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1년. 대학교에 발을 들이자마자 과 동기, 선배들과 여러 행사 또는 술자리를 거치고 난 3월 중순이었다. 아직은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씨여서 그런지 고등학교 때부터 입고 다니던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꼭 부여잡고 도서관에 가던 참이었다. 그때, 무언가 본능에 이끌리듯이 한 포스터를 보고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스피커가 회색 마카로 크게 그려져 있는 락밴드 동아리 구인 포스터였다.
'아, 생각해 보니까 밴드 동아리 진짜 하고 싶었는데.'
통기타로 기본 코드밖에 칠 줄 몰랐던 나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 축제 때 공연하던 밴드 동아리를 보고 저기 들어가면 어떨까 하고 막연히 생각할 때가 있었다. 인싸들의 무대. 반에서 소위 있기 있는 여자애나 남자애들이 주로 밴드를 하곤 했다. 아무튼, 밴드부가 하고 싶다고 저녁 반찬으로 나온 소시지를 씹으면서 부모님한테 얘기했는데, 그들의 눈에 나는 아직 어린 학생이었고 그런 건 대학교 가서나 하라는 말만 전하셨다. 나의 밴드동아리 입부 소망은 그렇게 조용히 잊히는 듯했었다. 그런데, 저 날 칙칙한 동아리 구인 포스터 한 장을 봤을 뿐인데 다시 그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학교에 중앙밴드 동아리가 대중가요, 락, 민중가요 밴드로 세 개나 있었지만 나는 주저 없이 락밴드를 선택했다. 마침 베이스를 연습하고 있었고 가서 베이시스트로 한 자리를 꿰차고 싶은 마음도 컸다. 실력은 미천하지만 가서 열심히 연습하고 배우다 보면 재미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포스터에 적힌 핸드폰 번호를 보고 열심히 문자를 적어 발송했다.
"입부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런가요? 저희는 오디션으로 신입 부원을 뽑아서요! 물론 그전에 놀러 와서 친하게 지내실 수는 있어요."
답장이 생각보다 빨랐다. 아, 오디션이 있구나.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야 정식 부원으로 승인하는 절차를 밟았던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악기까지 다룬다고 생각하니까 절로 콧노래가 나오더라. 그래서 오후 3시 강의가 끝나면 한 번 놀러 갈 의향이었다. 아직 생판 얼굴도 익지 않은 과 동기와 선배들 보다는 이곳이 차라리 더 마음에 맞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엄청 컸다.
하지만 문득 스치는 불안감이 기대로 가득 차 부푼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었고, 이내 온몸의 장기가 무겁게 덜걱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과에서는 과생활에 집중하라고 첫날부터 신입생들에게 세뇌를 걸었고, 힙합 동아리에 들어갔던 야간학부 과 동기는 학생회장 선배의 공개적인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본보기였다. 아차, 동아리에 무턱대고 입부하면 과에서 죽음을 면치 못하겠다는 두려움에 가지 말까... 하고 굉장히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평소 위기가 닥치고 힘든 상황이 폭풍처럼 다가와도 심각한 고민은 잠시, 얼마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마음이 바보같이 편안해지는 성격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는 동아리 문을 똑똑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