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걸음/ 이동훈

『몽실 탁구장』

by 수인


오늘은 이동훈 시인의 『몽실 탁구장』에서 「소걸음」을 소개합니다.



소걸음/ 이동훈



바쁠 게 뭐가 있겠어요.

약삭빠르게 잇속 챙기는 재주 없이

어깃장 놓고 실속 챙기는 주변 없이

부지런 떨지 않아도 갈 길 가고 할 일 하며

그저 뚜벅뚜벅 걷는 것이지요.

나의 든든한 맹우*

나무그늘에서 느릿느릿 되새김질한 시간이

집채만큼 덩치를 키우고

불뚝하게 뿔을 세웠지만

진짜 믿는 구석은

비탈밭도 묵정밭도 도랑물도 붉덩물도

예사로 흔덕대며 뚜벅뚜벅 걷는 것이지요.

어쩌다 위아래 치는 꼬리질이

툭툭 던지는 농담 같아

한세상 건너는 구색은 된 것이지요.

당신에게 가는 길도

나에게 오는 길도 소걸음이면 좋겠어요.


*최북, 〈맹우도(猛牛圖)〉




최북은 영조시대 화가다.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자기만의 예술에 대한 끼와 꾼의 기질을 발휘했다고 한다. 신분 차별이 심했던 조선 후기를 예술가의 자존심 하나로 버티며 살았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자신의 눈을 찌르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최북이 그린 맹우도를 보고 시인은 “나의 든든한 맹우”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중섭 화가의 소만 기억하다가 최북의 맹우도를 보니 시인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사람이 소의 등위에 타고 깊지 않은 냇물을 건너는 그림이다. 물결의 흐름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소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바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부지런 떨지 않아도 갈 길 가고 할 일 하며/ 그저 뚜벅뚜벅 걷는 것이지요”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세상을 살면서 약삭빠르게 잇속 챙기면서 산다고 해서 잘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코 서두르지 않아도 할 일 하면서 유유자적하듯 살면 되는 것이다. 맹우도를 그린 최북의 마음일 것이다.


시인은 “당신에게 가는 길도/ 나에게 오는 길도 소걸음이면 좋겠어요”라고 노래한다. 당신에게 가는 길과 나에게 오는 길이 목표라 해도, 우리 삶에 주어진 목표가 있다 하여도 서두르지 말자고, 느긋하게 도착하면 되는 것이다.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최북처럼 그렇게 산다고 하여 무엇이 어쩌랴. 바쁠 게 뭐가 있겠는가. 세상과 비교하면서 자책하지 말고 그냥 살면 될 일이다. 소걸음이면 될 것이다.



최북 맹우도.jf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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