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산불(2019.4.4.)(3)
그 난리통에 뼈아픈 실수가 있었다. 강릉국 기자가 전화연결을 하면서 ‘지금까지 고성에서 000 뉴스 000입니다.’라고 한 것이다. 산불이 난 현장에서 전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뜻이겠으나, 고성은 강릉국에서 수십 킬로미터가 떨어진 전혀 다른 장소다. ‘강릉에서 전해드렸다’고 해도 될 것을 ‘고성에서 전해드렸다’고 하여,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경험이 적은 저연차 기자였고, 그 기자가 쓴 원고는 본사 네트워크부 데스크가 걸러내지 못한 채 바삐 승인을 내면서 ‘고성에서’로 나가고 말았다. 데스크가 걸러내지 못한 데다, 아직 경험과 기본기가 부족한 저연차 기자들이 언제나 이런 현장에 가장 먼저 내몰리는 점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9시 뉴스가 끝난 뒤부터 주민 대피령이 확대됐고, 산림청이 밤 10시쯤 국가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음에도 뉴스특보가 곧바로 열리지 않았다. 밤 10시 54분에 10분짜리 ‘뉴스특보’를 짧게 한 번 했지만, 11시 5분쯤부터는 정규방송인 <오늘밤 김제동>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인터넷 매체 기자나 정치인 패널(이준석 당시 바른미래당 최고위원과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들이 출연해 산불과 별로 관계없는 얘기들이 오간 뒤, 밤 11시 25분쯤 오늘 방송을 중단한다는 진행자의 황급한 멘트 후 <오늘밤 김제동>은 서둘러 끝이 났고, 산불 뉴스특보가 시작됐다.
일단 연속 특보를 시작한 뒤부터 KBS는 열과 성을 다해 물량 공세를 펼쳤다. 밤새 특보에 특보를 하고도 모자라 다음 날과 다음다음 날 새벽까지 특보를 이어갔다. 특보방송 총 17시간, 특집 뉴스들까지 포함하면 21시간 넘게 특보 방송을 했다.
KBS는 타사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은 분량이었지만, 재난 초기 골든타임에 기민한 대응을 못하면 그 후론 아무리 특보를 많이 해도 소용이 없다. ‘뒤늦은’ 조치가 될 뿐이다. 특보를 열 때 상황이 한창 진행 중이거나 확산되고 있을 땐, 혹은 상황이 종료되지 않고 계속될 것으로 판단되면 주저없이 특보를 계속 편성해가는 게 맞다. 재난과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정규 편성의 틀에 갇혀 잠깐씩 열었다가 닫는 식의 편성으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만 얻어먹을 뿐이다.
사흘 만에 산불이 꺼진 뒤, 재난방송주관방송사 KBS를 보는 안팎의 따가운 시선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4월 9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방송사, 특히 재난방송 주관방송사(KBS)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는 정보 제공자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재난 상황에 대해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알려주면서 국민과 재난지역 주민이 취해야 할 행동요령을 상세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질타했다.
KBS 시청자위원회는 제작진에게 4월 4일 왜 산불 관련 특보가 아닌, 정규 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을 계속 내보냈는지를 따졌다. <오늘밤 김제동> 제작진의 해명은 이러했다.
“...편성본부, 보도본부와 밤 9시 14분부터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재난 방송 주관부서의 준비상황에 맞추어 방송내용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당초 11시에 시작되는 방송시작 시간을 뉴스특보가 끝난 후인 11시 5분으로 조정하기로 했고 정규방송 내에서도 필요하다면 재난 소식을 전달하고자 긴급히 제작진은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보도국 기자를 ‘오늘밤 김제동’ 스튜디오에 출연시켜 관련 소식을 전하거나 혹은 기존의 출연자들이 함께 속보를 소화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일 밤 10시 30분 경, ‘오늘밤김제동’ 정규방송 중간에 뉴스특보를 방송하기로 했다는 결정을 편성본부와 보도본부를 통해 전달받았습니다...11시 23분경, ‘오늘밤김제동’ 정규방송을 중단할 것을 보도본부와 편성본부로부터 요청받았습니다. 이제 제작진은 생방송 출연자 질의응답이 끝난 11시 25분, 즉시 정규방송을 중단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재난 상황에 대한 판단은 제작진이 내릴 수 없는 것이었으며 ‘오늘밤 김제동’의 정규방송 진행 역시 제작진의 독자적인 판단이 아니라 편성본부와 보도본부와의 협조와 지시를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KBS의 매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에 출연해 "국민들이 이번 고성 산불처럼 가장 공영방송 역할을 기대하는 시점에 KBS가 오히려 국민들의 지지를 저버렸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KBS가 주는 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지금 엄청나게 큰 산불이 났고 굉장히 많은 시민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너무 일상적인 방송을 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배신감을 갖게 했다. 최소한 '오늘밤 김제동'을 시작하지 말고 바로 특보에 들어갔어야 한다. 국민들 입장에선 매뉴얼 2단계나 3단계,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위급하다', '빨리 대피하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그 순간 예능이나 드라마, 시사 프로그램을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