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과 감자, 편애로 채운 덕질의 책장
이것은 편애의 기록이다.
좀 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덕질.
내 마음의 책장에 차곡차곡 쌓아온, 취향의 기록이다.
나는 활자중독이라 해도 좋을 만큼 책을 많이 읽는다.
다양하게 많이 읽었다면
더 똑똑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좋아하는 책만 주로 읽어서
그냥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되었다.
일부 웹사이트에는 비밀 번호 분실 시,
본인임을 인증하는 질문들이 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해리 포터.
내 덕심을 은밀히 인증하는 방식이다.
사실 난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으며 자란 세대는 아니다.
다 자랐더니 해리 포터 시리즈가 출간된 세대이다.
"마법사라니! 그거 애들 얘기 아니냐!"
처음에는 열풍에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 우연히, 대학생 때 첫 권을 읽고 나서는,
콧김을 뿜으며 다음 권을 사러 뛰쳐나갔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해리 포터 시리즈는
내 책장 제일 위칸에 고이 모셔져 있다.
덕후는 힘이 없기에 요즘은
컬러 일러스트레이션판 원서를 모으는 중이다.
그 시리즈를 읽으며 나는 상상력의 무한함에 전율했다.
물론 그 뿌리에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있을지 몰라도,
나에게 장르문학의 문을 연 건 해리 포터였다.
해리 포터 2권과 5권에는
세 주인공 중 론의,
그중 비호감 형 퍼시의 여자 친구가 잠깐 나온다.
조연 중의 상 조연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그 캐릭터의 이름,
Penelope clearwater가 너무 인상 깊어서
가끔 웹사이트 아이디로 쓰곤 한다.
그만큼 이 세계는 촘촘하다.
어딘가에 호그와트라는 학교가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은 물론이고, Penelope 같은 상 조연도
어딘가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것만 같다.
그것이 상상력의 힘이고, 설정의 완성도다.
그다음 내 마음속 최애 캐릭터는 점순이다.
정확히는, 점순이로 대표되는
김유정의 소설들이 내 편애의 대상이다.
어렸을 적, 작은 내 방의 한편에는
외삼촌이 읽으시던 소설책들이 꽂혀 있었다.
세로 쓰기에 한자가 병기된 그런 책들.
그중 김유정 전집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독서 편식은 그 책들에서 시작되었다.
"얘, 느 아부지가 고자라지?"
"그럼 혼자 (일)하지, 떼로 하디?"
'개 돼지는 푹푹 크는데 사람은 왜 이리도 안 크는지'
'뱀두 뱀이래야 좋으냐구 ... 빙장님, 빙모님 하라구 ... '
그 책들을 읽으며 생각했다.
웃기다.
정말 웃긴 글인데ㅡ
그 속엔 1930년대 가난한 농민들의 애환이 있고,
청춘의 고민이 있고,
그리고 한 번 더, 웃음이 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유머가 얼마나 강력한 글의 도구로 기능할 수 있는가를.
유머 속에 따뜻함과 날카로운 해학을 얼마든지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시절 읽었던 낡은 전집에는 그런 마법이 있었다.
그 마법은 해리 포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내 마음을 채웠다.
그리고 내 편애의 책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빌 브라이슨의 유쾌함, 박경리의 견고한 서사,
김혜리의 영화적 감수성, 리처드 도킨스의 날 선 이성,
존 르 카레의 정교한 플롯.
에밀리 디킨슨의 고독 속 성취.
그리고 스티븐 킹의 어둡고 단단한 이야기들.
여기에 이동진의 명징한 시선까지.
모두, 여러 번 다시 읽은 작가들의 목록이다.
폭넓지는 않지만,
내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해 준
확실한 취향의 목록이기도 하다.
내 사유와 글쓰기 안에서
그 행복의 조각들이 살짝이라도 비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편애의 목록을 다시 꺼내어 꾹꾹 눌러 적어 본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이름일지라도,
내 마음에는 여전히 해리, 점순이, 그리고 수많은
글자들이 살아 있다.
그 편애가 때로는 내 삶에 마법을 심고,
때로는 찐 감자 같은 따스함을 건넸음을
기록하고 싶어서.
덕질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