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식량 보급 투올로미 메도우

환장할 라이웰 캐년의 아침 풍경

by 산달림

어제는 짧은 거리를 편하게 걸었더니 피곤하지 않아서인지 바로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였던 밤이었다. 오늘 일정도 투올로미 캠핑 그라운드까지 가는 짧은 일정이다. 길에서 생활이 적응되어 습관화된 탓이지 새벽 4시 반이면 옆 탠트에서 짐을 꾸린다고 부스럭거린다. 그래도 시계를 보면서 꿋꿋이 버티다가 5시에 일어나 짐을 챙겨도 매일 반복하던 일들이라 여유 있게 챙겼다.


아침식사는 누룽지와 라면으로 누룽지를 끓이다가 라면을 넣으면 누룽라면이 된다. 누구나 같은 마음은 짐은 적게 지고 싶고 먹는 건 많이 먹고 싶은 이율배반적인 마음인 것 같다. 세상은 공평한 게 좋은 것만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음식을 많이 먹으려면 짐을 많이 지고 가야 하는데 짐은 적게 지고 많이 먹으려면 빛과 그림자 같이 빛을 비춰도 그림자가 생기지 않길 원하는 마음과 같다. 해가 떠서 시간이 흐르면 양지가 음지가 되기 마련인데 해를 잡아두고 양지에서만 살고 싶으니 걱정이 생기고 괴로운 것이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라이웰 캐년 아침 풍경

초원이 길게 펼쳐지는 아침 풍경은 장관이다. 짙게 깔린 안개가 초원 위로 살포시 내려 않은 풍경은 몽환적으로 다가오는 게 존 뮤어 트레일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라이웰 케년은 폭은 좁고 길어 초원이 길게 뻗어 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트레커들에게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젊은 남녀가 그 풍경 속에 서 있는 게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다가온다. 이곳이 포토존이라고 그들이 가르쳐 준다. 그들은 이곳을 몇 번 온 적이 있는 것 같다. 폭이 넓은 개울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넓게 펼쳐지는 라이웰 케년이 아침 풍경은 환상적이다. 요세미티 지역에서 보여주는 첫 번째 선물이 라이웰 케년이다.

한여름에 밤새 이슬이 내려 풀에 맺힌 이슬

존 뮤어 트레일은 계곡으로 계속 이어진다. 여기서 투올로미 메도우까지 이어지는데 영롱한 아침이슬에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가는 발걸음을 잡고 자꾸만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한다. 어제 하룻밤을 보낸 곳은 우박과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어떤 곳은 아직도 우박이 다 녹지 않고 쌓여 있고 빗물이 흘러간 흔적이 남아 있다. 국지적으로 내리는 비가 상당함을 알 수 있었다. 사막지대는 기후가 급변하여 돌발상황이 발생하는 곳이다.


투올로미 메도우를 앞두고 삼거리에 도착하니 앞으로는 큰 개울이 흐르고 JMT는 왼쪽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선두는 그냥 도로가 있는 곳으로 길을 잡고 간다. 이곳까지 차가 들어오니 피크닉을 온 분들이 많다. 오랜만에 만난 아스팔트 길이 낯설기만 하다.

햇살이 비치는 물가에서 아침 풍경을 바라보는 부부

JMT에서는 식량보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뮤어 트레일 렌치가 있고 레드 메도우, 그리고 투올로미 메도우인데 이곳은 우체국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출발하기 전 보낸 식량을 찾아서 가는 날이다. 먼저 우체국을 찾아서 보낸 짐을 찾는 일인데 레인저 사무실에 가서 우체국 위치를 물으니 이 길을 따라 0.5마일을 곳장 내려가면 된다고 한다. 한낮 땡볕에 JMT길도 아닌 길을 걷는데 많이 덥다.


120번 도로 옆에는 돔(Dome)이 보인다. 하프돔의 축소판 바위로 렘버돔(Lembert Dome)이다. 주차장까지 갖춰진 곳으로 사진을 찍는 여행자도 많다. 투올로미 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니 우체국에 여기에 있다. 곧장 오는 길을 두고 돌아 돌아왔다. 그 옆에는 투올로미 메도우 캠핑 그라운드 사무실이 있다. 이곳에는 우체국도 있지만 반가운 식당과 가게도 있다. 뮤어 트레일 렌치부터 기다리던 햄버거를 주문해서 먹을 수 있다.

20여 일 만에 맛보는 문명의 맛 더블 버거

가장 큰 더블 버거를 주문을 하면 조리 시간이 20여분 걸린다. 그간 주로 알파미만 먹다가 기름진 치즈버거를 맛보니 그냥 입속에서 살살 녹는 것 같다. 거기에다 맥주까지 곁들이니 이것보다 행복할 수 없다. 맥주 한잔에 치즈버거 한 개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건 그간 걸은 길이 힘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빈 곰 통에 새로 도착한 식량을 챙겨 넣는데 한국에서 지금쯤이면 뭐가 그리울까 하고 생각해서 미리 넣어둔 게 있었는데 껌과 마른오징어채였다. 변질이 되지 않고 그대로 물 건너 잘 왔다. 이런 작고 소소한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이게 '소확행'아다. 넉넉히 배를 채우고 오늘 하룻밤을 편히 쉴 투올로 메도우 캠핑 그라운드로 이동했다.


이곳 캠핑 그라운드는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주로 오토캠핑차량들이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다. 각 사이트마다 고유 번호가 있어 예약한 곳에 주차하고 탠트를 친다. 그중 백패커스 캠핑장은 예약을 하지 않아도 탠트를 칠 수 있지만 반드시 퍼밋이 있어야 한다. 오토 캠핑장 뒤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무료 이용이 아니라 1인당 6$씩 사용료 지불해야 한다. 사용방법은 먼저 비치된 카드를 작성하고 봉투에 돈을 넣어 통속에 넣도록 되어 있었다. 각 사이트마다 6인용 데크가 있고 불을 피울 수 있는 화덕이 있고 음식 냄새를 맛고 찾아오는 곰에게 식량을 뺏기지 않게 곰 통을 넣을 수 있는 철재 통도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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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올로미 메도우 캠핑 그라운드 입구(좌) 투올로미 메도우 캠핑 그라운드 안내도(우)
JMT 트레커들이 즐겨 사용하는 경량 탠트


주변에는 미리 도착한 트레커들이 탠트를 치고 음식을 만드는데 뜨거운 물만 있으면 되니 무척 간편하게 음식을 만든다. 우리의 음식문화는 음식이라 조리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캠핑 그라운드 앞에 있는 가게에서 조리가 간편한 음식과 맥주를 사서 모처럼 흥겨운 밤을 보냈다. 이제 JMT도 2일의 여정밖에 남지 않았다. 시작할 때는 그렇게 길에 느껴졌고 언제 이 길의 끝에 설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이곳까지 무사히 왔으니 완주가 목전에 있다.


이 길이 곧 끝난다고 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을 잡을 수만 있다면 잡고 싶어 진다. 실러는 "시간의 걸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지나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과거가 되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