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와인파티에 초대합니다

콸콸콸

by 시트러스

김기자? 또 다른 술 파티에 나와 계신다고요?

현장 연결해 봅니다.

https://brunch.co.kr/@mabon-de-foret/233



1. 잔을 드는 소리, 와인 파티의 첫 불빛

작가님들과 티파티, 라면파티에 이어 이번에는 와인파티다.


사람들이 내게 주량을 물어보면 난처하다.

"저는 주량을 잘 모르는데요..." 한 뒤,

수줍게 "... 취해본 적이 없어서요."하고 덧붙이면 다들 그렇게 좋아한다.


동학년 점심 회식 희망 메뉴 조사나 소울 푸드 질문에도

"술이요..."

"맥주... 아니 소맥.." 하던 내가 지금은 금주 9개월 차다.

한의원에서 체질에 안 맞다고 해서 그러려니, 딱 끊어버렸다.


2. 취하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별로 취하지도 않으니 매일 마셨을 뿐, 별로 술 생각이 간절하지 않으니

내가 술을 좋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와인 파티를 계획하며 그냥 무알콜 맥주를 마시고 글 써볼까도 했다.

즉시 내 안의 기쁨이들이 거세게 들고일어났다.

'야! 뭐 하는 짓이야! 이럴 땐 마셔야지!'

나 술 좋아하네. 좋아하는 거 맞네.


술을 처음으로 배운 건 아버지께다.

본인은 한사코 아니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팔순이 되신 지금도 매일 소주 반주를 드신다.

아니긴! 소주 없는 날은 맥주나 막걸리니 매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3. 주당, The beginning

우리 때는 수능 100일이 남으면 100일주를 마시는 게 유행이었다.

긴장도 풀 겸, 시험 잘 치라고 마시는 격려주쯤 되었다.


집에 조심스레 말씀드렸더니, 아빠는 나보다 더 신나 하셨다.

"술은 원래 어른한테 배우는 기다."

두 손으로 술잔을 받고, 고개를 돌려 마셨다.

차고 맑은 소주가 식도를 타고 쑥 내려갔다.


한 잔, 또 한 잔.

엄마가 안주를 챙겨주며 좀 걱정스럽기도 하고,

얼마쯤은 한심해하는 표정으로 아빠와 날 보셨다.

"인자 고만 무라. 학생이 돼 가꼬 누가 그리 많이 마시노!"

아빠와 나는 동시에 정색을 했다.

나중에는 "아빠, 술이 쓴데 달다." 이히히 웃었다.


술이 써봤자 인생의 쓴맛보다는 못하고,

곧 그 마저도 달달한 취기로 느껴진다는 것을 배운 건 아주 한참 지나고 나서였다.


그날, 나는 멀쩡했다. 다음 날도 멀쩡했다. 엄마의 걱정이 무색했다.

주당의 시작이었다.


4. 술잔 뺏기기 1분 전

아빠한테 배워서 그런지 타고난 유전자 덕분인지

나는 마셔도 잘 취하지도 않고, 주사도 없다


그럼에도 이제 그만 마셔야 한다는 신호는 있다.

첫 신호는 젓가락을 떨어뜨리는 것.

두 번째는 영어로 말하는 것.


좀 많이 마셨다 싶은 날, 언제부턴가 엉터리 영어가 섞여 나왔다.

주변에서 하나같이 질색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어느 날 사촌 동생 부부가 만들어주는 술을 마시다 호통을 쳤다.

"제부, 술 비율 이게 뭐죠? Not green이잖아요.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그렇지. This is green이지!"

결국 젓가락까지 떨어뜨리고 남편한테 한소리 들은 뒤 술잔을 뺏겼다.

"아까운 술 그만 축내고 들어가 자라."


5. 오늘의 와인과 안주

오늘 고른 와인은 모스카토 다스티.

달달하고 탄산이 보글보글 올라와 좋아하는 술이다.

안주는 냉장고에 있던 치즈와 딸기. 그리고 집에서 키운 바질다. (누구나 텃밭에 허브는 있잖아요? 캬 내가 이걸 해보다니!)

그리고 이 재료들을 다 모아서 으면 짠, 치즈플래터 완성이다.

치즈는 특이한 음식이다.

한국인에게 치즈란, 꼭 먹을 필요는 없지만

이상하게 어디 들어가도 다 맛있어지는 치트키다.


곁들여 먹는 치즈도 좋지만,

치즈만 모아서 먹는 메뉴가 있다니?

치즈 플래터는 내 기준 제일 맛있는 음식 중 하나다.


화이트 와인에는 생선, 레드 와인에는 고기류.

뭐 그런 공식을 본 것도 같지만

고수가 연장을 탓하지 않듯,

고주망태는 안주를 탓하지 않는다.


와인과 먹어서 맛있면 그냥 다 어울리는 안주다.

그리고 나는 웬만큼 술이 들어가면 다 맛있다.


6. 당신의 글에 건배

다음 안주는 브런치다.

먹는 브런치 말고, 글 쓰는 브런치.

술자리에서 결국 남는 건 함께 마신 사람인 것처럼,

글도 결국 함께 읽어주는 사람들이 남는다.

그래서 내 브런치는 7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언젠가 마봉 드 포레 작가님이 글에서 물은 적이 있었다.

"작가님들은 자기 글이 개쩐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내 글이 개쩌는 정도는 아니지만 웃기다고는 생각한다.

일단 내 저지선을 못 넘는 글은 브런치에 올라오지 못한다.


개쩌는 작가님들은 따로 있다.

마봉님처럼 소설글을 꾸준히 올리시는 분들.

가슴 절절하게 감성을 건드리는 글.

글 주머니가 따로 있나? 싶을 만큼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변주한 글.

나는 따라가지도 못할 과학 분야의 전문적인 글. 그리고 영화와 음악 리뷰 글은 늘 지나치지 못한다.


그러니 나도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심에 감사하고 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글을 올린다.

이 고주망태 글도 피식 웃음을 드렸으면 나는 happy 한 사람이다.


7. 저 안 추ㅣ했습ㄴㅣ다

어엇, 젓가락이 떨어졌다.

잠시, chopstics 좀 줍고 오겠습니다.


가신다고요? 가시기 전에,

Thank you so much, and I love you.

와인 한 잔씩만 하시고 가시지요.


오늘도 이렇게 랜선으로 잔을 부딪혀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잔은 여러분께 드립니다.


콸콸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