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뻑곰 Jan 28. 2023

본격 밴드 동아리 회상하기 -2-

그 당시 동아리와 총학생회가 있던 학생회관은 당시 기숙사인 호연관과 인문사회관 이후로 신식으로 지어진, 나선식으로 3층까지 기둥처럼 관통하여 올라오는 계단과 널찍한 복도가 상당히 매력적인 신축 건물이었다. 내가 가고자 했던 락밴드 동아리는 3층에 있었고, 3층까지 이어진 나선 계단을 걸어 올라 방송부실을 지나간 뒤에야 드디어 부실을 찾을 수 있었다. 누가 디자인한 것인지 문에 달린 정사각형 '306호' 문패 위에는 나무들이 얽혀 사람의 얼굴 형체를 이루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형체 안에는 'Son Of Cain'이라고 적혀있었다. 그 문 너머로, 부실에서는 드럼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드럼 소리가 그렇게 큰지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고 나서는 더 그랬고. 좌우로 때려대는 크래쉬와 스네어 소리가 귀를 찢는 것만 같았다. 그때는 크래쉬니 스네어니 드럼에 대해서 그냥 무지했던 시절.


동아리 방, 줄여서 동방이라고 부르겠다. 동방은 생각보다 넓었고 고등학교 부실과는 차원이 다른 쾌적함이 있었다. 공사장에서 볼 것 같던 대형 빠레트가 있었는데, 왜 이게 여기 있지 싶었는데 나중에서야 드럼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단 같은 거였다. 타마(TAMA) 포스터가 벽에 2장 걸려있었는데, 팔짱을 끼고 있는 데이비드 실베리아와 선글라스를 끼고 악동처럼 웃고 있는 라스 울리히 이렇게 2종이었다. 창가에서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선배. 동방 구석 모서리에 놓여 있는 5기통 타마 임페리얼스타. 피베이 마크6과 마샬 모드포. 커즈와일 SP2에 구형 다트 스피커까지. 10년 전 모습을 회상하는 것이지만, 2011년도를 생각해도 상당히 구식의 장비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장비 퀄리티 자체는 일반 대학 밴드 동아리중에서도 평균 이상이었기에, 부원을 모집할 때도 우리 장비 괜찮다고 굉장히 얄팍한(?) 어필을 많이 했었다(코쓱). 대부분의 장비들이 과거 선배들이 노가다를 뛰면서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마련된 것이었기에 자부심도 강했다.  

어쨌든 갓 들어온 신입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해 보였고 베이스로 들어오고 싶다고 조심스레 자기소개를 간단히 한 다음, 동방에 옹기종기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했다. 음악과 악기에 대해서 논하기에 햇병아리였던 나는 선배들의 합주를 구경하고, 귀가 터질 것 같은 드럼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웃고 있었다.


'들어오길 잘했어.'


신입이 소파에 앉는 것도 힘들었던 시절이라(동아리 내 군기가 조금 빡센 편이었다) 보통은 과학 물상실에 있을 법한, 빵디가 들어가기 좁은 각목 실험의자에 앉아 기타와 베이스를 연주하곤 했다. 어쩌다가 소파에 편히 앉을 수 있는 날도 있어 선배 형 누나와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책장에 꽂혀있는 메탈리카 베스트, 드림시어터 베스트, 머틀리 크루 베스트 등등의 악보를 꺼내보기도 했다. 낡았지만 빼곡히 적혀있는 음표를 보고는 그새 눈이 침침해져 바로 덮기는 했지만.


아무튼, 새로운 내 인생이 동방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본격 밴드 동아리 회상하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