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먹고 마신 파티를 이어받아, 다음은 '다신 안 그러기 파티'입니다.
광란의 쇼핑, 반성 파티 현장
https://brunch.co.kr/@mabon-de-foret/250
눈물의 파티 현장 (feat. 쑥차와 티라미수 롤 케이크)
https://brunch.co.kr/@eafbf83b47d94c7/143
우리는 당당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작가님들은 대부분 너무 선량하신 분들입니다.
브런치를 아무리 둘러봐도
-나는 오늘도 무단으로 쓰레기를 투척했다.
-기회를 봐서 다른 사람 욕을 하고자 했으나, 영 기회가 없어 몇 번 못 했다.
-지나가던 꼬마의 발을 걸었다.
-가족이 지나다니는 길에 레고 조각을 뿌려 놓았다.
악마도 '이건 좀...'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할 만한 사연이 올라온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번민, 후회와 반성이 가득한 글은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내년이 있습니다.
잘 못한 게 있으면 '아 뭐! 좀 그럴 수도 있지! 다신 안 그러면 되지!' 하면 됩니다.
안된다고요? 그렇게 말할 사람은 없으니 걱정 마십시오.
연말 좋다는 게 뭡니까?
반성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고, 조금 허황된 목표일수록 응원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래서 여기, '다신 안 그러기 파티'를 엽니다.
안 그러고 싶은 사연들을 털어놓고, 다신 안 그러자, 다짐을 해보겠습니다.
털어놓고 싶으신 분들도 모두 함께 해주시지요.
먼저, 저부터 시작합니다.
올해 저는 혼자만의 마라톤을 달렸습니다.
땀은 한 방울도 안 나고, 근육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옷 사기 릴레이 마라톤이었습니다.
많이 사는 만큼 반품도 많았습니다.
저희 아파트 담당 택배기사님이 처음에는 메시지를 길게 보내셨습니다.
점점 "당일 택배 문 앞이요."로 획기적으로 줄더니,
최근엔 "택배 문 앞"까지 왔습니다.
조만간 "ㅁ ㅇ"까지 가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슈뢰딩거의 옷장 마냥 있는지도 몰랐던 존재와 부존재의 중첩 상태의 옷들도 모두 발굴해 내야겠습니다.
우리 집은 식구가 다섯입니다.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입맛이 모두 다릅니다.
김치찌개, 치킨, 쌀국수, 딸기, 다 싫음.
한정된 메뉴로 성장기 어린이들을 얼르고 달래 먹이기란,
또 다 큰 어른들은 많이 못 먹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배달음식에 중독되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선택, 주문, 도착까지 짧은 과정이 반복되며,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즉각적인 성취(심지어 맛있기까지 한)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제가 주목한 것은 배달 음식은 아무리 늦어도 꼭 온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측 가능한 도착은 불확실한 하루 속에서 드물게 확보되는 통제감입니다.
이런 작은 만족감들이 쌓여갔습니다.
결국 이같은 이유로 여러 단골집이 생겨났고,
매번 열심히 별 다섯 개와 리뷰를 쓰다 보니 사장님들께서 제 글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먹쨩(가명)님이시군요. 리뷰가 너무 웃깁니다."
이런, 이제 배달 어플은 자제하고 좀 더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겠습니다.
별 다섯 개는 지연을 받아들이고, 정성을 소화하는 시간에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는 올 한 해 최고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동네 도서관과 학교 도서관에서 쾌거를 이루었는데요,
'책 대출 후 반도 못 읽은 채 반납하기' 기록입니다.
심지어 어떤 책은 미련을 못 버려 두 번 빌리고,
두 번 다 그대로 반납하기도 했습니다. (알랭 드 보통 책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Monsieur 보통.)
성격상 연체만은 절대 하지 않는데
그 마저도 올해는 두 번인가 어겼습니다.
활자 중독자처럼 어딜 가든 수혈할 책 한 두 권은 꼭 챙겨 다니는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은 점점 무겁고 넘기기 부담스러운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책 읽기는 제게 시간 대비 효과가 늦게 나타나는 약입니다.
종이를 붙여야 하는데 마치 겉면에 풀칠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풀칠을 하고 또 하다 보면 어느새 풀기가 스며들기도 하듯,
읽고, 또 읽다 보면 제 사유와 글쓰기에도 어렴풋이 '깊이'라는 약발이 올라옵니다.
하여, 읽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 그러면 제 인생 즐거움이 반 이상 주는 까닭도 있습니다.
이미 옷도, 배달 음식도 다 뺏겼으니 책이라도 확보하겠습니다.
대신 신중하게 책을 대여하고, 미루지 않고 다 읽기로 다짐해 봅니다.
(Bonjour 어겐, Monsieur 보통!)
다신 안 그러기 파티를 열며 생각보다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글로 옮기기까지도 꽤 용기가 필요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함께 파티를 열어주신 마봉 드 포레 작가님, 무명 독자 작가님.
그리고 마음을 나눠주시는 작가님, 독자님들이 계시기에 용기를 끌어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뭐, 안 그러면 되니까요!
게다가 우리에게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파티 무제한 참석권입니다.
VIP 한정 티켓으로,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 이미 발급되었습니다.
우리는 늘 완벽해지려다 지칩니다.
때로는 잘못을 고치는 데 쓰일 에너지를,
‘내가 왜 이랬을까’를 생각하는 데 다 써버립니다.
그래서 이 파티는 완벽해지지 않기로 약속하는 자리입니다.
웃으면서 인정하고,
그럼에도 다시 살아보겠다고 말하는 것.
그 정도면 충분히
연말에 할 수 있는 즐거운 다짐 아닐까요.
내년 연말에도 또 파티를 열어 다시 한번 털면 됩니다.
그러니 용기 내어 뻔뻔하게 외치겠습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아마도요.)
Adieu,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