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자 괜찮을 거야

by 수인


하늘 깊은 날, 그런 날이 있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라는 노래 가사가 아니더라도 어디든 가야 할 것 같은 그런 날이 있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노래에 취해서 길을 나선다. 들판의 벼들은 노랗게 익어갈 준비를 하고, 나는 열심히 도망간다. 씩씩하게 돌아오기 위해서 도망가자고 멜랑콜리한 감정이 나를 유혹한다.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쌍봉사다. 쌍봉사자문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사천왕이 악귀를 밟고 있는 천왕문 앞에 서니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이다. 지친 발걸음을 느린 인생길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 가끔씩 들렸던 곳이다. 아무도 반겨준 적 없지만 혼자서도 당당히 들어섰던 곳이다. 어디에나 있는 그런 절이지만 대웅전이 다른 곳과 달라서 언제 와도 낯선 곳이라 이방인처럼 서성인다.


대웅전은 삼층 전각의 목조 탑파 형식을 지닌 희귀한 양식으로 우리나라에는 법주사 팔상전과 쌍봉사 대웅전 2동만이 현존한다고 한다. 대웅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1984년 신도의 부주의로 소실된 후 1986년에 원형대로 복원되었다. 17세기 목탑의 내부 공간 활용과 구조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철감선사의 이름은 박도윤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다. 중국 당나라로 들어가 불교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귀국하여 금강산에 머무르며 후학을 지도했는데 경문왕이 도윤에게 귀의했다. 입적 시 문인들을 모아 법을 널리 필 것을 당부했다니 철감선사의 공부의 정도를 짐작할만하다. 화순의 아름다운 산수에 이끌려 절을 짓게 되었는데, 호를 따라 쌍봉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이 74%나 차지하고 있는 화순의 산림이 고귀한 자산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경문왕 8년 71세 때 입적하게 되자 왕이 철감이란 시호를 내려주고 탑과 비를 세우도록 했다.


불교 건축양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에 대충 고개만 끄덕여본다. 대웅전 옆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선다. 목조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가섭존자상과 아난존자상이 양쪽으로 모셔져 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모든 인연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삼배를 올린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는데 수많은 상을 만들어 잘 살지 못한 잘못을 오늘은 참회해본다.


가섭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 올리자 그 뜻을 알고 염화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깨우침이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미소로 응답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승에 살면서 몇 번이나 염화미소를 지어본 적이 있었던가? 참회의 미소를 지어본다.


아난존자는 머리가 매우 총명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기억해서 사실 그대로 전했다고 한다. 금강경의 첫머리를 보면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된다. 즉 아난존자가 전한 부처님 법문은 ‘이와 같이 들었다’로 시작된다. 하지만 법문을 알기에는 너무 어려워서 ‘법문을 다 배우 오리다’라고 입만 중얼거리고 독송하지 않음을 아난존자 앞에서 참회해본다.


대웅전을 나와 대나무 숲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초의 선사의 시가 나를 붙든다. ‘한가윗날 새벽에 앉아서’란 시다. 정찬주 소설가가 옮겨놓았다고 적혀 있다. 22세 때 초의 선사가 한가윗날 새벽에 일어나 철감선사 탑으로 가는 대나무 숲길을 걸으며서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며 지은 최초의 시라고 한다. 초의선사가 쌍봉사로 와서 금담선사에게 참선을 익히던 때였다고 한다.

쌍봉사 사진.jpg

“평소 조심했으나 끝내 어긋났으니/ 이런 때 맞으니 도리어 괴로워라/ 남들이야 이 심사를 알리 없으니/ 싫어하고 의심함 사이 피할 길 없네/ 어찌 미연에 막지를 못했던가/ 서리 밟는 지금 오한이 이는구나”라는 구절을 읽으며 잠시 숙연해진다. 22세 젊은 나이에 이미 삶의 깨달음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늘 조심하면서 산다고 해도 사는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하필 괴로운 시기에 찬 이슬 맞으니 남들은 그 심정을 몰랐을 것이다. 그때는 한가윗날 새벽에 사실적으로 이른 서리가 내렸는지 아니면 초의선사의 마음 상태를 ‘서리 밟는 지금 오한이 인다’고 비유한 것은 아닌지 짐작해 볼 뿐이다.


바람부는 대나무 숲길을 걸어 올라간다. 배롱나무가 얼마 남지 않는 꽃잎을 휘날리면서 여행객을 반가이 맞이한다. 가을이 오고 있음이리라. 오랜만에 마주한 국보 철감선사탑이다. 신라의 부도 가운데 조각과 장식이 가장 화려하게 새겨진 것이라고 한다. 막새기와 안에 연꽃무늬를 새긴 솜씨는 경지에 이른 것으로 석조건물로는 최고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점점 풍화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다.


탑은 입적한 철감선사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곳이다. 정밀한 돋을새김을 통해 장인의 솜씨를 되새김할 수 있다. 후세에 남길 수 있도록 왕이 시호를 내리고 탑과 비를 세우도록 했다는 것은 그 당시 고승인 철감선사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바로 옆에 나란히 있는 철감선사탑비 비문은 없어지고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귀부나 이수의 조각은 섬세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거북은 오른쪽 앞발을 살짝 올리고 있어서 잠시 눈을 감으면 손을 내밀면 앞발을 곧 내밀 것 같아 보인다. 거북이의 발톱도 특이하지만, 뒤편으로 돌아가 보면 거북이의 숨겨진 꼬리를 확인할 수 있는데 너무 귀여워 웃음이 픽 나오는 신선함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사이 파란 하늘과 구름이 더 깊어졌다. 쌍봉사에서 씩씩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는다. 이 소소한 여행의 즐거움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내려오는 길, ‘한가윗날 새벽에 앉아서’란 시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이 또한 사람의 일이라 곧 돌아오는 한가윗날이 걱정된다. 코로나 팬데믹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이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렇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느린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도망갈 곳조차 없는 촌부지만 이 작은 떠남에 만족하면서 살 것이다. 쌍봉사 대웅전 사이로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가을은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 ‘도망가자 멀리 안 가도 괜찮을 거야’ 그냥 오늘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