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체험에 관하여

소비의 아웃소싱에 대한 생각

by 실제사막

요즘 보면 생각보다 대리만족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유튜브 같은 비디오 플랫폼일 것이다. 최근 보면 요즘 사람들은 무언가를 직접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대리적 만족감을 느끼려고 한다. 사실 이는 개인에게 있어서 굉장히 효율적인 전략일지 모른다. 우리에 금전은 제한되어 있어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다양한 쾌락들을 (대부분 쓸모없는) 즐길 수 없다.

그렇지만 라캉의 말처럼 사람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듯, 이러한 쾌락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것을 욕망하게 된다. 이러한 무한에 가까운 욕망적 대상과 자신의 육신적 한계에 대한 결과물이 바로 이러한 대리만족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행위를 아웃 소싱한다. 쾌락을 아웃 소싱한다.

아마 자본주의적 쾌락에 최종단계가 아닐까 한다. 드디어 인간은 소비마저 아웃 소싱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 누구도 직접 등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영화를 직접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책을 직접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어떤 연애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직 대타자,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불분명한 타인에게서 대리적으로 만족감을 얻고 싶어 한다.

이는 마치 영화와 같다. 인생은 영화와 달리 생략할 수 없고 편집될 수 없다.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도 똥을 안 싸러 갈 수 없고 누구도 노력 없이 성과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아웃소싱은 다르다. 이러한 불쾌한 부분과 노력이 거세된 체 오직 성과만이 남게 된다. 마치 영화와 같이.


과연 이러한 행위가 과연 실제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남길 것인가? 경제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 이는 결국 이윤율 저하의 경향과 동일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자본주의는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보자. 과연 이러한 대리만족이 과연 직접적인 생산물의 소비를 증가시킬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광고효과로 소비의 생산을 촉진시키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리만족을 했는데 소비할 요소는 없을 것이다. 이는 전체적인 경향을 파악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소비의 감소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영화 요약본을 다 본 상태에서 그 영화를 볼 것 같은가? 당신이 책 요약본을 본 상태에서 본 상태에서 그 원전을 일일이 읽겠는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이다. 마르크스는 생산 시간의 감소와 유통시간의 감소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더 나아가서 소비시간의 감소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소비의 대상조차 압축하고 있다!


그렇다. 자본주의는 소비마저 시장화한 것이다!


이러한 요약본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단가가 싸다는 점이다. 시간적으로든, 아니면 금액적으로든. 영화 한 편을 보려면 10000원이 넘는 금액과 2시간의 시간, 교통비와 영화관에서의 추가 소비가 들어가지만, 영화 요약은 10분의 시간과 광고 한편이 전부일 것이다. 소비는 위축될 것이고, 결국 자본 시장 총체적 이윤은 저하할 것이다.


행위의 아웃소싱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원하는 스트리머나 유튜버에게 금액을 지원한다고 하여도 그 스트리머의 시간적 한계 때문에 소비는 제한될 것이다. 즉 이러한 금액은 결국 소비되지 못하고 적채 된다. 라파르그의 말처럼 새로운 자본가 괴물이 눈물을 흘리며 끝없이 소비해도 쌓여만 가는 그 자본 말이다! 드디어 자본주의 인간들은 소비에 지쳐 소비마저 외주화 시켜버렸다.


이는 소위 “인셀”문화와 연관이 깊다고 생각한다. 인셀들은 연애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의 부족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취하길 바란다. 그러면 연애라는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 필요가 있을까? 끝없이 소비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노고와 시간은 “비효율적”인 게 아닐까? 나는 취미생활도 해야 하며, 친구들과 같이 놀기도 해야 하고, 자기 개발도 해야 하는데 이러한 시간 낭비는 정말 “효율적”인가? 그렇기에 우리는 연애조차 아웃 소싱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에서의 노동 시장의 감소는 결국 고스펙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며, 결국 이러한 행위 이외의 것은 모두 아웃 소싱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결국 자본주의는 소비마저 아웃 소싱해 구조조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것은 과연 문화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문화는 결국 경험이다. 어떠한 경험을 하느냐가 복합적으로 엃혀져서 새로운 경험을 창출해 낸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문화적 체험이 제한된다. 왜냐하면, 이미 편집된 아웃소싱의 결과물만 우리는 습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소련의 1차 문헌을 접하지 못한다면, 수정주의적 역사관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리스 문화가 없었다면 르네상스가 올 수 있었을까? 그렇다. 자본주의는 문화를 압축하며, 파괴한다. 자본주의가 문화를 늘리는 경향이 있겠지만 그만큼 문화를 파괴하는 경향 또한 존재한다는 것도 고려해라! 인기가 없는, 시장성이 없는 문화는 사장된다. 자본이 집중될수록, 이미 실패했다고 검증된 문화에 대한 고찰은 더더욱 힘들어진다.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너무 많은 양의 정보는 자본주의 시장 필터에 의해 걸러져, 오직 같은 품질의 작품만 나오게 된다.


이를 대리만족에 적용해보자. 내가 햄버거를 먹었다고 하자. 내가 느낀 햄버거의 맛은 다른 사람들이 느낀 햄버거의 맛과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의 아웃 소싱은 모든 사람의 햄버거 맛을 동일화시킨다. 왜냐하면 오직 아웃소싱 당사자만이 햄버거의 맛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맛에 대한 해석은 결국 문화적 다양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자본주의는 소비의 경제체제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무한한 성장성 때문에 자본주의의 본질마저 자본주의화 해버렸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체험을 다양화해야 할까? 아니면, 체제의 종말을 가속화하기 위해 더 열심히 아웃 소싱해야 할까? 결국 우리는 체험해야 한다. 그러나 체험에는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방향성은 명백하다. 체험만이 다양한 전략과 사고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노동대중들에게도 이러한 체험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직접 소비하라! 그리고 체험하라!


그것이 자본주의에 의해 왜곡된 인간상을 복원할 것이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다양성에 대한 견해를 더 공고히 해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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