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 년 전 진주 교육사령부에서 공군 사관후보생 기본군사훈련 때 가장 힘들었던 수업이 전술학장 완전군장 구보이죠. 전술학 수업이 가장 고통스럽다는 선배들의 얘기에, ‘이 형들 손에서 책을 놓은 지 하도 오래되어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나 손자병법을 배우는 게 어렵단 건가’ 했던 참으로 나이브(naive)한 청년이었죠.
일단 이 전술학장이란 게 훈련단 앞 산 정상에 지평선이 펼쳐진 광활한 분지에 자리하고 있죠. ‘광활한’이란 두루뭉술한 묘사를 할 수밖에 없는 건, 당시 훈련 중 고개라도 돌린다 싶으면 단체로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으로 굴림당하기 때문에 차렷 자세에서 정면을 바라본 채 눈알을 굴려가며 대충 그 넓이를 짐작했기 때문이죠.
5분 안에 식사를 해야 하는 규율과 밥심이 모자라 체력이 달리면 훈련받다 쓰러질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어우러져 결국 간식으로 딸려 나온 월드콘을 뜨거운 밥에 비벼 먹는 강수를 두기에 이르렀죠. 훗날 이세돌과 알파고의 네 번째 대국에서 그 유명한 백 78수에 맞먹는 신의 한 수라 할까. 물론 이세돌 기사는 겸손하게도 꼼수였다고 고백하던데, 이것이 고수와 하수의 차이인가 싶군요.
아무튼 무거운 군장을 메고, M16 ‘앞에 총’까지 하고 나면 가슴이 조여와서 숨쉬기도 힘들어지죠. 이 상태로 훈련단에서 전술학장까지 뛰어가는데 이미 힘을 40% 소진. 이어서 저 광활한 분지에서 펼쳐지는 ‘얼차려’로 추가 40% 소진. 이제는 저전력 모드로 가야 함에도 얄궂게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구보. 몇 바퀴를 돌지 교관들이 얘기를 안 해주기에 (대략 15~20 바퀴씩 돈 듯) 페이스 조절을 할 수가 없어서, 매 바퀴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거니 하는 희망으로 버티는데, 또다시 돌 때마다 숨 가쁨과 절망감에 쓰러지는 줄 알았죠. 이때 맘속으로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뛰었던 기억이 여태껏 잊히지 않는군요.
이때 알게 되었죠. 고난이 힘든 건,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난한 과정 때문이란 걸.
불안해하는 술 맡은 관원장의 지난밤 꿈을 해석해 주고 감옥에서 풀려날 거라 안심시켜 주는 요셉. 복권하게 되면 억울하게 옥살이하고 있는 자신을 파라오에게 아뢰어 사면케 해달라고 부탁했건만 요셉은 잊히게 되죠.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창세기 40:23)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가에 서 있는데 (창세기 41:1)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창세기 40장과 41장 사이의 만 이 년 동안 요셉은 어떻게 버텼을까요.
기도의 응답이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요새 문득문득 드는 생각에 군장을 벗어던지고 이제는 뛰는 걸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도 인정받지 못하고 이렇게 잊히고 마는 걸까?’
만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게 된다면, 창세기 40장과 41장의 행간을 어떻게 버텨내고 승리하였는지에 대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게 되겠지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금신상에 엎드려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 태워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건져 주실 거라는 믿음을 드러낸 다니엘의 세 친구들.
“그러나 그렇게 건져주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금 신상에 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한 채 풀무불에 던져지지만, 불타지 않고 살아 나오게 되죠.
이 믿음을 따라 살아왔건만, 불속에서 살아 걸어 나온 다니엘의 세 친구들과는 달리, 결국 풀무불에 얼굴 살갗이 익어 피부과에서 레이저 시술받으며 버티고 있는 요즘.
“이 정도면 저 행간에 실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최상급 신앙이 아닐까요?”라고 우기고 있는 일요일 저녁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