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라는 함정

우리는 정말 민주적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by 실제사막

우리는 현재 대의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과연 한국뿐일까요? 전 세계 대부분이 아마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정말 민주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민주, 즉 democracy는 인민독재체제입니다. 즉 대중이 국가를 지배하는 체계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대중이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가요?


10.29일 장애인 시위가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오후 1시부터 서울 1호선을 가로막았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6월 예산안에 장애인 이동권 관련 예산을 집어넣겠다고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 발생한 시위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장애인들은 시위를 이어가지 못했다. 경찰들이 무력을 사용해 강제로 퇴거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일부 시민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장애인들의 불편과 분노에 공감하기보다는 오히려 장애인에게 분노의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당신도 가해자야! 지금 교통 방해하고 있는 거라고."

내가 흥미롭게 봤던 점은 프랑스와 한국의 시위에 대한 반응 차이였습니다. 한국은 시위에 대해 부질없고 피해를 끼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프랑스는 강력한 정치적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시민들의 태도가 이해가 갈 수도 있습니다.

결국 시위란 정치적 의사표현이며, 이것이 결코 반영되지 않는다면, 결국 부질없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점에서 시민들은 이러한 부질없이 자신에게만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끝내길 간곡히 바랬을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시위의 결과가 유의미한 기여가 있다고 시민 스스로가 생각했다면, 아마 이러한 발언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이러한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지 못한, 시민과의 약속을 배신한 정부에 대해 같이 규탄하고 시위에 동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민의 행위의 도덕적 정당성은 구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 남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시위가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대표를 뽑는 게 아닌 우리의 지배자를 뽑는다는 생각에서 기인합니다. 대통령은 시민의 대표가 아니라 시민을 지배하는 지배 자리며, 국회의원이나 선출직 공무원 또한 그렇습니다. 모든 투표는 그나마 나은 지배자를 모셔서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운 삶을 요구하는 태도에 불과합니다.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국회의원 직업 구성을 봐 봅시다. 국회의원 직업 구성을 보면 16.7%가 금융/기업가, 16.1%가 공무원, 14.5%가 직업 정치인, 14.1%가 교수, 10%가 법조인, 9.8%가 언론인 6.5%가 군인이다. 과연 이러한 직종이 86.5%의 인민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이건 러시아 차르정 시절에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에 가깝지 않을까요?


현재 국회의원의 공약 이행률은 47.8% 현재 대통령 공약 이행률은 17.5% 전임 대통령의 공약 이행률은 42%입니다. 누군가는 서로 42%가 높네 아니면 17.5%가 어쩔 수 없는 환경이네라고 비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계약에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할 일에 40%밖에 안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사람은 분명 계약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다음 계약이 연장되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계약이 이행하지 못했음에 대한 책임도 같이 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이러한 책임을 충분히 지고 있을까요. 여전히 정치적 책임만 강조하는 한국 정치에서 이러한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표로 심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착각에 불과합니다. 조삼모사와 같은 원숭이들은 주어진 선택지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8개에서 7개로 줄어든 것은 엄연히 사실이고, 지난번보다 생활 수준이 감소할 것임은 명백합니다. 물론 이러한 태도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어진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려는 태도는 아무런 행동 없이 불평불만하는 사람보다 훨씬 가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태도,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삶을 더 낫게 하거나 세상을 더 낫게 하리라는 생각은 제가 보기엔 그저 지적 게으름 또는 현실에 대한 도피에 불과해 보입니다. 다시 투표로 돌아와 보죠. 우리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은 2개뿐이며, 이들은 그다지 큰 차이조차 없습니다. 여기서 누가 낫네 아니네는 결국 위에 말한 조삼모사의 논리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 투표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1인 1표가 우리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왜곡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모든 관심사에 동일한 정도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자신 주변의 생존권을 가장 우선시하고, 타인의 생존권에 대해서 는 관심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 주변보다 타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데 있습니다. 만약 내가 하는 일만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된다는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어떨까요? 그러나 이렇게 침해된 이후 약간의 이득을 모두가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여기서 1인 1표가 효과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막아줄 수 있을까요? 성소수자 문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이 생각하는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중요도와 성소수자가 생각하는 성소수자의 문제에 대한 중요도는 차원이 다를 것일 것이며, 장애인 문제에 대한 장애인이 생각하는 중요도와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중요도 또한 그럴 것입니다. 개인이 파편화되면 될수록 우리의 삶은 모르는 다수에 의해 휘둘리는 그런 끔찍한 미래를 1인 1표는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선출직 공무원 직업이 뽑히는 이유는 지역별 선거구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면서 대가족과 집성촌을 형성했던 옛날이라면, 이러한 지역구 선거구는 큰 의미가 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삶이 유사해서 공감대가 형성되기 쉽고 요구하는 것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는 다릅니다. 현대의 도시는 자기 옆집에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개인들이 파편화되어 있고 그만큼 직업군과 이해관계도 파편화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끼리 아무런 이해관계와 유대관계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대표로 뽑아야 한다면, 사회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엘리트를이 뽑히지 않을까요? 사실상 투표가 지배층을 인정하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홍보기관으로 전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 근본적인 문제가 또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결국 누구에게도 자발적으로 표가 가지 않습니다. 내가 원해서 뽑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뽑아야 해서 뽑기 때문입니다. 현재 두 대통령 후보자의 호감도가 2:8이라는 사실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두 후보가 명확히 차이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소규모 반대자와 찬성자의 힘이 강해집니다. 이러한 대립의 해결은 결국 하던 데로 하자 혹은 누더기에 가까운 개혁이라고 결론을 낼 수밖에 없게 되며, 모든 개혁이 좌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좌절은 결국 극단화를 불러일으킵니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투표제도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이렇습니다.


1. 대표성의 상실

2. 세력 극단화를 야기

3.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선택에 대한 영향력 상실


그렇다면, 이건 민주정일까요? 우리는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을 뽑으며,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영향력이 거세되어 있고, 극단적 세력만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과연 민주적인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적어도 국회에서 만큼은 결국 자신이 자신의 가상 선거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자신과 이해관계와 유대관계가 맞는 사람들이 선거구에 모이게 되며, 이러한 영향력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게 되겠죠. 또한 이러한 선거구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후보를 직접 선출할 수 있게 되면서 시민의 대표성과 정치적 영향력이 다시 회복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PC에 대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