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by 수인


밤늦은 시간 “우아한 거짓말”을 본다. 오래된 영화다. 가슴이 무너지고 숨을 쉴 수 없는 내용이다.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기를. 이제는 너도 힘들어하지 말기를” 유언장에 나온 내용이다. “우아한 거짓말”은 학교폭력 관련 영화다. 이 밤이 새도 이 영화는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가슴이 미어진다. 화면을 거꾸로 돌려 과거로 돌아간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다면, 그 순간을 버릴 수만 있다면, 수많은 생각들이 스친다.


영화는 주인공 천지가 죽은 후 그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소녀의 흔적을 찾아 나서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프다. 도서관에서 발견된 마지막 유언장의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지. 고마워 잘 견뎌줘서”라는 마지막 말에 목이 메인다. 영화를 보면서 내 감정이 많이 이입되어 우아한 거짓말에 온몸이 격해진 탓이리라. 가족과 단절된 채 떠나버린 천지의 아픔이 뼈아프게 오래도록 스며들어 이 밤을 온전히 지새울 것 같다.


천지가 조곤조곤하는 말을 무심결에 흘려보내고 귀 기울지 않는 결과는 가족들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되돌려 생각해보면, 천지는 학교생활의 힘듦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는데 가족들은 일상에 지친 나머지 무심코 흘려보낸 것이다. 무심코 흘려보낸 그 순간들이 그 가족에게는 가장 버리고 싶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천지의 유언장에서 “가끔은 네 입에서 나온 소리가 내 가슴에 너무 깊이 꽂혔어. 그래도 용서하고 갈게. 처음 본 네 웃음을 기억하니까.”라는 내용에 몸서리쳐진다. 그만한 나이 때는 친구만큼 소중한 것은 없었을 테니까. 가슴에 깊이 꽂힌 말이 비수 같아도 처음 본 웃음 때문에 용서한다고 하다니, 천지에게 홀로인 세상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짐작이 간다. 외로움에 지치는 홀로인 것이 싫어서 은따 당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어찌해보지 못한 시간들.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가끔은 그때 그 시간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갈 수 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까.


영화가 끝나갈 무렵 “네가 아무리 근사한 떡을 쥐고 있어도, 그 떡에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너 별거 아냐. 별거 아닌 떡 쥐고 우쭐해하지 마. 웃기니까”라고 만지가 화연에게 한 말이다. 관심 없는 일, 아무것도 아닌 일이면 좋았을 텐데 천지가 보는 세상은 가장 힘들고 무서운 곳이었으리라. 단절이란 절망 때문에 세상과 작별을 한 천지. 비록 영화지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흐릿하게 천지의 웃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 영화의 가족에게 가장 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면 천지와 소통해주지 못한 그 순간들이었으리라. 뼈저린 아픔 때문에 굳어지지 않는 슬픔을 간직한 채로 절망스럽게 살아가는 장면들이 스친다. 영화가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버스에서 만지가 잠깐 조는 사이에 꿈속으로 찾아온 천지와 조후를 한다. 영화는 또 다른 아픔을 만들지 않기 위해 화연을 감싸 안으며 웃음과 슬픔이 공존하는 가운데 마무리된다.


이 영화는 학교폭력이 주 내용이다. 하지만 살면서 우아한 거짓말로 누군가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적이 없는가 되돌아보게 한다. 사람의 말 한마디가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우아한 거짓말이 아닌 진실한 말 한마디가 필요해진 세상이다.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란 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홀로인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 괜찮을 수는 없다. 인간은 세계와 단절되는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맹목적 가치를 버리지 못하는 집착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라.”라고 한 금강경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으련만 세월이 흘러도 제자리걸음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버리고 싶은 순간이 언제였을까. 되돌릴 수 있다면 무엇을 되돌렸을까.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속세에 살기에 순간순간 많은 것들에 집착하면서 살아왔다. 버리지 못한 것들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나를 놓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나를 위해 아등바등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지. 고마워 잘 견뎌줘서”라고 영화에서 나온 유언을 인용해서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버리고 싶은 순간들도 부정할 수 없는 다 나였음을 알기에. 내일 또다시 우아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도 오늘은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