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00 싱글실패
올해 상반기는 서울동아마라톤 이후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느라 대회 출전이 없이 보냈고, 한 여름 가장 덥던 8월 초 열대야 속에 한강에서 열린 해피레그 울트라마라톤만 참가하였다. 하반기 시작은 9월 초 철원마라톤에서 시작하여, 강남평화, 춘마, Jtbc서울을 달리고 마지막 대회로 손기정 평화마라톤대회를 한 해를 마무리로 잡았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고 Jtbc서울대회가 끝나고 일주일 지나서 스피드 주를 하다가 왼발 복숭아뼈 아래에서 통증이 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대회준비로 일주일 전 23km 장거리주를 하고 나니 통증이 도진다. 아무래도 의욕만큼 몸이 따라오지 못한다. 그만큼 근육도 노화된 것 같다. 5일간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하니 하루가 다르게 차도가 있다. 대회 3일 전 가볍게 달려 보니 대회 출전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대회출전으로 마음을 다잡고 준비를 하였다.
하루 전에 한강의 찬 강 바람을 맞으며 가볍게 달려주고 대회 준비물을 챙겼다. 하루 전날에 출발 한 시간 전인 7시 30분까지 대회장에 도착하면 되겠지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대회날 6시 30분에 일어나 날씨를 체크라니 쌀쌀하지만 한낮으로 가면서 기온이 오른다 한다. 달리기 복장을 챙겨 미리 입고 대회장에 도착하니 서울시장의 인사말이 있고 풀코스 주자는 출발지로 이동하라는 방송에 뭐가 잘못되었다고 그때 생각했다.
7시 30분 대회장 도착을, 일어나면서 7시 30분 출발로 뇌 회로가 인식을 한 것 같다. 부랴부랴 물품보관소로 가니 줄이 너무나 길어 출발 시간 전까지 물품보관이 불가능하다. 염치 불고하고 풀코스 출발시간이 임박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먼저 물품 보관을 부탁하니 풀코스는 반대편 끝으로 가란다. 복장 준비는 겉옷만 벗으면 되니 간편하고 에너지 젤만 챙기고 물품보관을 끝내고 나니 5분이 남았다. 화장실 들리고 총알 같이 뛰어서 풀코스 출발 장소로 가니 8시 30분이다. 진행이 2분이 늦어 호흡을 고르고 나니 출발 신호가 울린다. 체온 보온 비닐이고 장갑이고 챙길 겨를이 없었다.
준비운동도 없이 허둥지둥 출발을 하니 호흡이 가쁘다. 컴 다운, 컴 다운으로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해 보면서 1km를 지나니 4분 45초로 늦지만 페이스를 찾아가고 있다. 풀코스 참가자가 적어 띄엄띄엄이라 동반주자를 찾으니 젊은 친구가 페이스가 비슷해 함께 달렸다. 2km를 지나니 춘마, JTBC를 동반주 했던 의정부 양*현 님이 따라 붙는다. Jtbc에서 싱글을 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했었다.
올해 바뀌 코스는 1차 반환이 가양대교 남단을 건너서 돌아오는 코스다. 이곳은 소위 나의 나와바리로 하늘공원 훈련 갈 때 가장자리 보행자길을 달렸지만 오늘 하루만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가양대교를 달린다. 자주 달리는 길이라 감회가 남다르다. 남단에서 반환하면 5km를 지나고 페이스가 잘 유지되고 있다. 돌아오는 길은 월드컵 공원 내부길로 접어든다. 외곽을 잠시 돌아 구름다리를 넘어 한강으로 나간다. 아치로 된 구름다리는 러너에게는 피하고 싶은 길이다.
한강길로 나오니 이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창릉천을 따라 오르는 코스는 주로가 좁아 대회에는 잘 이용되지 않는 코스를 이번대회에서는 달린다. 하프주자가 이용하는 길이라 먼저 이 길을 선점한 하프 참가자들이 주로를 방해해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 속도가 느린 런너가 앞에서 2~3명씩 짝을 지어 달리면 좁은 주로 에 돌아서 달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22km쯤 되는 2차 반환점은 마지막은 좁은 길이었다. 꼬불꼬불한 길에 강바람까지 불어 힘든 레이스다. 초반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렸던 젊은이는 25km를 지나면서 뒤로 처지고 의정부 젊은 친구와 함께 했다. 40대 후반의 나이로 체력이 좋은 친구다. 이런 친구와 같이 달리면 때로는 조력자로 때로는 경쟁자로 기록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크게 보면 마라톤은 개인 경기지만 함께 해야 좋은 기록이 나오니 개인경기라고만 할 수 없다. 나 홀로 42.195km를 달린다고 생각해 보면 그건 형벌이다.
가양대교를 앞두고 28km를 달릴 때 앞에는 올해 서울동아마라톤대회에서 여성 1등을 한 홍**님이 달린다. 많이 지쳐서 페이스가 점점 떨어지니 앞설 수 있었다. 보폭이 넓은 것 같아서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으니 보폭을 줄이고 핏치수를 높이세요.'라고 전하고 달리니 뒤에 따라 붙는다. '싱글 목표로 달리니 따라오세요.'라고 하니 '같이 달리니 편하네요 한다.'
역시 30km를 지나니 마라톤의 진한 고통이 전해져 오기 시작한다. 이제는 인내하고 견디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다. 다행히 함께 달리는 동반주자가 있어 밀리지 않으려고 힘써 보지만 야속한 앞바람에 1km당 1 ~ 2초씩 밀린다. 3차 반환은 서강대교를 지나 2 ~ 300m 지나서 돌아오는 길로 앞선 주자를 보니 표정이 많이 일그러져 있다. 남은 길은 사점이라 하는 한계의 벽으로 힘들어하는 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힘들게 따라오던 홍**님도 뒤로 쳐진다. 그게 의지만으로 극복되는 게 아닌 한계가 분명 있다. 3차 반환을 하고 현재시간을 확인하니 이대로만 달리면 싱글은 가능하겠다. 하지만 조금도 페이스를 늦추어서는 안 되는 간당간당하는 시간이다. 조금만 늦추어 달려면 편한데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입상권도 아닌데 뭐가 나를 이토록 달리게 만드는 걸까? 런너라면 그간 훈련해 온 결과를 완주기록이란 숫자에 위안을 받고 보상을 받는다. 그건 런너로써 최고의 상이다.
종반으로 가면서 느려진 런너를 앞서 달려 41km를 지났다. 남은 거리와 시간을 보니 싱글이 가능한데 염려했던 피니쉬 라인 가는 길은 강변북로를 건너는 아치 다리를 건넌다. 체력은 바닥이 난 지 오랜데 다시 급경사 다리를 올라야 한다. 이 구간이 가장 느린 4분 49초를 뛰었다.
마지막 여정도 운동장 모퉁이를 돌고 돌아 다시 돌아 피니쉬 라인으로 통한다. 피를 말리는 달리기지만 포기하지 않고 마른 수건을 다시 짜는 마음으로 달려가니 바로 피니쉬 라인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195m를 359로 달렸다. 문자를 확인하니 결과는 3:10:00:80이다.
아쉽지만 최선을 다해 달렸기에 후회는 없다. 기록면에서는 앞 두대회 보다 늦었지만 주로 상태, 기온과 바람 등을 감안하면 결코 밀린 기록은 아니다. 이로써 2023년 마라톤대회는 끝을 냈다. 한 해 동안 부상 없이 모든 대회를 소화할 수 있었음에 만족한 한 해였다. 잠시 대회를 쉬면서 다가올 2024년 대회를 준비해 보자.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출발선에 있다. 출발선은 늘 기대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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