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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감독한 날 먹은 것들

가장 달았던 것은?

by 시트러스

1. 새벽의 요거트

새벽 4시 50분. 일용직의 하루가 밝았다.
인력시장에 차출된 김 씨의 심정으로, 울리지도 않은 알람을 끄고 일어났다.


어젯밤엔 12시까지 감독관 유의사항을 정독했다.
언제, 어느 교시에, 어떤 역할로 들어갈지 모른다.
부정 방지를 위한 철저한 보안이라는데,

겸사겸사 내 멘탈의 안녕도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세 자매의 등교는 남편이 맡았다.
나는 6시 반에 집을 나서야 했다. 그전에—
물 한잔과, 그릭 요거트 한 숟가락을 퍼먹었다.
배고파서가 아니라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보였기 때문이다.
식구들이 다 자고 있길래 괜히 울컥했다.
김두희, 네 허니 그릭 요거트는 용역 김 씨가 먹고 간다.


2. 아침의 김밥

7시. 감독하는 학교에 도착하니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감독관 목걸이와 간식꾸러미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다들 어둑한 강당에서 김밥을 드시고 있었다.
새벽 7시에 다 같이 김밥이라니—현장 느낌 그대로다.


교무부장님이 말했다.
“아, 이번엔 좀 빈약하네. 지퍼백에 꽉 차게 줘야지. 이거 먹으러 오는 건데.”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우적우적 씹었다.
나는 첫 차출이라 그저 감탄했다.
‘이 새벽에 이렇게 많은 김밥을 어떻게 다 말았을까. 이 집 잘하네.’


3. 대기실의 귤

교육을 받고 감독관 대기실로 이동했다.
귤 두 박스, 커피 머신, 초콜릿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옆자리 부장님이 귤 두 개를 챙겨 주셨다.

귤 까는 소리 속에, 감독관 유의사항 스터디가 이어졌다.
선생님들과 마치 군 작전처럼 시뮬레이션을 했다.
“1교시는 우린 중학교니까 2 감독이지?”

“답안지 나눠주고, 홀수 짝수 시험지 확인하고—”


곧 배치표가 나왔다.
나는 7 고사실 제2감독관.
“오늘 첫 수능 감독입니다. 빠릿빠릿하게 하겠습니다!”
1 감독관님은 인자하게 웃어주셨고, 베테랑 선배님의 안배 속에 무사히 첫 시간이 끝났다.

심지어 수능 샤프도 하나 챙겨주셨다.

나는 이제 수능 굿즈를 보유한 사람이다.

덥고 힘들어도 간간히 웃을 일이 생겨 감사했다.



4. 점심의 도시락과 담배연기

2교시는 휴식이었다.
귤과 초콜릿을 또 먹으며 3,4교시 예행연습을 했다.
그러다 점심시간. 도시락이 나왔다.


따뜻한 시래깃국, 잡곡밥, 불고기, 오이무침, 양념치킨.
“간식 많이 먹어서 안 들어가요.”
“배부른 소리 말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어.”
냉혹한 인력팀장, 교무부장님의 말에 꾸역꾸역 먹었다.


밖에 나가보니 수험생들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수능 한파 시절이 있긴 했는지 가을 햇살이 따뜻했다.
교정의 노란 낙엽을 배경으로 잠깐은 소풍 같은 풍경.
누군가 피운 담배 연기를 마셨지만 웃음이 났다.
“전자기기 금지니까 전자담배는 안 되겠죠?”
“오늘은 연초의 날이지.”

그 말에 모두 슬쩍 웃었다.

긴장 한 겹이 은행잎 하나와 바람결에 날아갔다.


5. 오후의 귤 리필, 욕, 그리고 하이파이브

3교시는 정감독이었다.

부감독님은 첫 감독이라는 나의 기합 들어간 인사말에 고개만 끄덕이셨다.

그리고 3교시 내내 나는 실에 연결된 목각인형이 되었다.
눈짓과 손짓으로 시키는 대로 배부, 수거, 사인.

정신 차려보니 시험은 끝나 있었고,

감사와 존경심을 담아 깊숙이 고개를 조아려 인사를 드렸다.
답안지와 남은 답안지, 시험지를 한번에 챙겨 본부에 제출했다.


“이거 이렇게 주시면 어떡해요!”
진행요원 선생님이 소리쳤다.
드디어 첫 실수가 나왔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분명, 눈으로 하는 욕을 먹었다.

떨리는 손으로 다시 답안지, 여분 답안지, 시험지 순으로 정리해서 드렸다.

한번 더 깊숙이 조아려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무릎이 후들후들 떨렸다.


심기일전 후, 4교시는 드디어 손발이 척척 맞았다.
1 감독님이 한 박자 늦으면
3 감독 선생님과 내가 보더콜리처럼 양쪽 끝에서 문제지를 몰았다.
눈빛만으로도 통했다.
마지막 시험지가 걷히는 순간, 조용히 하이파이브를 삼켰다.


6. 집으로, 꿀 같은 단잠

모든 시험이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휴대폰 없이, 뜻밖의 디지털 디톡스를 했다.
심심하고 허기져서 또 귤을 깠다. 지친 나머지 엎드려서 먹었다.
"오늘 귤, 대체 몇 개 먹는 거야?"

사육당하는 느낌에 자조적인 질문을 주고받았다.


한 시간 뒤, 모두 복귀.
일용금 18만 원을 받고 귀가했다.
급히 차를 몰다 고사장 앞 좁은 도로에서 긁을 뻔했다.

순간, 하루 일당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이번엔 헛숨을 꿀꺽 삼켰다.


집에는 여전히 집안일과 세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걸 마치고 눕자 안도감에 머리가 멍해졌다.

거의 바로 꿀 같은 단잠에 빠져 들었다.


오늘 하루 먹은 것 중, 가장 달았다.




오늘의 퀴즈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김 씨는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 그릭 요거트를 한 숟갈 먹은 뒤,
하루 종일 감독을 하며 김밥과 귤,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랬다.
긴장과 피로 속에서도 끝내 꿀 같은 잠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김 씨의 하루’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귤 섭취량이 업무 수행에 지장을 주었다.

간식의 단맛이 긴장감보다 더 진했다.

일용직의 하루는 귤색처럼 상큼했다.

긴 하루 끝, 가장 달았던 것은 잠이었다.

능 감독은 귤에 중독되는 과정에 불과했다.




전국의 수험생 여러분, 애쓰셨습니다. 노력 + 행운이 더해진 결과 있기를 빕니다.

전국의 수능감독관 여러분, 허기와 긴장감 속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귤 드시느라 애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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