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뮤어 생각이 옳았다.
늦어진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 1일 20km 내외를 걷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고 5시에 식사를 하고 6시에 출발하기로 정했다. 지금부터 더욱 힘든 빡빡한 일정이고 식사는 각자 갖고 있는 곰 통의 식량으로 개인별로 하되 하루를 늘려 다음 식량 보급지인 뮤어 렌치에 가기로 했다. 더 많이 걸어야 하고 더 적게 먹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였는데 이런 걸 두고 설상가상이라고 한다.
핀쇼 패스까지는 6.2km를 걸어야 한다. 알파미 한 봉지를 먹고 오전을 걸어야 하는데 힘이니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개인별로 라면을 먹는 사람, 누룽지를 먹는 사람, 알파미를 먹는 사람도 있다. 가스연료도 아껴야 하니 최소로 뜨거운 물만 끓여 먹는다. 미소된장을 뜨거운 물에 풀고 후룩 마시고 나서 기호식품으로 준비해 간 믹스커피도 한잔 마셨다. 무엇이든지 먹어 두어야 걸을 수 있지 에너지가 몸에서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식사 후에도 뱃속의 허전함이 느껴진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걷는다데 뱃속이 헛헛하다. 나에게는 다행히 비상으로 준비해온 선식이 있으니 정 급하면 그거라도 짬짬이 물에 타서 마셔야겠다.
존 뮤어 트레일은 짐과의 무게 전쟁이라 오니언 벨리까지 걸어 보고 최소의 식량으로 챙겨 왔는데 하루가 늘어 나흘 치로 닷새를 버티어야 하니 식사 때가 되면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배고픔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장거리 트레킹에서는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굶주림 앞에서는 원초적 본능으로 돌아가서 야박한 인심을 느끼게 된다.
어쨌든 또 날이 밝으면 걸어야 한다. 5시 30분에 핀셔 고개를 향해 출발을 했다. 처음부터 오름의 연속이다. 어제까지 힘들게 걷던 여자대원은 마법에 풀렸다고 하니 다행이다. 오늘부터는 잘 걸었으면 좋겠다. 오름길에는 몇 개의 작은 호수를 연속으로 지나는데 호수 속을 들어다 보면 호수 속에 산이 반영이 되어 거울을 보는듯하고 찬 호수 물에는 송어가 유영을 하는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연속되는 오름에 힘들어지면 묵언수행의 시간이 된다. 힘겨운 오르막에 고소까지 느껴지니 한걸음 한걸음이 새삼스럽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천천히 움직여 에너지 절약형 걷기를 한다. 뱃속만 든든하면 힘을 좀 써 보련만 지금은 이렇게 걷는 것이 최선이다. 수목한계선을 지나니 붉은 색깔의 산줄기들이 이어지고 그중 가장 낮은 곳이 핀쇼 패스다. 지금까지 보아 오던 흰색 화강암이 아닌 붉은색을 띤 산이 이채롭다. 서부영화에서 보던 말 탄 카우보이가 떠오르고 서부개척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풍경이다.
이 고개의 이름은 핀셔 패스다. 핀쇼(Pinchot)는 미국 초대 산림청장인 기포트 핀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고개다. 당시 자연보전 주의자였던 존 뮤어(John Muir)는 자연은 인간을 위한 이용 측면이 아닌 자연 자체의 내재된 가치와 아름다움과 신성이 깃든 주체로 보고 존중하고 보전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고, 핀쇼(Pinchot)는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지혜롭게 이용하기 위해 보호되어야 하며 자연도 인간이 이용하여야 할 대상이란 것이다.
초창기에는 함께 자연보호주의자로 뜻을 갈이 하였으나 샌프란시스코시의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요세미티 공원 인근에 있는 헤츠헤치댐 건설에 대해 의견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찬반 의견이 양립하는 헤츠헤치계곡의 댐이다. 그들이 떠나고 난 지금은 지연 보전의 우위의 개념으로 뮤어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당시 핀쇼와 뮤어를 생각하면 4시간을 걸어 오른 핀쇼 패스에는 남으로 진행하는 트레일러들이 먼저 올라와 쉬고 있다. 이곳에서 걸어온 길과 걸어서 갈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패스 바로 아래에는 미조리 호수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JMT가 아름다운 것은 높은 산속에 호수가 있어 더욱 아름다움을 준다. 만약 물이 없다면 아름다움이 많이 반감되었을 것 같다.
Jmt길은 하나의 패스를 오를 때마다 새로운 세상을 펼쳐 준다. 그냥 쉽게 보여주지 않고 어렵고 힘들게 올라 온 다음에 보여준다. 마치 어떤 관문을 통과한 자에게만 주는 선물같이 보여 준다. 그래서 패스를 오를 때마다 힘은 들지만 이번 패스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선물하지 기다려진다.
패스를 내려가는 길은 스위치백으로 걷기 좋은 길이다. 오가면서 만나는 트레일러들끼리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사를 나눈다.
"Hi"
"Hello"
"Good morning....."
그런데 오늘은 힘을 아끼고 싶다. 말하는 힘조차 아끼고 싶은 날이다.
Jmt길은 패스를 내려오면 물길을 따라 걷는다. 물가에는 초원이 이어지고 꽃들은 저마다 예쁘다고 고개를 내민다. 산의 높이가 더해질수록 꽃의 색깔은 진하고 작다. 고산에서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생존방법이다. 그래야 종족을 번식하면서 대를 이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JMT길은 오전 11시만 되면 태양의 열기가 뜨겁다. 지열이 확확 달아오르고 건조한 공기는 숨이 탁탁 막힐 정도로 후끈하다. 사막의 기후라 콧속까지 건조함이 느껴진다. 정오에 냇가에 앉아 개울에 발을 담그고 뜨거운 열기를 식혀 본다. 아직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 곳은 없고 잘 버티어 주고 있다. 속 양발로 발가락 양발을 신었는데 땀으로 축축이 젖었다. 쉴 때마다 햇볕에 말리는데 건조하고 햇살이 강해 5분이면 마른다.
선식으로 계곡물을 떠서 정수해 마시면 점심 끝이다. 현지인들은 물을 끓여 수프로 마시고 비스킷과 건과류 몇 개 먹으면 그게 식사다. 그들의 식사는 단출해서 좋다. 다시 길에 섰다. 큰 물줄기를 만났다. 다리는 없다. 불어난 물에 돌다리가 위태로워 좀 더 위로 올라가니 통나무를 타고 건널 수 있다. 원시로 돌아간 느낌이다.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고 있는데 JMT를 남진하여 걸어 내려오는 한국인을 만났다. 미국인 여자 친구와 걷고 있는데 오늘 마더 패스를 넘을 수 있는 시간이 되고 하니 물어보니 힘든다고 한다. 추천해 주는 야영지는 마더 패스를 넘기 전 호숫가에서 자고 내일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궁금했던 요세미티 산불 소식은 지금은 산불로 요세미티로 들어갈 수 없고 우리가 통과할 때인 10일 후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여기까지 산불의 화기 냄새가 느껴진다. 어서 산불이 진화되어 Jmt 전구간을 종주할 수 있길 소망해 본다.
호수로 올라가는 도중에 국립공원 레인저를 만났다. 두 번째 퍼밋 검사다. 서류를 꼼꼼 읽어 보고 인원을 체크한다. 이렇게 더운 날 직업으로 Jmt길을 걸으며 산림보호단속 일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직업인 것 같다. 특히 산을 좋아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힘든 직업일 것이다. 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같다면 최고일 것 같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중 어느 것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할까? 직업이라면 우선은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미국 국립공원 관리소 직원을 레인저(Ranger)라 부른다. 경찰처럼 사법권을 가지고 있으며 실탄이 든 권총과 수갑을 소지하고 있으며 곰 퇴치용 페퍼 스프레이를 소지하고 있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자연훼손을 막고 트레커들의 공원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일이다. 이곳에서 근무는 눈이 내리지 않는 6월부터 9월 말까지 4개월 근무를 하고 트레일이 폐쇄되는 10월부터는 도시공원에서 근무를 한다.
레인저란 직업이 미국인들은 선호하는 3번째 직업이라 지원자가 많다고 한다. 공원과 관련된 과학, 생물, 지리 등 관련학과 선생들이 지원하기도 하고 경찰 출신도 많다고 한다. 산속에서 생활할 때 생필품 공급은 주로 말을 이용하지만 헬리콥터를 이용해 보급을 받기도 한단다.
JMt를 종주하고 나면 체중이 많이 빠지는데 그건 문명에 찌든 세포들이 다 빠져나가고 오염되지 않은 몸으로 거듭 탄생하는 신호로 그게 이 산이 Jmt를 걷는 트레커들에게 주는 축복이라고도 한다. 많이 걷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물 좋고 산 좋은 곳에서 사는 시간은 지나고 나면 꿈같은 시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배도 고프고 힘들어 힘든 하루다.
한 무리의 트레킹 팀도 그늘에 쉬고 나서 앞서 걷더니 마더 패스를 넘기에는 시간이 늦어 호수가로 탠트칠 자리를 보러 다닌다. 오늘은 마더 패스 오르기 전 마지막 호숫가에 탠트를 쳤다. 장소가 고르지 않아 각자 떨어져 호숫가에 집을 지었다. 하루에 한 번씩 치르는 의식같이 집을 짓고 아침이면 다시 부수고 길을 떠난다. 식량을 비축하려고 저녁식사는 컵라면 1개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면 물이라도 넉넉하게 붓고 면은 불려서 먹어야겠다. 음식이 모자라니 소중함을 알겠고 더 맛이 있다. 서울의 자장면과 장터국밥과 갈치조림이 더 그리워진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햇살이 비추어 주어 따뜻하고 포근했는데 해가 기울어 음지가 되니 금방 썰렁한 게 춥다. 밤이 되니 고도가 높아 바람마저 세게 불어 탠트 고정용 팩 위에 큰 돌을 눌러 자다가 탠트가 쓰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을 했다. 이 고요한 시간도 이 또한 지나가는 일순간인 것을 지금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이 산을 떠나면 다시 그리워지고 이 순간만큼 행복했던 시간도 없을 것 같다.
Jmt는 분명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많지 않은 소수 인원만 걷도록 하여 자연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게 지금까지 이곳을 지켜온 존 뮤어의 뜻이기도 하고 그 뜻을 잘 이어가고 있다. 그가 주창한 '자연은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해야 하고, 자연을 느끼고 싶다면 다른 어떤 수단을 사용하지 말고 두발로 걸어라.'라고 했다.
오늘은 어머님의 품 안 같은 마더 패스(Mather Pass) 아래 호숫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곳의 주인인 마모트가 눅눅한 몸을 말리기 위하 토굴에서 나와 뒷다리로 높이 서서 사주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주변을 살핀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Jmt길이다. 존 뮤어가 살았던 그때나 지금이나 자연은 그대론데 이곳을 찾는 이만 달라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