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과학은 안녕하십니까?

나는 이제 토머스 쿤을 읽은 사람이다

by 시트러스

과학을 피해서 살아

나는 과거 독후감계의 거만한 어린이였다.

교내 백일장이든, 전국 어린이 잡지사든 일단 써서 내면 상을 받았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재밌는데 이게 왜 숙제지?'

아이고 재밌다, 재밌어!


비결은 과몰입에 있었다. 읽을거리를 좋아하는 나는 우선 글을 고르면 집중해서 읽는 습관을 들였다.


성인이 되어 위기가 찾아왔다. 흥미와 관심만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책들. 혹은 아예 흥미조차 생기지 않는 책들이 많았다. 얼마 전 존경하는 배대웅 작가님의 브런치 글 <읽고 나면 기록하자>를 읽었다. 글쓰기를 위한 독서 노트를 쓰는 방법과 함께 실제 책 5권을 예시로 들어주셨다.


반갑게도 이미 읽은 책들이 있어 댓글을 남겼고, 그 과정에서 작가님이 인생 책으로 꼽은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나는 문학 관련 책은 SF와 추리 소설, 그리고 시를 주로 읽는다. 비문학은 그림과 영화.

과학은? 애타게 반드시 읽고 싶은 분야가 아님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우선, 작가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 그리고 호기심 때문이었다.

과학, 혁명, 구조 이 단어들이 어울리는 조합인가? 처음부터 갸우뚱했다.


과학이 이렇게 재밌을 줄은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과학책이면서도 지극히 과학과 동떨어진 책 같기도 했다.

내게는 과학에 대한 신화를 깨는 혁명과도 같은 책이었다.

과몰입이 시작되었다. 과학 철학 책을 읽는데 심장이 두근거리다니? (번역이 이상해서 화난 것 아님)

내가 출판사 직원이었다면 책 제목을 다르게 지었을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당신이 몰랐던 과학의 진실 - 과학은 과연 진보하는가?


작가님께서 이미 친절하고 정확한 책 리뷰를 올려주셨다. 심지어 나도 예전에 이 글을 읽었었다. 어쩐지 용이 익숙했다.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이미 한 번 감탄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https://brunch.co.kr/@woongscool/275


문과생의 언어로 다시 읽은 쿤

과학 지식 제로 베이스의 찐 문과생의 리뷰는 이렇다.

순서는 책 서두의 <이언 해킹의 서론>에 나온 개요를 따랐다.



1. 정상과학(normal science)

쿤이 말하는 정상과학은,

내가 막연히 상상하던 '과학의 최전선'과는 사뭇 달랐다.


정상과학은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합의된 이론, 방법, 문제 설정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상태다.


과학자들은 그 틀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틀이 옳다는 전제 위에서만 연구는 의미를 갖는다.


이 지점에서 쿤은 과학을 끊임없는 비판의 연쇄가 아니라

합의된 신념 위에서 작동하는 공동체의 활동으로 재정의한다.


과학은 생각보다 안정과 반복을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많이 낯설었다.



2. 퍼즐 풀이(puzzle-solving)

정상과학에서 연구란,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 아니다.


쿤의 표현을 빌리면 과학자는 탐험가가 아니라 퍼즐 풀이자다.


퍼즐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문제만이 퍼즐이 된다는 것.


정상과학의 문제들은 틀렸을 가능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이론이 맞다는 가정 아래 측정값, 계산, 적용 범위를 정교하게 다듬는다.


그래서 정상과학은 성공적일수록 더 깊이 파고들지만,

더 넓게 보지는 않는다.

과학의 생산성이 동시에 과학의 시야를 제한한다는 점이 이 대목에서 또렷해졌다.



3. 패러다임(paradigm)

패러다임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쿤에게 패러다임은 문제 설정, 방법, 가치 판단,

심지어 '무엇이 과학적인 질문인가'까지 포함하는 총체적인 인식의 틀이다.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훈련받는다.


그래서 패러다임은 의식적으로 들고 쓰는 도구라기보다

자연스럽게 세계를 보게 만드는 시선에 가깝다.


이때부터 '객관적 관찰'이라는 말이 조금 위태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관찰은 중립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미 배운 세계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보느냐보다 무엇을 문제로 삼느냐를 먼저 배운다.

그리고 그 배움은, 대개 설명되지 않는다.



4. 변칙현상(anomaly)

정상과학은 완벽하지 않다.

설명되지 않는 결과는 언제나 발생한다.


쿤은 이를 변칙현상이라 부른다.

중요한 점은, 변칙현상이 곧바로 이론을 무너뜨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상과학은 변칙을 오류, 예외, 미해결 문제로 처리한다.

오히려 이런 태도 덕분에 정상과학은 오래 지속된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보다 문제가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 태도가 정상과학을 유지시킨다.

변칙은 처음엔 균열이 아니라 잡음에 가깝다.



5. 위기(crisis)

하지만 변칙현상이 누적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존 패러다임으로 더 이상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순간,

과학은 위기에 진입한다.


이 위기는 단순한 기술적 난관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합의되지 않는 상태.

과학자들은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의 과학은 혼란스럽고, 불안정하며, 놀라울 만큼 인간적이다.

합의는 깨지고, 확신은 흔들린다.


과학이 가장 과학답지 않아 보이는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과학이 준비된다.



6. 혁명(revolution)

과학혁명은 논리적 증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패러다임을 '반박'해서가 아니라 대체한다.

두 패러다임은 서로 다른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고, 서로 다른 기준으로 성공을 판단한다.


그래서 혁명은 연속이 아니라 단절에 가깝다.

쿤은 과학의 진보를 점진적 축적이 아닌 비연속적인 전환으로 설명한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충격은

과학이 진리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했다는 점이다.


과학은 진보한다.

다만 언제나 더 '옳아서'가 아니라,

더 이상 이전의 세계관으로는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과학을 덜 신성하게, 그리고 덮을 즈음엔 조금 더 신뢰하게 되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자기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조차 역사의 일부로 기록하기 때문에.



늦게 읽어도 늦지 않은 이유

고전은 최신 서적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다. 어쩐지 진작 읽었어야 했는데, 늦은 것만 같고

그럼에도 늘 도서관이나 서점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관심 분야가 아니면 책을 펼쳐들 동기 자체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고전이야말로 낡은 것이 아니라

현대까지 끝내 살아남은 사고의 정수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요즘 막장 드라마 못지않은 고전 소설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폭풍의 언덕』은 인물 전원이 성격 파탄, 카라마조프네는 아버지가 쓰레.. 그만 알아보자.)


토머스 쿤의 문제 제기는

출간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현실에 균열을 낸다.


과학을 대하는 태도뿐 아니라 지식을 믿는 방식, 권위를 받아들이는 자세,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습관까지.


이 책은 과학 이야기를 하면서 사고방식 전체를 흔든다.

그래서 나는 이 사고를 조심스럽게 '쿤적 사고'라고 부르고 싶다.


문과생의 눈으로 본 '쿤적 사고'란,

실패를 개인의 무능으로 환원하기보다 오래 작동해 온 기준과 질문의 틀 자체를 의심해 보는 태도다.


그 사고는 삶의 문제를 개인의 실패로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오랫동안 공약해 온 삶의 패러다임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는 사고방식이다.



교실이라는 작은 정상과학

이 낯설지만 익숙한 충격은 처음 교육사회학을 배웠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작동한다고 믿었던 교육이 사실은 사회 구조를 정교하게 재생산하고 있다니.

처음 마주했을 때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중립적이라고 여겼던 것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깨달음,

합리적이라 믿었던 체계가 특정한 관점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인식.


돌아보니 교실도 하나의 작은 '정상과학'의 세계였다.

정해진 교과서(패러다임) 안에서 정답(퍼즐)을 맞히는 아이들만을 우수하다고 말해온 것은 아닐까.

수업의 흐름을 멈추게 하는 질문, 교과서 어디에도 없는 방식으로 답을 내놓던 순간들 앞에서

나는 그것을 새로운 혁명의 신호로 보았는가, 아니면 그저 틀린 오답으로 처리했는가.


언제는 질문을 위기로 받아들이고, 언제는 "그건 시험에 안 나와"라는 말로

조용히 지워버렸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과학을 넘어 나의 수업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을 바꿨는가

악명 높다던 번역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만 용어 자체가 어려워서 중간중간 원서에는 뭐라고 표기되어 있는지 영어 사이트를 찾아가며 읽었다. paradigm의 어원, incommensurability(공약불가능성) commitment(공약)의 차이점을 찾아보며 나는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꼈다.


6장 변칙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부터 신나기 시작해서,

7~8장 위기, 9~10장 과학혁명으로 갈수록 책은 이론이나 설명이 아니라 사고의 방향이 틀어지는 체험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과학책'이라기보다

생각하는 방식을 재설정하는 책으로 기억하려 한다.


작가님이 왜 이 책을 인생 책 1번으로 꼽으셨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배대웅 작가님의 추천 책 리스트를 탐욕스러운 눈길로 체크하고 있다.


잘 쓰지 않던 좌뇌를 억지로 끌어다 쓴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피로감이 이 독서가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똑똑해지는 일은 역시 쉬운 길이 아니다.


사람은 늘 다니던 길로 다니기 마련이다. 예측 가능하고 안전하니까.

이렇게 어렵고 불편한 책 한 권이 내 사고의 경로를 조금 이탈하게 해주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잃는 것도 계기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고전은 어려워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아프게 정확하기 때문에 끝내 읽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끝내 토머스 쿤을 읽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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