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장풀은 남보라 물봉선은 붉은보라』 시집
정형무 시인님께서『닭의 장풀은 남보라 물봉선은 붉은보라』 시집에서
긴 겨울 시인의 시집을 펼치며 남보라 붉은보라에 취하다 「생명일여生命一如」를 붙들어 맨다.
산
티끌들 뭉쳐 있고
강
젖은 티끌들 흘러간다
아아, 바람
세상 모든 살다 죽은 조각들
천지에 그득히 떠돌며 한숨을 돋운다
들숨에 교합하고
날숨에 흩어진다
쪼개고 쪼개어져 나뉘지 않는 것들이
떠돌다 한데 뭉쳐 불안한 나를 이루고
대은하의 가장자리
위태로운 별 거죽에 생명이 기생하는 한
태초부터 구물거리던 이 모든 티끌들
흩었다 어우르다 다시 떠돌 것이다
그러하였듯이
그러할 터이다
『닭의 장풀은 남보라 물봉선은 붉은보라』 시집을 읽으며 닭의 장풀과 물봉선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 작은 꽃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이 남보라 붉은보라였으리라.
시인의 시집에는 물이 가득했다.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서 만약에 시집이 하얀 모시적삼이라면, 누군가 그 옷을 꼬옥 돌려 짠다면 그 옷에서는 물기가 뚝뚝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얀 모시적삼에서 떨어지는 물기는 감추려야 감출 수 없어서 누구나 다 볼 수 있다. 시인은 그렇게 다 보였다.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물기 가득하여 굳이 이름 붙여 비유를 한다면 눈물 같은 것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생명은 결국 하나라는 것이다.「생명일여生命一如」를 읽으며, 산도 티끌이 뭉쳐 하나의 거대한 산이라 불리고 강도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물이 되듯이 모든 것들은 하나인 것이다. 시인은 세상의 이치를 보여주는 자다.
“태초부터 구물거리던 이 모든 티끌”이 “흩었다 어우르다 다시 떠돌 것이다”라고, 작아졌다가 커졌다가 하면서 다시 작아지는 이런 현상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이 삶이고, 그 모든 것은 둘이 아니고 결국은 하나라고 말한다. 아웅다웅 싸우면서 서로 잘났다고 저 잘난 멋에 살지만 결국은 너나없이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다. 너무 좋아하지도 말고 너무 미워하지도 말고 그냥 그렇게 그대로만 바라보며 살 일이다. 탐진치는 버리고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수행하면서 살 일이다. “그러하였듯이/ 그러할 터이”기에 세계는 우리는 하나인 것을 시인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생명일여生命一如」의 어려움을 쉬운 시어로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