걸렸다. 벌건 불바다 속에서 극도의 공포와 혼란에 휩싸인 그 시각, 정작 서울 본사에서는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정보는 조각조각 정돈되지 않은 채 들어왔다.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저 현장 기자들이 눈으로 보고 여기저기 물어보며 전하는 게 정보의 대부분이었다. 사무실에 남아 있던 기자들도 이 비상 상황에 기여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불은 저 멀리 강원도 산지에서 났을 뿐이고, 수많은 부품이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처럼 모듈화 된 방송 뉴스 제작 체계상 혼자 나서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누군가가 사람별로 명확한 업무지시를 내려야 뭐라도 움직일 수 있는데, 그 시간에 그 역할을 할 사람도 없다.
게다가 메인 뉴스가 진행되는 중에는 예정에 없던 뉴스를 중간에 넣기란 쉽지 않다. 또한 화면을 덮을 적절한 ‘영상’이 없이는 더더욱 그렇다.
뉴스를 시작하고 10분쯤 지나서야 겨우 짤막한 산불 소식을 전했다. 1분 남짓한 취재기자의 전화 연결이었다. 그 뒤 다시 다른 뉴스를 하다가, 한 번 더 연결했다. 그리고는 9시 33분쯤엔 주민 한 명을 전화로 연결해 앵커와 대화를 나누며 현장 상황과 대피 상황을 전했다. 총 3 꼭지였다. <9시 뉴스>에 같은 아이템을 3 꼭지 정도 다뤘으면 꽤 많이 한 셈이다. 타 방송사들의 메인뉴스에선 고성 산불 소식을 거의 다루지 못했으니, 조금 위안이 되긴 하면서도, 그렇다고 우리가 잘했다고 자랑할 만한 일은 물론 아니었다.
앞서 종편의 한 채널은 한 시간 전에 이미 중계차 연결을 했지만, 우리는 한 시간 뒤에 하는 뉴스인데도 중계차는커녕, 우리가 촬영한 ENG 카메라 영상은 한 컷도 방송되지 못했다. 뉴스 시간에 방송된 건 대부분 제보 영상들이었다.
9시가 끝나갈 즈음 퇴근하고 집에 있거나 회사 주변 식당에 있던 사회부 기자들은 회사의 전화를 받고 산불 현장으로 출동하기 위해 회사로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