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친구 따라 복숭아 먹고 벤치행

할매가 된 여고생 1

by 시트러스

복숭아를 먹으면 못 생겨지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나다.


사실 복숭아는 참 사랑스러운 과일이다.

분홍과 노랑이 절묘하게 섞인 색깔도,

하트를 닮은 예쁜 모양도 그렇다.

향긋하고, 새콤 달콤하며 아삭하게 씹히는 맛까지.

복숭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다.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 복숭아 알러지가 있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는 알러지가 심했었다.

주로 껍질이나 씨에 닿기만 해도,

목과 입술을 시작으로 울긋불긋 부어올랐다.

다행히 몸을 시원하게 하고 찬물을 마시면 가라앉곤 했다.


그러던 것이, 자라면서 한 두 번씩 먹고 붓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차츰 증상이 사라졌다.

고등학생 무렵에는 껍질째 먹어도 괜찮은 정도가 되었다.

그 시절, 가끔 먹던 복숭아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불러온다.


사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의 여고생 시절은

복숭아처럼 말랑하고 예쁜 시간은 아니었다.

차라리 동네 뒷산의 돌복숭아나 지천에 널렸던 야생매실 같은, 거칠고 신맛 가득한 시간이라면 모를까.


여고를 나온 이들은 알 것이다.

여고생들이 얼마나 사납고 용맹한 지.

우리는 그 시절, 비가 오면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찼고,

쉬는 시간에는 교복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매점까지 전력 질주했다.


고2 때, 나는 친구 세 명과 주로 함께 다녔다.

할매, 감자, 돼지, 절도.

여고생다운 박력 넘치는 별명이다.

이 중 내 별명이 무엇인지는, 사회적 체면상 생략한다.


"할매, 니 오늘 얼굴 이상하다."

자가 내게 말했다.

1학년 여름 방학 때 얼굴이 까맣게 탄 그 친구는,

껍질이 벗겨지면서 '감자'가 되었다.


"외모 비하하지 마라. 그리고 내 얼굴은 원래 이렇거든."

"아이다. 니 지금 눈티 밤티다."

절대 도움이 안 된다고 별명을 지어준 친구, '절도'도 거들었다.


"할매, 죽는 거야?"

착한 목소리로 그렇지 못한 말을 하는 '돼지'.

예쁘고 통통해서 꽃돼지로 불렸었다.

건장한 여고생으로서 우리는 양심껏 '꽃'을 뗐다.


'할매'는, 학기 초에 '니 필통 색깔 참 곱다',

'우리 벚꽃장(진해 군항제)에 구경 가자.'는 말 몇 마디로 고3까지 내 별명이 되었다.


"아차!"

그제야 모의고사를 친 뒤, 하굣길에 복숭아를 나눠 먹은 기억이 났다.

학 성적 때문에 우울해하고 있는 내게

'이거나 무라.'하고 친구 중 누군가 건네줬었다.


해가 떠 있을 때 집에 갈 수 있는 즐거운 날.

큰 복숭아 하나를 나눠먹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눈가 쪽이 수상하게 간질간질하더라니.


"이거 복숭아 알러지다. 괜찮아진다."

나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친구들은 막무가내였다.

눈이 퉁퉁 부은 나를 놀리면서도 은근슬쩍 가방을 벗기고,

양쪽에서 연행하듯 팔짱을 끼었다.

그들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가겠다는 나를 무력으로 정류장 근처 벤치에 앉혔다.


"니 지금 너무 못생겨서 못 간다."

감자가 어느새 찬 생수를 사 와 건넸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니 보고 놀라면 우짤래.

다른 사람들 눈은 생각 안 하나!"


간다, 못 간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던 나는 결국 좀 앉았다 가겠다고 했다.


평소엔 도움이 안 됐지만 마음만은 여린 절도는,

'마음의 준비를 해라' 하면서 손거울로 부어오르는 눈을 비춰 주었다. 그날만큼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내 앞을 가려 주는 등 의외의 도움을 주었다.


"너거 힘으로 해결하는 버릇 고치라 했제!"

"할매, 이제 진짜 죽는 거야?" 돼지가 내 손을 잡았다.

"아, 안 죽는다고!"


다행히 알러지는 그날 금방 가라앉았고,

친구들도 나도 제시간에 집에 갈 수 있었다.

늘 고민을 안겨 주던 모의고사 수학 성적도,

로 걱정도, 그날만큼은 팅팅 부은 눈으로

친구들과 웃고 소리 지르는 덕에 좀 덜할 수 있었다.


불안하고 예민하면서도,

이유 없이 자주 웃었던 그 시절.

거친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우리는 서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그 뒤, 몇 년이 지나 어른이 된 후에도 친구들은 가끔 그날 일을 꺼내며 날 놀렸다.

지금은 각자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연스레 연락이 줄었다.

SNS로 소식을 알 수 있지만 굳이 연락을 하진 않는다.


덜 좋아해서도, 덜 그리워서도 아니다.

그 시절은 이미 하나의 예쁘고 동그란 복숭아처럼,

완벽하게 내 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내게 아쉽고 돌아보고 싶은 시간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늘처럼 철 이르게 나온 복숭아를 마주할 때 풋, 웃음이 나며 꺼내보는 그런 시간이다.

아마 친구들도 그렇지 않을까.


알러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복숭아.


돌복숭아처럼 거칠고 힘들게 지나왔다 생각했지만,

내 다정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청춘의 시간이기도 하다.


복숭아는 내게 언제나 참, 사랑스러운 과일이다.




이 글은 다음 주 수요일,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문지방은 참았지만 수학은 못 참았다 – 할매가 된 여고생 2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