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세에 쓰는 서울마라톤 싱글

206번째 풀코스

by 산달림

새벽 4시 반에 알람을 맞추었지만 먼저 일어났다. 올해부터 도심 교통체증 예방으로 출발시간이 30분 당겨진 7시 30분 광화문 출발이다. 엊저녁 미리 챙겨둔 마라톤 가방을 챙겨 첫 지하철을 타러 나섰다. 5시 37분 첫차에는 원색의 마라톤 신발을 신은 러너들로 가득하다.


어둠도 채 가시지 않은 광화문은 '마라톤의 수능'이라는 서울마라톤 대회에 전국에서 몰려든 러너와 가족 동호회원으로 가득하고 먼저 도착한 러너들은 벌써 가벼운 조깅을 하고 있다. 4만 명의 참가자들은 저마다 루틴대로 물품보관을 하고 출발준비를 한다.


Screenshot_20260316_084229_Strava.jpg 광화문에서 잠실까지 105리 길 2026 서울마라톤 코스


기온은 4도에서 시작해 13도까지 올라간다는 예보로 싱글렛에 숏타이즈로 복장을 갖추었다. 앞쪽 고수들은 간편한 복장인 반면 뒤쪽으로 갈수록 반팔 혹은 긴팔로 복장이 조금씩 무거워진다. 세종문화회관 뒤편이 그래도 조용한 차도가 있어 조깅과 짧은 질주로 워밍업을 하고 출발선에 섰다.


명예의 전당 279번은 서울마라톤의 고유배번으로 어느 그룹에서든 출발이 가능하다. 뒤로 밀리면서 달리는 것보다 앞서 나가면서 달리는 게 심리적으로 편해 A그룹 뒤편에 자리했다. 엘리트와 명예의 전당그룹이 먼저 출발하고 동아일보 사옥의 전광판의 카운트 다운이 10부터 내려오면서 '1'하고 출발이다.




마라톤은 출발 5km가 가장 중요하다. 마치 가수가 어느 높이의 키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비교된다. 대회 분위기에 휩쓸려 초반은 오버 페이스 하기 쉽고 숭례문 가는 가는 길은 은근한 내리막 길로 속도를 올리기 쉬운 길이다. "밤이슬에도 옷이 젖는다."고 초반의 데미지는 후반에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신세계백화점 앞을 돌아 을지로로 접어드니 번쩍거리는 비상 불빛으로 선두를 안내하는 차량이 지나고 그 뒤로 엘리트 선두그룹이 빛의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국내 엘리트선수나 마스터즈 선두는 함께 달리는 게 이채롭다. 이제 마라톤도 대중화 되면서 마스터즈도 선수 못지않은 훈련을 하니 구분이 모호해졌다. DDP를 돌아오는 작은 오르막 길은 초반이라 힘이 넘쳐 있는지도 모르게 통과했다. 쌀쌀하게 느껴지던 몸이 이제는 등에 땀이 촉촉이 젖어 온다. 약간 쌀쌀함이 느껴지는 게 달리기 딱 좋은 최상의 날이다. 반대편 B그룹 러너들이 홍수난 봇도랑에 물 흐르듯 지난다.


청계천으로 가는 길은 시청옆을 스쳐 지났다. 넓은 주로가 좁아졌지만 이제 주로 정리가 된 상태라 집중해 달리기 좋은 길이다. 청계 4가 평화시장 앞 10km 구간을 지날 때 통과기록이 45분 10초로 목표한 페이스가 잘 유지되고 있다.

청계천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서 고산자교를 건너면 14km를 지나고 15km 체크포인트를 만난다. 동계훈련을 알차게 한 러너의 발걸음은 힘이 차고 더러는 벌써 발걸음이 무겁다.


Screenshot_20260316_090644_KakaoTalk.jpg 5km 통과순위 4,264등 피니쉬 통과 2,962등


청계광장 직전 모전교까지 올랐다가 종로 1가로 접어든다. 서울마라톤이 달리기 좋은 이유는 주로가 큰 언덕과 내리막이 적은 것도 있지만 그중에 하나는 길가에 열정적인 시민들의 응원이 많다는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춘다.'고 했듯 줄줄이 이어지는 응원소리에 절로 힘이 솟는 길이다.

종로 5가 광장시징 앞의 하프지점은 통과하니 1시간 35분 05초로 후반은 전반보다 더 집중해 달려야 싱글이 완성된다. 후반을 대비하며 긴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흥인지문 옆을 지났다.


신설동오거리를 지나면서 도로 가장자리는 경사가 있어 발목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중앙으로 달렸다. 응원 열기도 좋지만 기분에 좌우해서 달리면 본연의 페이스를 잃기 쉽다. 용답역 앞 25km를 지나면 신답지하차도는 다운 후 힐업이다. 다들 기록을 의식하는지 체력을 아끼려고 큰 소리를 외치는 러너도 없이 거친 숨소리만 내며 꾸역꾸역 지하도를 치고 올랐다.


작은 내림을 만나면 속도를 올리고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군자교 오르막에는 느려진 속도를 메꾸어 나갔다. 군자역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작은 오르막을 만난다. 30km를 지점이라 오버 페이스한 러너는 발걸음이 둔하다.


진정한 마라톤은 30km부터 시작되는 시작점이다. '마라톤은 지금부터다!' 성동사거리로 가는 길은 주로가 넓어 앞에 달리는 러너가 한눈에 들어온다. 초반에 기운차게 앞 질러 달려간 러너의 발걸음이 확실히 무디어져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다.


34km 가는 서울숲길은 뚝섬역이 있어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응원하는 분들이 모이는 길로 열열한 응원에 힘은 얻는다. 서울마라톤의 가장 힘든 길을 꼽으라면 자양동 뚝섬길이다. 몸은 더 이상 훈련의 기억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바닥난 체력으로 다리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정신력으로 달리는 구간이다. 이 길에서 예전에 52주 서브 3을 하고 서브 3에서 대해서는 온갖 기록을 가진 함*일 아우를 만났다. 그도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듯 둔해진 발걸음을 힘겹게 내딛는다. 이름을 부르면 "힘!"을 외치니 싱긋 웃으면 손을 흔들어 준다.


레이스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정신은 육체를 지배한다. 힘들다고 뭉쳐오는 다리에게 조금만 참자 하고 마지막 고비인 잠실대교 오름이다. 미리 각오하고 접어든 길이라 이를 앙 다물고 밀고 올랐다. 이제 싱글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순간이다. 잠실대교 중간쯤에 39km를 지나고 남단부터는 내리막길이라 페이스를 올렸다. 100회 클럽 응원차 나오신 노샘이 알아 보시고 손에 꼭 쥐어 주는 비법음료를 마시고 40km로 향했다.


40km 통과는 2시간 59분 37초 남은 시간은 단 10분 22초 남은 거리는 2.195km다.

넉넉한 시간도 아니고 포기할 시간도 아니다. 긴 생각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다. 피를 말리는 마지막 스퍼트만 남았다. 1초라도 아끼려고 40km 급수대는 통과하고 잠실새내역을 지났다. 지척인 기다리는 잠실운동장사거리 가는 길이 멀기만 느껴진다. 길가에 응원소리는 "다 왔어요. 좀만 힘내요!" 근데 오늘따라 이 길이 왜 이리 멀지?


잠실운동장사거리에서 우회전하니 앞으로 피니쉬 라인이 보인다.

"200m 남았아요!" 응원소리에 힘을 얻는다.

오늘따라 200m가 그리 멀게 느껴진 적이 없다.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여 통과하며 가민시계의 정지버튼을 눌었다.

얼마나 용을 썼던지 바로 종아리가 뭉쳐 오면서 쥐가 올라온다.

휀스 기둥을 잡고 기민시계를 확인하니 3시간 59분 14초!

야! 해냈다. 해냈어!

출발하고 5km를 4,264등으로 시작을 했지만 젊은이들과 어깨를 겨루어 2,962등을 했다.

마라톤은 빨리 달리는 운동이지만 피니쉬에 먼저 도착하는 결과의 운동이다.


2026 서웅마라톤 완주기록증


70대는 삶의 완숙기지만 때로는 나이를 탓하며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살아 있는 이동도서관"이라 했다.

살아온 연륜만큼 분야별 백과사전이고 현대 지식은 젊은이에 비해 부족할지 몰라도 삶의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 지금은 마지막으로 가는 과정이 아닌 오늘도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면 좀 더 젊게 살고 활력 있는 나날이 되지 않을까?

그걸 서울마라톤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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