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화가 입을 벌린다.
늦은 출발에 거리를 만회하려고 너무 늦은 시간까지 걷다 보니 어두워서 제대로 된 캠핑장이 아니고 야생에서 탠트를 쳤더니 경사가 심하고 돌이 있어 불편하게 하룻밤을 보냈다. 어제 걷지 못한 거리를 걷겠다고 새벽 3시에 기상이라고 한다. 한번 실타래가 꼬이니 계속 헝클어진다. 이제 본격적인 트레일이 시작되는데 하루 이동거리가 일정해야 하고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일정해야 신체리듬이 좋아지는데 들쑥날쑥한 일정으로 새벽어둠 속에 일어나는데 몸이 무겁다.
시간 절약을 위하여 아침식사는 탠트를 철수하여 배낭을 꾸린 다음 물이 있는 호수에 가서 아침식사를 하려고 일어나자 말자 탠트부터 정리했다. 비몽사몽간에 배낭을 꾸렸다. 밤하늘에는 달과 별이 총총한데 어두운 JMT길을 렌턴에 의지하여 출발했다. 호숫가에 도착하여 버너의 불을 켜고 물을 끓여 알파미에 뜨거운 물을 붓고 15분을 기다려 밥이 완성되면 식사 준비 끝이다. 이것도 종류별로 여러 가지가 있어 비빔밥도 있고 산채나물도 있고 카레도 있어 골라 먹은 재미가 솔솔 하다. 장기간 트레일이다 보니 배낭 중량에 대한 부담감으로 식량 무게를 줄이다 보니 먹는 게 부실해진다. 먹는 게 귀하고 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산중에서는 먹는 것에 더 집중을 하게 된다. 끝까지 체력을 유지하며 잘 걸을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글렌 패스로 오르는 길은 스위치백으로 지그재그의 길을 걷는다. 높이 3,600m의 산중에 오른쪽으로 큼지막한 호수가 2개나 있다. 아침부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어깨의 고통이 점점 더해 갈 때 패스 정상에 오르자 여명과 함께 펼쳐지는 세상은 조물주가 여기에 무슨 짓을 하였는지 미지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얼마나 감동을 하였는지 그런 풍경에 매료되어 목 놓아 우는 분이 있다. 그리고 함께 하여 고맙다고 부둥켜안고 꺼이꺼이 운다. 인간은 슬퍼서도 울지만 너무 기뻐서도 극한의 표현은 눈물이 란 걸 JMT에서 느꼈다.
글렌 패스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의 풍경은 거대한 시네마 영화를 보는 듯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그곳에서 사람은 주인이 아니고 자연이 주인이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가 되는 숨이 멎을듯한 황홀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거야? 한동안 아침햇살과 주변 풍경에 빠져 있었다.
JMT는 늘 그랬던 것처럼 오름이 있으면 그만큼 내리막길을 걸어야 한다. 어젯밤 레이 호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올라오는 트레커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그만큼 레이 호수는 JMT에서 하룻밤을 쉬어 가고 싶은 곳 중 하나다.
주변이 아름다우면 마음도 아름답고 여유가 있고 좋은 글귀도 떠 오르나 보다. 아침 인사가 "굳 모닝!"이 아니라 "비우티풀 모닝!"이다. 절로 마음이 밝아지는 아침이다.
레이 호수(Rae Lake)는 호수 안에 작은 섬이 있고 호수와 호수를 연결하는 좁은 트레일 길이 연결이 되어 호수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고봉에 겨울 동안 내린 눈이 쌓여 있고 에메랄드 보석같이 빛나는 호수가 있는 3박자가 맞아떨어지는 곳이다.
본시 이곳에서 어젯밤 캠핑장으로 계획되어 있었던 곳인데 오니언 벨리에서 오후에 출발하면서 결국 글렌 패스를 넘지 못해 레이 호수에서 하룻밤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레이 호수를 에워싸듯 펼쳐진 풍경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선물해 준다. 호숫가에는 사슴이 풀을 뜯고 있는데 그간 사람을 많이 접해 본 듯 경계를 하지 않고 풀 뜯기에 열심이다. 이곳의 주인은 태고적부터 살아온 저 사슴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사슴과 곰과 호수의 송어가 주인이고 우리는 이곳을 방문한 손님이란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JMT를 남진하는 한국인 남자 두 분을 만났다. 55년생으로 은퇴를 하고 미국을 한 달간 배낭여행하고 JMT를 걷는다고 했다. 어떤 방식으로 무얼 먹고 걷느냐고 하니 의외로 간단하다. 퍼밋은 요세미티 공원관리소에서 기다리면 한두 명은 당일분 퍼밋이 있기에 운이 좋으면 당일 그렇지 않으면 그다음 날 퍼밋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식량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미리 중간 지점쯤 되는 뮤어 렌치로 10일분 식량을 우편으로 보내면 그것을 찾아 걷는단다.
주메뉴는 무게가 가벼운 누룽지이고 보조메뉴로는 쉽게 익어 연료가 적게 드는 컵라면이고 육포와 사탕류를 간식으로 먹는단다. 배낭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옷은 2벌로 번갈아 가면서 입고 양발도 두 켤레로 교대로 신는단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는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고 기차를 이용하려면 인근 도시인 머시드(Merced)에 오며 요세미티행 그레이하운드가 하루 4편의 버스가 운행되고 있단다. 조금만 발품을 판다면 그리 비용이 들지 않고 워낙 힘이 드는 트레일이라 먼저 체력이 있어야 하고 2명 정도가 좋다는 말씀도 빼먹지 않고 조언을 해 주셨다. 정말 부러운 나그네 같은 생활이다.
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데 고도를 낮춘 만큼 푸른 숲이 어어진다. 10시가 넘어서자 점점 더워지는 열기에 지쳐가는데 후미는 뒤로 처져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캐슬 메도우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내려서니 JMT에서 처음으로 나무로 만든 작은 출렁다리를 만났다. 이 다리는 그리 튼튼하지 않아 한 명씩 통과하라는 안내글이 붙어 있다. 다리 아래는 수량이 풍부한 곳으로 물이 많으면 물을 건널 때 위험하니 다리를 놓은 것 같다.
물 좋은 이곳에 쉬면서 후미도 기다리며 오늘 점심식사는 여기다. 그간 후끈하게 달구어진 발을 양발까지 벗고 눈이 녹아 흐르는 차가운 물에 담그니 한꺼번에 피로가 달아나는 것 같다. 달구어진 발을 식혀 줘야 발바닥에 물집이 예방된다. 길가 소나무에서 떨어진 솔방울이 초대형 왕 솔방울이다. 크기가 등산화 높이와 비슷할 정도로 크다. 미국은 땅도 크고 사람도 큰 사람이 많고 솔방울도 초 대왕 솔방울이다. 미국은 모두가 빅(BIg) 사이즈 인가.
JMT 길이 워낙 험하고 거칠어 멀쩡하던 비브라함 중등산화가 앞쪽에 입을 벌리고 있다. 아직 절반도 걷지 못했는데 등산화가 말썽을 부리면 큰 낭패다. JMT를 걸으려면 신발도 단단한 등산화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그곳 트레일러들의 신발을 유심히 살펴보니 입을 벌리다 못해 아예 떨어져 나가 노끈으로 묶어 놓은 분도 있고 떨어지려는 신발을 태이프로 고정해 놓은 분도 있다. 그것도 응급조치지 얼마나 갈까 싶다. JMT길을 그렇게 험한 길이다.
이제는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조심해서 걸어야겠다. 등산화 밑창이 떨어지면 JMT길도 끝짱이고 나 홀로 중간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등산화의 중요성을 느끼며 더 이상 등산화의 입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걸어야겠다. 걸음에 너무 신겨을 쓰니 주변 풍경을 볼 시간이 없다. 그래도 우선은 등산화가 망가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뒤에서 자꾸 늦어지는 대원이 있어 앞서 걷는 사람들끼리 대책을 상의하였는데 배낭의 무게를 나누어 줄여 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 아직 반도 걷지 못했는데 지금부터 무게를 덜어 주면 앞으로의 길도 맬 수 없으니 그냥 본인이 매고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본인 것은 본인이 매고 30분 걷고 5분 휴식으로 걷기로 했다. 정오를 넘긴 기온은 사막의 가운데를 지나듯 화끈거리는 지열이 훅하고 뿜어 나온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불볕 태양이 머리를 내려 쬔다.
새벽부터 걸었더니 다들 축축 늘어져 오후 4시에 오늘 일정을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당초에 뮤어 렌치를 지나 레드 메도우에서 제로데이(Zero Day)를 사용하기로 했는데 지금 속도로는 도저히 일정을 맞출 수 없으니 뮤어 렌치 이전에 제로데이(Zero Day)를 써야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하루 늦게 도착하는 대신 식량이 하루치가 부족하니 하루에 한 끼를 덜먹고 하루분을 비축을 해야 한다. 이런 힘든 길을 먹는 것을 줄이고 걷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그렇다고 매끼 식사량이 넉넉한 게 아니라 무게를 줄이기 위해 최소량만 가져왔는데 낭패다. 거기에 하루 세끼 중 두 끼만 먹고 한 끼를 줄여 비축해서 하루치를 늘려라 한다. 먹을 때마다 더욱 눈치가 보일 것 같다. 먹는 것 가지고 싸우면 추하다고 하는데 배고픔을 참는 건 가장 큰 형벌 중에 하나다.
하루 15km 남짓 걸어야 하는데 하루 20km를 훌쩍 넘겨 걷고 있으니 체력이 약한 분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당초 계획이 너무 무리였나 싶다. 이번 계획은 다른 팀이 계획을 그대로 옮겨 왔다. 그러다 보니 그 팀의 체력과 우리 팀의 체력을 비교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지금 뾰족한 대책도 없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걷는 방법밖에 없다. 걱정되는 분은 여성 한분과 설사로 고생을 하고 있는 아저씨는 음식물을 먹으면 금방 솟아 낸다. 앞으로 험난한 길이 예상이 된다.
체력적으로 힘든 사람, 설사로 고생을 하는 사람, 나같이 등산화가 떨어져 힘든 사람.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자꾸만 발생된다. 이런 험준한 길을 걷는데 내일은 또 어떤 고난과 역경이 기다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미지의 세계를 걷는 것이다. 갈 때까지 참고 가 보는 것이다. 그게 꿈을 만드는 JMT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