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짱 Mar 08. 2022

설국열차

미장센이라는 문 너머에 네가 바라는 세상이 있어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는 공간의 예술이다.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연극, 뮤지컬의 공간과 영화의 공간은 '미장센'이라는 단어를 공유하는데, 무대 위의 등장인물을 포함한 시각적 정보의 총체다. 영화에서 미장센에 해당되는 부분은 카메라 렌즈가 비추는 사각의 범위다. 그래서, 모든 시작은 무대 위, 카메라 앞 렌즈의 사각에 해당하는 공간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공간은 감독이 우리에게 허용한 방, 즉 밀실이다.


<설국열차>의 공간은 캐릭터와 관객이 함께 밀실의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의도된 연출 아래 우리는 꼬리칸에서 그보다 더 넓은 칸으로, 우리가 몰랐던 세계로, 우리가 알아선 안 됐던 세계로, 그리고 그 누구도 깨닫지 못했던 세계로 나아간다. 이를 위해 영화 내에서는 커티스를 중심으로 실제가 아니라 비유적 의미에서의 1인칭 시점을 사용한다. 그가 깨닫는 만큼 우리도 깨닫고, 그가 나아가는 만큼 우리도 나아간다. 이런 진행은 좁은 길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방향의 구조를 모방한다. 기차에서는 옆으로 갈 수 없으니 우리는 구조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커티스의 좌절과 성취로 이루어질 것 같던 이야기가 방향을 달리하는 건 그저 커티스의 조력자에 지나지 않았던 남궁민수의 말 때문이다. 커티스와 남궁민수의 대담 장면에서 두 사람의 원샷을 주고 받는, 지극히 평범한 1인칭의 샷을 사용하던 카메라는 남궁민수가 벽을 가리키며 “이것도 문이야”라고 말하자 이 도식화된 구조를 깨뜨린다. 카메라는 커티스가 아니라 관객의 눈을 따른다. 남궁민수를 바라보는 커티스의 시선에서 위치를 바꾸어 그의 옆으로 향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더 넓은 공간. 

우리는 여태껏 꼬리칸이라는 밀실에서 탈출해 더 넓게 나아간다 생각했지만 기차 역시 단 하나의 밀실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설국열차>는 감독이 제시하고 있는 미장센 너머의 미장센을 거의 완벽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보여주는데, 그건 창문으로 드문드문 보였던 끝없는 흰색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이기도 하다. 가능성과 희망. 관념적이지만 그 자체로 분명한 또 다른 공간이 거기 있다.


이때부터 커티스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1인칭 구조는 혼돈을 일으킨다. 커티스와 남궁민수, 두 사람을 오가며 우리는 고착화하려는 자와 해방하려는 자를 번갈아 맛본다. 우리는 이제 이 기차의 처음과 끝을 모두 알며 기차 바깥에 대해 안다.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요나가 달려나온다. 이제는 밀실 바깥이 아니라 밀실 안의 밀실을 보여주기 위해. 이 거대한, 한 채의 닫힌 방이 운영될 수 있는 최후의 공간. 바닥을 열면 그곳은 5살 이하의 어린 아이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나오며, 거기서 기차를 수동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착취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시야는 확장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공간을 믿을 수 없고 열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확정성을 믿을 수 없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우리는 좁은 방에 있다. 

감독이, 혹은 어떤 기득권이 열어주지 않고는 존재조차 모를 방 안에. 기어코 자신이 만들어낸 좁은 방과 공간을 터뜨리며 <설국열차>는 그저 흰색이 만발한 허무의 공간에 관객을 요나, 그리고 티미와 함께 내려둔다. 이제 공간은 끝났다. 방도 사라졌다. 가능성과 흰색만이 남았다. 어두웠던 영화관의 조명은 켜지고, 우리는 영화관의 좁디 좁은 방 안에서 나온다.


끝없이 공간이라는 개념을 확장하고 파괴하며 진행되는 <설국열차>에서 우리는 하나의 밀실을 발견한다. 인간의 사고와 편견이라는 뻔한 해석도 나쁘지 않다. 중요한 건 저 너머에도 공간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꿔 놓은 미장센 너머에도 세계는 끝없이 공간을 떠올리고 있다. 내가 갇혀있는 밀실 밖에서 움직이고 있는 세계의 가능성이란 얼마나 낭만적인가.


물론, 드라마적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스파크와 같은 깨달음으로 넓히며 파괴하는 <설국열차>에서 가깝게 이어지는 감독의 행보가 두 개의 나뉘어 있는, 절대로 합쳐질 수 없는 공간과 또 다른 확장될 수 없는 공간의 서스펜스적 발견인 <기생충>으로 이어진다는 건 이보다 훨씬 재밌는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