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린 핸슨 아닌 것이란 시를 되뇌이며
동네 사진관에 들러 사진을 찍었다.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묻길래 증명사진 용도라고 말하고 마스크를 벗고 화장을 고치고서 카메라 앞에 앉았다. 긴 머리를 한 젊은 사진사는 까칠했다. 몇 번 고개를 이리저리 하라고 하면서 사진을 찍더니 다 되었다고 했다. 나는 프로필 사진이니 뽑지 말고 보내달라고 이메일을 적어주니 이십 분 후에 도착할 거라고 말해준다. 사진관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진을 대충 찍은 것 같아 어떻게 사진이 나왔을지 마음이 불편해졌다. 기다렸다 확인을 하고 오는 건데 그냥 나와 버린 것을 조금 후회했었다.
이메일을 열어 사진을 확인한다. 바보 같은 내가 있다. 블라우스는 겹쳐 저 있고 재킷도 제대로 여며지지 않아서 프로필 사진으로 쓰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인 것 같아 사진관에 전화를 해서 다시 찍겠다고 하니 다른 것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수정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전화를 해서 금방 가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진관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불편하다. 살면서 이것저것 따지면서 살지 않아서 이런 일은 익숙하지가 않다.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찍어 달라고 하니 사진사의 얼굴 표정이 불편해 보인다. 사진을 찍고 사진을 확인하니 도저히 아니어서 용기를 내어 사진값을 더 드리겠다고 말하고 머리 스타일을 바꾸어 볼 테니 다시 찍어달라고 했다. 몇 번의 과정이 흘러 사진을 찍고 사진을 확인하고 수정해 달라고 하고 값을 물으니 그냥 가라고 말한다. 조금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감사하다고 했다. 사진사는 처음부터 프로필 사진이라고 말했으면 여러 번 찍었을 텐데 증명사진이라고 해서 그냥 찍었다고 말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수만 가지 생각이 스친다. 증명사진과 프로필 사진이 뭐가 다르단 말인가. 증명사진이든 프로필 사진이든 최소한의 정성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다시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사진관을 나온 것이 아니라 마음은 이미 다른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다시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본 영화 “수상한 그녀”가 생각났다. 사진관에 걸려 있는 오드리 헵번을 보고 영정사진이나 찍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청춘 사진관’에 들어간 여주인공이 사진을 찍고 오십 년은 젊어지는 내용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젊어진 나라도 생각했을까마는 사진 속의 나는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가 거기 있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니 “유 퀴즈 온더 블록”에 나온 공유 동영상이 뜬다. 클릭하니 어떻게 살 것인가의 질문에 에린 핸슨의 ‘아닌 것’이라는 시를 낭송한 것을 들려준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나,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이 시를 들으면서 잠시 반성하게 된다. 나는 내가 아닌 것에 마음이 불편했을까.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다음 동영상을 클릭하니 월호스님이란 분이 나오셔서 행복을 추구하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행복과 불행은 양면성이라 불행이 따라오니 우리는 안심(安心)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이 편안한 것이 최우선이라고 한다. 내 마음이 불편한데 지나친 이득을 구하지 말라면서 몸과 마음은 아바타고 관찰자가 진짜 나라고 말한다. 관찰자 입장에 서면 늙고 병들고 죽는 일에 해탈할 수 있다고 한다. 근본적인 고통인 생로병사에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유가 낭송한 에린 핸슨의 ‘아닌 것’이란 시나 월호스님이 말한 ‘관찰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오늘의 나도 나 아닌 것에 매달려 살고 있느라고 나를 관찰하지 못한 결과물이다. 어느 한순간 나를 관찰하면서 생활할 때가 있기는 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나 아닌 것에 속상해하면서 나 아닌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왔다. 나의 행위를 관찰하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인가? 생각하면서 사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내가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누구나 대부분은 보이는 부분만 본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이는 것에 얽매어 사느라 허례허식에 매달려 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허례허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생활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이나 정성이 없이 사는 일에 오래 길들여져 나 아닌 것에 목숨 걸고 살고 있겠지만 나 아닌 것에서 벗어나 사는 일도 어려운 일임을 안다.
이메일을 열어 사진관에서 보내준 사진을 확인한다. 최초의 사진과 수정된 사진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최초의 내 모습보다는 조금 젊어졌다. 블라우스도 겹쳐지지 않고 재킷도 잘 여며져 있다. 그렇다고 사진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도 절대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을 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사진 속의 나는 절대로 같을 수 없음을 안다. 이 사진의 모습은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 보이는 나의 모습이기에 진정한 내가 아님도 안다.
어쩌랴. 나 아닌 것에 매달려 사는 나를 관찰하느라 이 밤도 깊어지지만 나 아닌 것을 떠나서 살 수 없음을 안다. 나 아닌 것이 동반되어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과정을 관찰하면서 사는 일이 안심(安心)을 추구하면서 사는 일일 것이라고 애써 나를 다독인다. 나 아닌 나의 프로필 사진으로 보내며 조금은 불편하고 부끄러운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