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깊이

너와 함께 하기를

by 수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한 구절을 되뇐다. “봄이 벚나무와 하는 것과 같은 걸 너와 함께 하기를”라고 중얼거리는 사이를 건너 벚나무에서 잎이 지고 있다. 시간이 흐른 것이다. 하얀 벚꽃이 만발하던 한때가 지나고, 꽃잎이 지고, 열매가 맺고, 열매가 지고, 단풍 든 이파리가 낙엽이 되더니, 이제 나무는 곧 벌거숭이가 될 것이다. 파란 하늘에 맞닿는 벚나무의 우둠지가 아득하다.


나무에서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열매가 맺고, 열매가 익고, 단풍이 드는 모든 현상을 동시에 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살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절대로 그런 현상이 일어날 리 없겠지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런 상상으로 하루해가 저물 때가 있다.


우리는 살면서 “너와 함께 하기를” 소망하며 살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소망은 소망으로 끝이 난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슬프게도 영원한 것은 없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변하지 않는 것을 찾다 보니, 사람들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오늘날은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전락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흐르는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살았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이 훨씬 지났는데도 시간을 다루는 법은 알 수가 없다.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도 멈추어버린 듯 지루해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은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가고 있다. 깊은 곳으로 더 넓은 곳으로.


시간이 흘러 흘러 쌓이면 어떻게 될까. 강물처럼 흘러갈까. 바다처럼 넓어질까. 깊어질까. 불필요한 상상이 밀물과 썰물처럼 머릿속을 어지럽게 한다. 아무리 퍼내어도 줄어들지 않는 바닷물처럼 시간은 바다처럼 깊어진 것은 아닐까. 시간의 깊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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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오래된 것들은 감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선명해질 때가 있다. 하필 어느 순간 어느 때를 가리지 않고 떠오를 때가 있다. 퍼올리지 않아도 문득문득 그렇게. 무슨 일인지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있다. 시간의 깊은 곳에서 불쑥 솟아오르기라도 하는 것 같다.


이파리가 진 나무를 보고 있으면, 문득 지나간 시간이 떠오른다. 봄이 되면 새싹이 나듯이 유년을 더듬으면 파편처럼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새싹이 올라온 나무에 기대어 폼을 잡고 사진을 찍던 흑백의 아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그 해 봄, 홍역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해 그 봄을 놓쳐 버렸다. 그때 아프지 않고 다른 동급생들처럼 그 봄을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었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오늘 일어날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오래된 일들은 결코 잊히는 법이 없다. 유년의 기억, 어린 시절의 그때는 퍼내어도 퍼내어도 잊어버리지 않고 생각이 난다. 오래된 기억일수록 더 깊이 뿌리를 내려 잊히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특별한 기억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것들은 흐릿한 듯하면서도 문득문득 수면 위로 떠오른다.


어느 날은 수면 마취에서 깨어났는데 몇십 년을 건너뛰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말을 나도 모르게 중얼중얼 간호사에게 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 앞에서도 끝없이 말을 하는 할머니들처럼. 흑백사진처럼 모호하면서도 유년의 기억들은 시간의 깊이에서 건져 올리는 것이기에 무섭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시간의 깊이에 빠진 것들은 아무리 퍼내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산수가 넘으신 아버지는 나만 보면 골동품 같은 옛이야기를 어제인 듯 두레박으로 퍼올리신다. 천 번을 퍼올린다고 해도 밀물과 썰물처럼 차이만 있을 뿐 항상 그대로 일 것이다. 파도타기를 하듯이 앞으로 뒤로 포말이 쌓이면 어느새 나는 아버지를 닮아가는 침식된 퇴적층이 되어있다.


시간의 깊이에 빠져 오래된 것들은 때론 무기가 된다. 기억을 더듬다 나도 모르게 좌절할 때가 있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일들이 생각이 난다. 때론 그리움이 되었다가. 시간을 되돌린다면 달라졌을까. 후회의 날을 세울 때도 있다. 그 기억은 질서 없이 내 주위를 맴돈다.


오늘 네가 살았던 곳을 지났다. 그곳에는 달이 떠 있고, 토끼가 살고,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이제 그곳은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해 있더라. 너는 없고, 네 기억만 남아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며 함께 하자던 네 말에 냉정히 거절했던 마지막 그날의 네 모습이 시간의 깊이에서 건져 올라왔다. 그때 좀 더 부드럽게 그러자고 한마디만 말해주었더라면 달라졌을까.


벚나무 이파리가 지고 있다. “봄이 벚나무와 하는 것과 같은 걸 너와 함께 하기를” 소망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보내버린 너를 생각한다. 어느 하늘의 별이 되어 샛별처럼 반짝이고 있을 것이라고 잊고 지내다가도 시간의 깊이에 빠지면 허우적거리게 된다. 우물을 퍼올리듯 위로받지 못한 기억을 두레박으로 퍼올린다.


시간의 깊이는 무겁다. 아무리 퍼내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바다처럼 깊은 그곳. 밀물처럼 썰물처럼 왔다가 제자리로 채워지는 것들. 시간의 깊이에 빠지지 않을 수는 없을까. 오늘도 시간이 흐른다. 바다처럼 넓고 깊은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