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 드럽게 기도 응답이 안되네요, 하나님…”
라고 중얼거리던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시름을 달래며 책을 읽고 있었지요.
Patrick McGee의 <Apple in China>.
선입견과는 다르게 거대한 전략이란 것도 하나 없이, 우연히 중국에 진출한 애플이 어떻게 점점 더 한 나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가는지를 흥미롭게 기록하고 있더군요. 반면 애플 덕분에 중국은 일류 제조업 기술을 터득하고 이를 로컬 기업들에게 이식하게 되어 마침내 선진국 수준의 산업역량에 이르게 되죠.
기업 백서 같은 따분한 서술이 아니라 그 과정을 일구어 가는 사람들의 출생과 가정환경, 교육, 애플과 만나기까지의 이력들이 어우러져 결국 운명처럼 그들의 미션을 만나 달성하는 과정이 재미있게 읽히더군요. 거기에 잊을만하면 곳곳에 등장하는 스티브 잡스의 날 것 그대로의 욕지거리까지.
그렇게 한참을 읽어 나가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30대 정도로 보이는 두 여자분의 이야기가 조금씩 귀에 꽂히더군요. 타로점이 어떻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올해 연애운이 어떻다는 둥, 멋진 남자가 어디선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는 둥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 보아하니 무당 또는 점쟁이와 클라이언트 간의 대화더군요. 흠.. 이런 consumer-friendly(소비자 친화적)의 찾아가는 서비스로 무장하니 AI 시대에도 저렇게 점술 마켓이 성행하는구나 싶더군요.
미래를 내려다본다는 듯 자신 있게 태블릿을 들고 컨설팅을 해주는 21세기 무당과 (그래봤자 옆에 앉은 멋진 남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이지만), 이를 열심히 받아 적으며 삶의 의욕을 불태우는 젊은 여성. 바로 옆에는 “왜 이리 기도 응답이 안 되냐” 낙심하며 걷던 퇴근길에 로뎀나무 아래가 아닌 아파트 단지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낭만 고양이와 두 눈이 마주치며 “니 팔자나 내 팔자나...” 한 마디 건네는 하나님의 사람.
이 배경에서 한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성경 열왕기상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크게 꾸짖죠. 대체 언제까지 하나님과 우상들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며 살 거냐고. 어렸을 때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죠. 나이가 들고 보니까 알겠더군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고 오히려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같은 즉각적인 응대 서비스를 갖춘 우상 비즈니스를 이용하는 게 더 맘이 편하고 세상살이 쉽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겠지요.
자, 그럼 이제 나도 믿음 따위 내려놓고 오라클을 든 여자 점술가를 찾아가 내 인생 어찌 되어갈지 물어야 할까요?
아니면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에 맞서 목숨을 건 기도 응답 대결을 벌였던 엘리야처럼 제단에 물을 부어 넘치게 하며, 오직 하나님의 응답만 끝까지 붙들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과연 허세일까요?
이화여고 앞을 걸어가던 20년 전 어느 맑은 오후.
내 앞에 걸어가던 여고생 서너 명이서 대화를 나누더군요. 말끝마다 ‘존나’를 섞어가며.
‘쟤네들 저게 무슨 뜻인지 알고나 말하는 걸까?’
듣기 싫어서 빠르게 앞질러 가다 슬쩍 보니 그중의 한 여학생이 참으로 예쁘게 생겼었지요.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 걸그룹 센터에 자리해도 될 만큼. 예쁜 소녀가 저렇게 상스러운 말을 해대는 게 너무 화가 나서 걷다가 멈추고는 돌아서서 그 소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지요. 그런 자신이 창피했던 건지, 잘생긴 오라버니의 시선에 부끄러웠던 건지 얼굴이 턱밑에서부터 시뻘겋게 달아오르더군요. (후자라고 아직까지 굳게 우기고 있죠) 그 순간 맘속으로 기도했지요. 고운 말 쓰는 멋진 여자가 되라고.
세월이 흘러 그 강직했던 오라버니는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며 그때 그 소녀가 내뱉던 욕을 하고 있네요.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아마 난 고개를 들지 못할 거 같군요.
이제는 중년을 향해 가는 미모의 30대 후반 여성이 되었겠지요. 어디서든 잘 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