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국세청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종합소득세 신고 및 납부 안내'
'엥?'
15년을 일했지만, 처음 보는 문자였다.
가슴이 싸해졌다. 실수인가, 착오인가 싶었다.
인증 후 열람하려 했지만, 접속이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확인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종합소득세 1,691,600원, 개인지방소득세 169,160원을 납부하시오.
무려 180만 원. 갑작스레 세금 납부하라는 안내였다.
나는 매년 소속 학교 행정실에서 연말정산을 하는 터라,
'종합소득세'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작고 소중한 내 월급을 지키기 위한 험난한 여정의 서막이 열렸다.
문자에 포함된 '총수입금액 조회' 링크를 눌렀다.
2024년 귀속 총수입금액이 확인되었다.
그 해, 나는 a학교(1,2월)와 b학교(3~12월) 두 곳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a학교의 1, 2월분 원천징수세액이 0원으로 나온다.
수입은 있었는데 세금이 전혀 떼이지 않았던 것.
"찾았다, 요놈."
세금이 빠졌으니 이제 내가 신고하고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두근두근 불안하던 가슴은 곧 분노로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분은 실수가 매우 잦았다.
너무 심하게. 겁나 심하게!
예전에 월급이 두 배로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월급이 두 배!
...그럴 리가 있나.
주무관님의 실수였고, 되려 "선생님, 정말 모르셨어요?"라는 질책이 돌아왔다.
내가 소위 '쎈캐'였으면 바로 행정실장님께 찾아가,
실수하고도 나를 몰아세우는 그분을 질타해 달라 읍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화주의자인 데다 싸움 쪼랩이다.
그래도 그때, 정중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분노치 max를 담아 메신저를 보냈다.
“실수하신 건 선생님이시고, 저는 원치 않는 번거로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되레 질책을 하시니 모욕적입니다.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그 뒤로도 자잘한 실수가 계속되었고, 나뿐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비슷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 번씩 남편과 동료 선생님들에게나 표했던 분노가 다시 끓어오름을 느꼈다.
이번 연말정산은 b학교에서 진행했기에 그쪽 주무관님에게 연락했다.
종합소득세는 확정신고 전 수정이 가능하므로, 학교에서 정정만 해주면 간단히 끝날 수도 있었다.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소득이 많으셔서 1~2월 소득은 삭제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에엥??'
이건 탈세를 하자는 건가?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나는 그런 안내를 들은 적도 없고, 애초에 그분과 말을 나눈 적도 거의 없었다.
숨을 고르고, 동생분이 세무사인 친한 선생님께 문의를 했다.
친절한 선생님께 돌아온 답변은 상식적이었다.
"담당자의 착오로 보이고, 학교 측이 정정을 거부하면 본인이 직접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이때 첫 고비가 찾아왔다.
일단, 복잡한 신고 방법이 헷갈리기도 하고,
주무관님이 너무 당당하게 나와서 협조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세금이 80만 원 정도였으면 눈물을 머금고 확정 신고를 할까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180만 원이라니... 내 치킨, 내 책...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단호한 메신저를 b학교 주무관님에게 보냈다.
“해당 내용 안내받은 적 없고, 동의한 적 없습니다.
종전근무지 소득이 누락된 경우, 정산 및 신고 주체인 학교에서 정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국세청과 지인 세무사 통해 확인한 내용입니다. 정정 부탁드립니다.”
답은 이랬다.
“해당 국세청 담당자 연락처 좀 주세요. a학교에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는 이미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
국세청 번호는 126번입니다-하고 팍 쓰려다, 협조를 구하는 입장이라 한번 더 숨을 골랐다.
지역 세무서 번호와 a학교 행정실장님, 급여담당자(월급 두 배로 주신 통 큰 그분)가
바뀌었단 사실도 함께 전달했다.
첫 메신저 후 짧은 서신만 보내더니, 그 후 계속 전화가 왔다.
불편하게 해 드릴 의도는 없고, 공적 요청이니 메신저로 대화하자고 말씀드렸다.
다음 날, 답변이 돌아왔다.
“a학교에서 연말정산 탭만 정산하고,
급여 탭에서는 작업하지 않아 국세청에 신고가 누락되었습니다.
관할 세무서에 문의 후 다시 안내드릴게요.”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최종 메시지.
“근로소득 수정 신고 완료되었습니다.
접수증과 수정된 원천징수영수증 첨부드립니다.”
국세청 홈페이지에선 여전히 180만 원으로 표시되었지만,
정정 자료가 올라온 걸 확인하고는 한시름 놓았다.
최종 세금이 얼마일지 모르나, 정당하게 확정되면
그대로 낼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5월 8일 확인한 내용이니, 신고 마감일인 5월 말까지 여유가 있으리라 했다.
아니었다.
마감이 다가와도 세액은 그대로였다.
국세청 문의는 "지역 세무서에 하라"는 답뿐.
결국, 또 다른 고비 앞에서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5월 30일, 조퇴를 상신하고 모든 자료를 출력해 세무서를 찾았다.
서류를 확인한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두 곳 모두 연말정산과 소득 반영이 누락된 상태였네요.
그래도 수정 신고는 접수되어서 추가로 하실 일은 없습니다.”
결국,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처럼 모두 한 번씩 실수한 셈이었다.
a 학교는 원천징수를 누락했고,
b 학교는 소득 누락 착오가 있었고,
국세청은 수정 반영을 지연시켰으며,
나조차, 처음엔 이유를 모르고 방치했다.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정교한 엇박자를 완성해 냈다.
“그런데 홈페이지에는 세액이 그대로여서 왔습니다.”
“그건 3월 자료 기준이라서 그렇습니다.
불안하시면 지금 바로 수정 반영된 접수증 만들어드릴까요?”
나는 '네네! 겁나 큰 네네네입니다!' 이런 취지로 대답했다.
곧, 안쪽 바리케이드가 쳐진 비밀스러운 곳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나라에서 뭘 해줬다고 세금을 이리 많이 떼가!"
인터넷에서만 보던 진상 민원을 1열에서 직관하는 기분이었다.
안 보이는 곳에서 많은 공무원들이 묵묵히 고생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하고 있는 찰나,
드디어 최종 지방소득세 신고서 접수증이 나왔다.
귀속연도 2024년
납부(환급)할 총 세액: 0원
신고기한 이내 납부할 세액: 0원
여러 차례 고비를 맞았던 긴 납부 여정이 180만 원에서 0원으로 끝이 났다.
남들에게는 쉬운 일이거나,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지방소득세, 종합소득세,
그리고 소득과 세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내 권리를 지키려면 싸움 쪼랩이라도 나서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세금은 단지 숫자였지만,
그 숫자에는 나의 수많은 고민과 시간이 담겼다.
행정 실수 하나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앗아가는지,
그걸 되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와 문장이 필요한지 배웠다.
무심한 시스템 속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분투한다.
나는 싸움엔 소질이 없고, 쫄보이지만
적어도 물러서지 않는 법은 배웠다.
내가 지킨 이 작고 소중한 월급으로
오늘은 치킨 파티를 해야겠다.
양념반, 후라이드반. 무 많이.
기분 좋으니까, 콜라도 1.5리터!
오늘의 치킨은,
내가 지켜낸 권리의 맛이다.
그 맛은 아주 바삭하고, 고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