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전문채널이 필요한 이유

시스템과 워크플로우를 바꾸자(3)

by 가을하늘

재난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만큼 24시간 365일 대비가 필요하지만, 정작 특보를 할 정도의 재난이 발생하는 날은 일 년에 며칠이 안 된다. 그 며칠을 막기 위해 24시간 대응 인력을 충분히 투입하자니, 비효율로 여겨져 경영진은 좀처럼 그 결심을 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일 년에 몇 번 심각한 재난이 돌발적으로 오면, 대응 절차는 숙달이 안 돼 있으므로 능숙하게 특보를 열지 못한다.

특보를 열어 진행할 제작진이 미리 대기하고 있어야 발생 즉시 바로 열 수 있는데, 상시 대기를 하는 특보 제작진은 따로 없다. 특보를 열려면 연락해서 인원을 불러야 한다. 그나마 출근일이 아니면 부르는데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

YTN과 연합뉴스 TV 등 24시간 라이브 방송을 하는 보도전문채널들은 돌발 소식이 들어와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제작진이 그대로 특보를 진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도전문채널을 제외한 대부분의 방송국은 종합편성채널로서 24시간 라이브 뉴스를 할 수 없다. 교양이나 드라마, 다큐, 예능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편성할 의무가 있고, 이 프로그램들 상당 부분은 생방송이 아닌, 사전 녹화 및 편집 제작물이 많다.

이런 제작물을 방송하는 도중 돌발 재난의 발생으로 기존 편성표를 바꿔 긴급히 특보를 편성하는 건 보기보다 쉽지 않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큰 재난이 발생했다면야 무슨 프로그램을 하든지 도중에 끊고 뉴스특보로 연결해도 되지만, 재난 중에는 애매한 강도의 재난이 올 때가 더 많다. 가령 ‘게릴라성 폭우’라고도 불리는 국지성 집중호우나 대형산불처럼 언제 어느 곳에 피해가 날지 예측이 어려운 경우다. 이럴 땐 특보 시작 시점과 분량, 종료시점을 정하기가 매우 고민스럽고, 자칫 재난을 놓치고 뒷북 특보를 하여 비난을 받곤 한다.

특히 KBS는 재난방송주관사임에도 위에서 언급한 대로 지상파가 갖고 있는 편성의 경직성과 상시 대비 인력 미비 등의 이유로 재난 정보를 24시간 상시 제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가장 잘 갖춰야 할 방송국인데도 ‘24시간 상시 대비’ 수준에는 못 미친다.


이 지점에서 24시간 상시 재난정보 제공과 유사시 즉각 대응이 가능한 별도의 '재난전문채널'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그래서 2021년 8월 ‘재난방송강화종합계획’을 발표하고, KBS가 시범 서비스 중인 UHD MMS(다채널방송) 서비스를 활용해 9-2 채널을 ‘재난전문채널’로 신설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이듬해인 2022년 최종 무산됐다. KBS가 재난전문채널 운영에 필요한 (연간) 예산으로 70억을 요청했으나 방통위가 보장해주지 못했고, KBS 스스로도 재원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뒤 2024년 KBS의 자회사인 KBSN이 보유한 채널 중 KBSLIFE 채널을 기존 교양 다큐채널에서 ‘재난안전채널’로 특화하여 재출범시켰다. 재난안전 관련 정보를 담은 콘텐츠를 24시간 상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2025년 현재 매일 90분간 ‘재난안전 119’라는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제작, 서비스 중이다.

‘재난’에 ‘안전’도 붙인 것은 재난이 날 때만 방송하는 게 아니라, 재난을 예방하고 대비하기 위한 안전 정보 제공이나 안전의식 고취 등 재난과 안전의 모든 영역을 망라해 서비스를 하기 위함이었다. 전통적 의미의 재난뿐만 아니라 생활안전과 산업안전, 그리고 안보에 관한 정보까지 폭넓게 영역을 넓혀 다루며 ‘일상의 안심, 일터의 안전, 나라의 안녕’ 혹은 ‘모두가 안심하는 그날까지, 국민 든든 채널 KBS LIFE’를 슬로건으로 정했다.


그런데 KBSN은 공영방송의 계열사(자회사)이긴 하지만, KBS와 달리 수익을 내야 하는 주식회사이다. 6개 케이블 채널을 통해 본사(KBS)가 만든 드라마, 예능, 스포츠 프로그램 (일부는 자체제작) 등을 내보내며 어떻게든 광고와 협찬, 콘텐츠 판매, 행사 대행 등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회사이다.

재난 안전 관련 프로그램은, 유익하긴 하지만, 드라마나 예능 장르를 능가하는 시청률이나 수익을 기대하긴 사실상 어렵다. 그만큼 충분한 인적, 물적, 기술적 투자를 하기도 어렵다.

이런 점은 다른 상업방송들도 마찬가지다. 돈에 자유롭지 못한 각 방송사들은 늘 재원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부가가치와 효율이 낮은 재난 안전 콘텐츠 제작에 적극적으로 달려들긴 쉽지 않다.

한편으로 보면, 재난 안전 콘텐츠는 꼭 필요하고, 유익한 방송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재난이 매일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난의 예방과 대비, 복구를 위한 정보를 상시 제공하는 방송은 필요하다. 특히, 큰 재난이나 사고가 터졌을 때만 상황 중계식으로 재난방송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미연에 일어나지 않도록 경각심을 고취하고 행동의 변화를 이끄는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이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한해 교통사고로 2천5백 명 이상이 사망하고, 산업재해로 1,000명, 화재로 300명, 실종으로 500명 가까이 사망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안전의 중요성, 안전을 위한 행동요령을 상시적으로 알리는 프로그램을 더욱 많이 해야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렇게 돈을 벌어야 먹고사는 방송사에 재난 안전 방송 제작을 맡겨두지만 말고 필요한 재원을 지원해 줄 필요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유익한 정보를 24시간 상시 제공하는 방송이 필요하다 점은 인정하면서도, 필요한 재원은 알아서 벌어서 충당하라고 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물론 그간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각 부처마다 안전문화 확산을 위해 교육도 하고 홍보 캠페인도 많이들 한다. 2020년엔 국민안전교육 진흥기본법까지 제정됐다. 그에 수반되는 예산도 부처나 공공기관마다 편성되어 있다. 다만, 예산 배분은 파편화되어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얼마면 될까. 우리 국민들이 재난방송에 대해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을지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국민 일 인당 매월 288.55원 정도를 지불할 의사가 있고, 국민 전체로 확대하면 연간 약 1,148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변상규, “조건부가치측정법을 이용한 재난방송의 대국민 편익연구,” <정보통신정책연구> 제21권, 제1호(2014.3), p.80.

재난안전 콘텐츠를 만드는데 국민이 용인하는 재원의 규모는 이런 정도란 얘기다. 이 정도의 재원이라면 24시간 상시적으로 재난안전 정보를 제공하는 재난전문채널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실행이고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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