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휴학을 하고 나는 후광을 입으며 돌아온다

하고 싶은 것 하겠다고 좀 놔두라고 선포를 하고

by 수인

순식간에 가을이 사라졌다. 갑자기 추워져 몸이 적응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가을을 건너뛰고 찾아온 겨울이다.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징검다리 하나가 사라진 느낌. 어쩔 수 없이 신발이 젖고 옷이 젖는 그런 기분이다. 진즉부터 이상기온 때문에 겨울이 불쑥 찾아올 것을 예측했건만 준비하지 못한 마음이 어수선하다.


일요일 아침, 갑자기 1℃ 까지 기온이 내려가니 집 나간 아이들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두 녀석들이 타지에 살고 있다. 아무리 야무지게 단속을 잘하고 산다고 해도 엄마 마음이란 것이 그것이 아닌 것은 어쩔 수 없는 기정사실이다.


한 녀석이 감기에 걸렸다고 두꺼운 이불과 겨울옷을 가져다 달라고 한다. 택배로 보내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고 요즘 같은 코로나19 시기에는 서로서로 조심해야 할 일이기에 길을 나서야 할지 잠시 망설여진다.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애착 이불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나오지 않는 목화솜을 타서 만든 옛날 이불이다. 환절기에 혹독한 몸살을 앓고는 했는데 이번에도 쉽게 지나가지 못한 모양새다. 감기 때문에 몸이 힘들면 안 될 것 같아 가져다주기로 결정을 내리고, 이불을 살균하고 옷을 챙겨 녀석이 있는 S시를 향해 주섬 주섬 길을 나선다.


운전대를 잡고 목적지를 향하는 사이에 찬바람이 들어와 앉는다. S시로 향하는 길은 구불구불 산야를 지나 고속도로로 들어가야 한다. 하얀 억새꽃이 잔뜩 피어나 은빛 바람결로 흔들린다. 그것을 보면서 운전을 하는데 노을이 지고 해가 뚝뚝 떨어진다. 어느 사이 시야는 어둑해진다. 안전운전을 위해 눈을 크게 뜨고 광명진언을 수없이 되뇐다.


무사히 고속도로 톨케이트를 통과한다. 자식이란 무엇인지? 밉다가도 아프다고 하면 걱정되어 어쩔 수가 없다. 녀석이 휴학을 했다. 한 학기만 다니면 졸업인데도 10월 말까지는 등록 휴학이 가능하다고 기어이 휴학을 하겠다고 해서 더 이상 말리지 못했다. 학교를 안 다니면 안 되느냐고 해서 졸업은 하고 보자고 달랜 것이 여기까지 왔다. 주위에 많은 대학생들이 휴학을 한다고 해서 휴학을 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표를 짜서 보여주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내년 3월까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좀 놔두라고 선포를 하고 휴학을 한 것이다. 녀석은 비대면 수업을 한 지 벌써 2년이 되어가고 학교를 가나 안 가나 똑같다고 하소연을 보탠다.


‘그래 좀 쉬어라’ 마음으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머리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녀석이다. 무엇을 하든 알아서 하겠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19 시대에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돈다. 저러다가 한 학기 남은 학교마저 그만둔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한 것은 무슨 욕심인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부모 된 욕심일 것이다.


짐을 가져가기 위해 자취방 앞에 도착하여 전화를 하니 내려온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오늘 밤 잘 구슬려서 녀석의 의중을 캐고 싶다는 소심한 마음을 가져본다. 녀석과 밥을 먹으면서 이것저것 물었지만 알고 싶은 것은 하나도 알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간다. 티브이 드라마를 켜놓고 무심한 듯 혹시나 하고 캐물어도 엄마의 속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이리저리 대답만 회피한다.


결국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밤을 지새운다. 녀석도 나도 잠 못 이루는 긴 밤이었다. 출근을 해야 하기에 새벽 6시 급하게 일어나 몸조심하라고 말하고 자취방을 나선다. 아직은 새벽길이라 차는 밀리지 않지만 갈 길은 멀다. 돌아오는 길 멀리 산 중턱에 운무가 걸려 있다. 어젯밤 내려온 운무는 무슨 미련이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올라가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나처럼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일까.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내 마음을 헤아리며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주고 싶었을까. 평상시라면 아름답게 보였을 운무가 이 아침은 우울하게 느껴진다.


앞만 보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문득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앞만 보며 삼십여 년 가까이 한 직장에서 살아온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견디며 살았다. 이제는 정년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엄마처럼은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내 욕심이라면 ‘녀석이 건강하고 튼튼하고 지혜로워지기’를 바랄 뿐 마음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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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등 뒤가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니 등 뒤에서 햇살이 비춘다. 관세음보살의 후광이 눈앞에 그려지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황홀한 경험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찬란한 햇살의 후광을 입는다. 아무려면 어쩌겠는가. 녀석이 잘 해낼 것이라고 아침 햇살이 따스한 위로의 빛을 보내준다. 그래 이 겨울을 또 잘 견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