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에서 흑곰을 마주하다.

트레일의 백미 캠프 파이어

by 산달림

호숫가에서 시작하는 아침은 몽환적 분위기다. 싸늘하면서 상쾌한 공기 속에 비몽사몽으로 탠트 문을 열면 호수에서 뽀얀 김이 피어오른다. 탠트에서 기어 나와 기지개를 켜면 오늘은 길 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감동을 받을까 은근히 기대가 된다. 마더 패스에서는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기대감과 설렘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옆 탠트에 "굿모닝"하며 아침인사도 미국식이다.


지나온 시간은 아름다운데 현실로 돌아온다. 매일 반복되는 일에 이력이 나 4시 기상, 40분에 식사 5시 30분에 출발하는 바쁜 아침시간이다. 고도가 높은 탓에 자다가 추워서 침낭 위에 우의를 덮고 잤다. 우의는 생각보다 체온을 빼앗기지 않아 포근했다. 미국으로 건너올 때 한국은 7월 하순은 가마솥 더위로 밤잠을 설치던 때였다. 휴가철의 절정인 지금은 바닷가와 계곡은 피서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것이다. 여기는 한여름인데도 패딩을 입고 그 위에 고어텍스 재킷을 입고 있다. 한여름인데도 화강암으로 이룬 바위산 곳곳에는 하얀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 있어 너무나 대조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열대야 속에 더워서 잠 못 이루면서 밤에 에어컨을 안고 살고 있는데 나는 너무 호강스러운 곳이 있는 건 아닐까.

마더 패스 오르기 전 호숫가 캠핑

여명에 오르는 마더 패스는 크게 오른쪽으로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왼쪽으로 돌아서 패스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3,800m가 넘는 고갯마루에 올라서려면 새벽부터 헥헥 거리며 가뿐 숨을 몰아 쉰 후에야 마더 패스에 오를 수 있었다. JMT는 아홉 개의 큰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마더 패스는 북진하는 트레커에게는 4번째로 넘는 고개로 가장 늦게 열린 고개다. 싸늘한 기온에 산바람이 있어 오래 머물 수 없다.

마더 패스를 오르는 언덕길

추워서 서둘러 고개를 내려오는데 LA에 사신다는 한국분을 만났다. 한국인은 멀리서 보아도 금방 표시가 난다. 모두 어려 보였나 54년 말띠라고 자기를 소개하고는 대뜸 반말을 한다. 요세미티 산불 소식은 완주를 할 수 있느냐 중간 탈출인냐가 정해지는 중요한 일이라 궁금하다며 묻고 있는데 한분이 그 말이 귀에 걸리는지 "또 산불 이야기야!" 하며 기분 나쁘다는 듯 소리치고 먼저 쏜살같이 내려간다. 어제 오후에도 요세미티 산불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왜 자꾸 산불 이야기를 하냐?"라고 듣기 거북한 말들이 오고 갔다.

마더 패스에서 맞는 아침


오름에서 그분의 속내를 알고 싶어 다리 상태가 좋지 않고 체력이 떨어져 늘 뒤에 쳐지는 분이 있어 어쩌면 같이 걷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넌 저시 마음을 떠 보니 "국내 산행이라면 당연히 함께 중간 탈출을 하겠지만, Jmt는 다르지 않냐고 한다." 그분은 그만큼 Jmt 종주에 큰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산불로 Jmt완주를 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나 불길한 예감이 드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나도 내 몸을 챙겨야겠다는 생각 든다. 누구에게 짐이 되어서도 안 되고 부상 없이 살아 만나자고 한 오니언 벨리에 보급품을 전달해 주러 온 사모님 말씀이 더욱 또렸이 떠오른다.

펠리세이드 호수는 바위 봉우리 사이에 숨어 있는 호수로 주변의 깎아지른 바위산이 호수에 반영되어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호수 가장자리는 작은 섬같이 풀들이 자라 조화로움을 더해 준다. 그곳에 금발의 아가씨가 호수를 바라보는 모습이 캔버스 속의 한 폭 그림 같다. 맑은 호수에는 여러 개의 동심원이 파문을 일으킨다. 송어가 모기나 하루살이를 잡아먹는 모습이다.


3,000m가 넘는 이런 깊은 산중에 송어가 살고 모기와 하루살이가 살아간다. 하루살이는 유충으로 1년에서 3년간 물속에서 살면서 물속의 썩은 잔해물을 먹어 치우는 물속 청소부 역할을 한다. 성충이 되면 번식을 위해 지상으로 나와 짝짓기를 하는데 단 하루만 사는 것은 아니고 수컷은 짝짓기를 하고 바로 죽고 암컷은 알을 낳고 죽는데 2일에서 3일까지 살기도 하는데 너무 짧게 살다가 죽으니 하루살이라 한다. 그 죽은 사체는 송어 밥이 된다고 하니 이런 완벽한 순환고리를 이루어 송어도 살아가는 것이다.

한국인 캐나다 유학생을 이곳에 조우

펠리세이드 호수 내리막길에서 캐나다에 유학 중인 한국인 여자 유학생을 만났다. 이름은 '레이니'라고 했고 올해 28세라고 했다. 혼자서 요세미티 해피 아일스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왔다.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등산이나 트레킹 경험이 전혀 없는 아가씨인데 존 뮤어 트레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도전해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한다. 홀로 단독 종주를 하고 있는데 길에서 많은 트레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혹시나 필요할지 모른다고 그들이 준 비닐 테이프를 짚고 다니는 스틱에 몇 겹 감고 다니고 있는 당찬 아가씨다.


식량 조달은 JMT의 중간지점인 뮤어 렌치에서 한 번만 공급을 받고 열흘 치 식량을 매고 다닌다고 하였다.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을 거란 긍정의 생각으로 걷는 모습이 연약하지 않고 씩씩하게 보였다. 휘트니 산을 오르고 휘트니 포탈에서 론파인까지 교통수단이 없는데 어떻게 가는냐고 물으니 이 구간은 히치 하이킹이 쉬운 구간이라 한다. 론파인부터는 대중교통에 연결되니 돌아가는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런 산중에서 동포를 만나 한국말을 마음대로 말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무사히 완주하기를 빌어 주며 다시 길을 나섰다.

펠리세이드 호수

마더 패스는 북진하는 트레커에게는 그리 힘든 패스가 아닌데 남진하는 트레커에게는 오름이 무척 긴 길이라 더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홀로 뉴질랜드에서 왔다는 또래의 Jmt를 종주하는 트레커를 만났는데 밀포드 트레킹 길도 너무 좋은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고 하니 Jmt 길은 그가 평생에 꼭 한번 걸어 보고 싶은 길이 었다며 최고의 풍경이라며 엄지 척을 한다. 그는 이제야 아침 식사로 수프를 먹고 있었다. 이런 음식이 산아래에서는 정크푸드란 이름의 음식이지만 Jmt에서는 이런 고칼로리의 음식을 먹어 줘야 힘을 쓸 수 있다.

수염이 길게 자란 것이 오랜 산중 생활 중임을 보여 주는 뉴질랜드 트레커

그간 지켜야 할 불문율이 하나 있는데 그건 누구도 대장을 앞서 걷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은 내리막 길이고 늘 뒤 쳐 저 걷던 여자분이 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쉬는 시간을 짧게 하고 먼저 출발하도록 하였다. 산불 이야기로 마음이 상한 한분과 둘이 앞서 가고 나니 처음 10명으로 출발했던 팀이 첫날 코튼우드 패스에서 1명이 포기를 하고 오니언 벨리에서 2명이 탈출을 하고 오늘 두 명이 앞서 가며 빠져나가니 이제 5명으로 단출해졌다. 힘든 트레킹 길에 인원이 점점 줄어드니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한참을 내려가니 리콘 케년과 킹스리버의 합수지점이 나타났다. 시계는 오후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킹스리버를 따라가는 트레일 길은 후끈한 한낮의 열기를 느끼게 한다. 하루 중에도 사계절을 맛본다. 늘 JMT길은 오후만 되면 힘이 들고 속도가 잘 나아가지 않는다. 여기부터는 내림의 끝이고 다시 오름이 시작된다. 앞서 걷던 금발의 두 아가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리콘 케년으로 올라 가는데 계곡으로 물을 마시러 내려오는 곰을 만났다.

계곡으로 물을 마시러 내려온 야생 흑곰

대낮에 갈증이 심했던지 흑곰은 트레일 길을 가로질러 냇가로 내려가 물을 마러 내려온 것이다. 이곳에 사는 곰은 비교적 성질이 온순해 사람에게 공격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곰은 열매를 따먹으며 주로 채식을 하는데 해치거나 새끼를 보호할 때가 아니면 공격적이지 않다고 한다. 후각이 매우 발달하여 멀리서도 음식 냄새를 맡고 탠트 가까이 접근해 오기 때문에 모든 음식물과 냄새나는 물건은 반드시 곰 통에 담아 탠트에서 30m 떨어진 곳에 보관하게 하는 이유도 안전한 트레킹을 할 수 있도록 한 규칙이다. 곰은 무섭기도 하지만 JMT에서 곰 이야기만 듣고 곰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했는데 여기서 곰과 조우를 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행운이다.


곰 앞에서 죽은척하면 해치지 않는다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곰과 친구’ 이야기. 산에서 곰을 만난 두 친구 중 미처 나무 위로 피신하지 못한 한 친구가 `곰은 죽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말씀대로 죽은 척하는 기지를 발휘,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는 내용이다. 여기 오기 전 곰에 대한 영상을 보았는데 곰은 죽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여 곰을 만나면 죽은 척하면 헤치지 않고 지나간다고 하였는데 곰은 죽은척하고 엎드려 있던 마네킹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그건 거 사실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착한 곰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해 질 녘까지 걷고 있는 JMT 길

오늘은 무리해서 12시간에 28.3km를 걸어 스타캠프에 도착하여 계획했던 뮤어 렌치 식량보급 날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당초 일정에 맞추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한번 삐끗하면 며칠간 시련이 오는 건 인생살이와 많이 닮았다.


저녁에야 일행 모두가 만나 탠트를 쳤는데 먼저 앞서간 분과 사이가 서먹하니 식사도 따로 한다. 오랜만에 파이어링이 있고 불을 피울 수 있는 장소라 모닥불을 피웠다. 불을 피우는 장소도 먼저 불을 피운 흔적이 있는 곳에서 피워야 하고 나무는 죽은 나무의 잔가지를 이용해야 하며 통나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자연은 보호하려는 자의 노력이 있어야 유지가 된다.

구간 종주 중인 여성 트레커

오랜만에 피워 보는 산속의 모닥불이다. 국내산에서는 예전에 금기시되어버린 모닥불이다. 그걸 미국 Jmt에서 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 세콰이어 숲 속 아늑한 야영장에 자연의 물소리를 노래 삼아 들으며 모닥불을 쬐며 문득 쳐다본 밤하늘엔 세콰이어 나무 사이로 별들이 솟아질 듯 반짝인다. 아름다운 밤이다.


이곳으로 오면서 만난 어린 아들과 함께 한 부자팀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내일은 뮤어 패스를 넘어간다. 이제 Jmt도 절반을 넘어선다. 시작이 반이라 하더니 시작을 하면 끝이 있고 반이 지났으니 곧 끝이 올 것이다. 매일매일 힘겹게 걷는 날들도 끝나고 보면 Jmt에서 보낸 날들을 그리워질 것 같다.

스타캠프에서 오랜만에 피어보는 캠프 파이어

그 남은 날은 사람은 보지 말고 산만 보고 걸으면 내 마음도 맑아질 것 같다. 오늘은 세콰이어 숲과 초원, 폭포, 허브와 밤나무향이 향기로운 숲길이 인상적이었다. 불이 난 자리에 새로운 세콰이어 나무가 자라는 생명의 탄생을 보았다. 산불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미국이다. 그간 괜스레 미국인만 보면 주눅이 들곤 했는데 산에서 만난 그들은 무척 친절했고 다정했다. 이 또한 자연이 주는 선물인가.


자연은 보전인데 존 뮤어가 주창한 자연은 있는 그대로 건드리지 않고 놔두는 그대로가 자연보전이다. 인공물이 거의 없는 곰과 세콰이어 그리고 호수와 초원이 주인인 곳이 존 뮤어 길이다. 그런 이곳이 아름다운 이유다. 수천 년 전의 빙하기를 지켜온 거목 세콰이어가 살아 있는 이곳을 나는 걷고 있다. 새벽이면 춥고 한낮이면 후끈거리는 지열과 강한 자외선이 내려 쬐여 까맣게 변한 모습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이런 길이 지구 상에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왜 아름다운 풍경은 모두 고통과 인내의 끝에 찾아오는 걸까? 고개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세상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다시 오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하나의 패스를 넘을 때마다 새롭게 나타는 자연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그곳이 존 뮤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