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끊은 지 석 달째다.
사실 디카페인 라테로 조금 꼼수를 부려본 날도 꽤 된다.
그래도 하루 꼭 한 잔, 많게는 세 잔씩 마시던 커피를
이제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커피를 안 마신다고 하면,
주변에서 화들짝 놀라는 반응이 많았다.
"어머 왜요? (그 좋은) 커피를 왜 안 마셔요?"
왜인지 안타까워하는 반응도 많다.
"어쩌다(?) 그리 됐어요?"
마치 삶의 산재라도 만난 기분이다.
"피지선 증식증이라는 일종의 피부 질환으로
카페인과 알코올을 금지당했습니다."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으면 너무 구구절절한 것 같아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요. 좀 줄여보려고요."
정도로 넘어갈 때가 많다.
그러면 대부분은 공감 섞인 위로를 보내준다.
"아이구, 그랬구나. 하긴 나도 위염 때문에 줄여야 해."
많은 사람이 커피를 즐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라에서 허락한 중독’을 줄여보려 한다는 것.
그 모든 반응이 이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어떤 이유든 참, 다정한 공감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이런 말을 들으면 오히려 코끼리만 떠오른다.
우리의 뇌는 이미 작동된 프레임 밖으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커피를 마시지 마세요, '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는
코끼리만 한 커피 컵부터 떠오른다.
우리는 걱정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때마다
걱정을 생각하게 된다.
부정의 언어가 아닌, 긍정의 다짐이 필요한 이유다.
'커피를 끊겠다, '보다 '미숫가루를 마시겠다'가
내게는 훨씬 효과적이며 지속 가능한 다짐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미숫가루 외에도,
커피를 대신할 향긋한 음료가 많았다.
원래도 홍차류를 좋아했기에
베르가못, 시트러스, 얼그레이 티는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요즘 유행하는 각종 말차 음료도 시도해 볼 만하다.
쌉싸름한 말차에 달콤한 딸기를 더한 말차딸기라테라니.
맛있는 것 위에 맛있는 것 조합 아닌가.
초록과 빨강, 색깔마저 백 점 만점에 천 점이다.
나는 단 음료는 잘 못 마시지만,
알록달록한 각종 스무디, 라씨, 생과일주스도
충분히 훌륭한 대체 후보군이다.
물론, 디카페인 라테 같은 위로가 필요한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커피 멈춰!' 하지 않는다.
대신,
'한잔해, 한잔해.'
책 한 권과 따뜻한 라테 한 잔.
매정하게 끊어내기에는
너무 긴 시간 동안 내 옆자리에 있어 준 친구다.
그런 날은 잠시 쉬어가는 날이다.
'마시지 마'가 아닌,
'오늘은 좀 마셔도 돼. 그동안 잘했어.'
나 자신에게 가만히 건네보는 위로의 날.
막상 마셔보는 디카페인 라테는
어쩐지 밍밍한 듯하고,
좀 쓴 것 같기도 하다.
커피 좀 끊었다고 벌써 변하다니!
요 간사한 입맛 같으니라고.
그럼, 달디 단 케이크로 혼내주자!
이상한 사고의 흐름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뭐, 그런 날도 있는 거니까.
미숫가루 마시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소소하지만 분명한 변화도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멈칫, 하는 순간이 줄었다.
마음을 심란하게 하던 이마의 도돌도돌한 요철이
눈에 띄게 줄었다.
'얼마나 더 못 생겨졌나' 좁고 작은 거울을 살피던 시선을 거두게 되었다.
거울을 내려놓고 시선을 들어 주변을 더 둘러보고,
책을 보는 시간이 더 늘었다.
잠도 좀 더 푹 자게 되었다. 원래도 카페인에 예민한 체질이 아님에도 새벽에 몇 번씩 깨고는 했다.
요즘은 미숫가루를 배불리 먹은 덕분인지 아주 푹 자고 있다.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나를 좀 더 지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의지를 갖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에 뿌듯한 만족감이 자리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돌본다는 기분 역시,
이 무카페인 고군분투기를 이어갈 동력이 되어준다.
이제는 동료 선생님들도 자연스레 다른 차를 권해주신다.
"영어 선생님은 미숫가루 라테, 맞죠?
아, 누룽지 차인가. 홍차도 있어요!"
영어 선생님에게 걸맞은
글로벌한 입맛을 갖춘 것 같아 괜히 뿌듯해진다.
이 정도면 고소하고 씁쓸한 그 맛 대신,
구수한 미숫가루를 마실 만한
코끼리만큼 큰 사유다.
이 사유들을 품고
부정보다 다정으로
나에게 다가서기.
구수한 사유와 다정에 기대어
오늘 하루가 호로록, 향긋하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