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아야 할 사모펀드 가이드북 <1화>
사모펀드 업계를 3년 가까이 취재하면서 업계를 조망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만 먹고 있었다. 오랜 고심 끝에 큰 마음을 먹고 올초부터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바 '홈플러스 사태'라는 대형 사건이 터졌다. MBK파트너스의 포트폴리오 기업인 홈플러스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기습 신청했다.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가 됐고 사모펀드 업계 내부적으로도 '핵폭탄'급 임팩트였다. 워낙 큰 사건이라 처음 구상했던 글의 방향성을 일부 수정해야 했다.
그즈음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홈플러스 사태가 첫 주제로 나오는 게 당연지사였다. 여기서 업계라 함은 사모펀드는 물론이고 출자자, 사모펀드를 지원하는 각종 자문사를 통칭한다. 동종업계인 사모펀드 운용사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미치겠네", "우리는 MBK와는 다르다", "사고는 남이 치고 독박은 우리가 쓰게 생겼다" 등등이었다.
어쨌거나 '사모펀드=기업사냥꾼'이란 사회적 인식은 앞으로 더 강해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사모펀드는 사악한 존재이니 우리는 이들을 무시하고 모르는 척 지나가야 할까? 아니다. 오히려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사모펀드 투자는 우리 실생활에도 직접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재테크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당초 이 글의 주제는 개인 투자자를 위한 사모펀드 활용법이었다. 사모펀드의 상장사 투자 종목을 따라잡으면 개인에게도 투자기회가 올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취재 현장에서 꾸준히 투자 성과를 지켜봤는데 현실은 달랐다. 생각보다 사모펀드의 국내 상장사 투자처 중 성공한 케이스가 많지는 않았다. 엘리트들이 즐비하고, 또 투자가 집행되기까지 수많은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투자 전망을 교차검증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획단계부터 꽉 막혀있던 상태에서 글 방향성에 결정적 조언을 준 인물이 있었다. 굴지 사모펀드 소속인 L 부장이다. "투자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사모펀드 설명서를 주제로 쓰는 게 어때요?" 그 한 마디가 아니었으면 글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사모펀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사모펀드 담당이라고 하면 '옵티머스 펀드'를 먼저 거론하기도 한다. 2019년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한 라임자산운용의 투자상품이다. 옵티머스 펀드는 사모펀드를 공모펀드로 쪼개 판매한 경우였다.(여담이지만 라임사태가 터지기 2년 전인 2017년 초 라임자산운용 원모 대표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었다. 라임이 업계에서 주목받던 시절이었다. 이땐 미래를 꿈에도 몰랐다.)
이 글에서 다룰 사모펀드는 옵티머스 펀드와 같은 공모형 펀드가 아니다. '기관전용 사모펀드'를 뜻한다.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금융감독원의 서슬퍼런(?) 관리와 감독을 받고 있다.
공모펀드는 누구나 투자금을 댈 수 있는 상품이지만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기관투자자만 출자자로 참여할 수 있다. 사모펀드에 투자금을 제공하는 대표 기관투자자는 그 유명한 국민연금공단이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는 물론 글로벌 사모펀드들의 큰 손이다. 개인은 이 펀드에 출자를 못 한다. 그러니 라임은 잊어버리셔도 좋다. (그런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에서 기관전용 사모펀드를 사칭해 개인들에게 투자를 권유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앞으로 자주 나올 키워드를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같은 뜻이지만 한글, 영어 등 용어가 혼용될 수 있다. 나머지 단어는 그때그때 설명을 추가하거나 따로 섹션을 만들어 정리하겠다.
GP=General Partner로 사모펀드 운용사를 말한다. 편의상 사모펀드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GP가 투자를 책임지고 펀드를 굴리는 주체다. 투자 무한 책임을 지는 주체다. 사모펀드 운용사는PE(Private Equity)라고도 한다.
LP=Limited Partner는 펀드 출자자다. 기관전용 사모펀드의 출자자는 기관투자자 한정이다. 기관투자자에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각종 공제회와 은행, 증권사, 캐피탈사 등이 포함돼있다.
펀드는 투자금을 담는 그릇이다. GP는 돈 그릇을 들고 다니면서 투자금을 기업에 쏴준다고 보면 된다. GP가 굴리는 펀드는 사모펀드다. 영어로는 PEF(Private Equity Fund)라고 부른다. 프로젝트펀드와 블라인드펀드로 나뉜다.
인수금융은 GP가 투자처 지분 등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끌어오는 대출금이다. 레버리지 투자 수익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을 살 때 집을 담보로 주택담보대출금을 조달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엑시트(Exit)는 GP가 투자금을 회수하는 걸 말한다.
사모펀드 업계를 3년 가까이 취재하면서 많은 점을 느꼈다. 사모펀드 존재는 우리와 동떨어져보이지만 사실은 실생활 깊숙이 침투해있다.
주방용기 브랜드로 유명한 락앤락, 가구를 새로 구비할 때 방문하는 한샘, 유제품으로 유명한 남양유업이 사모펀드 소유 기업이다. 빙수 디저트 카페로 유명한 설빙은 UCK파트너스에 인수됐고, 요거트 아이스크림 돌풍을 불러온 '요아정'에도 사모펀드가 진하게 얽혀있다. 소비재는 그나마 PE 진출이 적은 편이다. 소부장 등 B2B 기업 중에는 사모펀드에게서 투자를 받거나 사모펀드에 인수된 곳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PE는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악어새,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의 비주력 사업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이후 새로운 원매자에게 매각한다. 매도인에게는 불필요한 사업이었을지 몰라도, 새 인수자에게는 미래 먹거리 사업이 될 수 있다. PE가 임시 보호자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기업들이 리밸런싱을 할 수 있는 셈이다.
너무 거대담론만 얘기한 것 같다. 재테크 투자자인 우리도 사모펀드의 동향은 지켜봐야 한다. 이들이 주목하는 섹터가 어디인지, 어느 기업을 높게 평가하는지를 지켜보자. 개별 투자에서 실패는 할 수 있어도 이들의 투자 뷰는 적중률이 괜찮았다. 우리가 신규 투자처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