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지명이 붙여진 호수들
JMT에는 크게 9개의 패스를 넘는다. 오늘은 그중 7번째 패스인 실버 패스를 넘는다. 이틀에 한 번꼴로 패스를 넘어 야 한다. 3,000m에서는 산소량이 68 ~ 75% 정도이기에 두배 정도 힘이 든다. 패스에 올라 서명 새로운 미지의 세계가 펼쳐지기에 이제는 그걸 기다리며 오른다. 오늘은 어떤 얼굴로 다가올까? 이제 JMT도 종반으로 가고 자주 보급을 받을 수도 있을 곳을 지나고 매식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으니 걷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이제 깔딱 고개 한고비는 지난 것 같다. 완주의 꿈이 현실로 다가온다.
어제저녁부터 푸짐하고 넉넉하게 식사를 했더니 몸도 마음도 여유롭다. 오랜만에 맥주를 보니 그 맛에 반해 5병이나 마셨다. 맥주 몇 병에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면 그만큼 땀을 흘렸다는 증거고 인생은 늘 즐거운 것이 아닐까. 먹는 게 이렇게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 처음 느꼈다.
버밀리안 벨리 리조트는 JMT를 걷는 트레커들이 하루나 이틀 쉬어가기 딱 좋은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패리 시간은 리조트에서 아침 9시와 오후 4시에 출발하여 호수 끝 선착장에는 9시 45분과 오후 4시 45분에 리조트로 돌아온다. 뱃삯은 왕복 1인당 23$이며 페리에서 내지 않고 도착하여 사무실에 가서 내며 된다. 인기 먹거리인 스테이크는 25$이며 맥주는 JMT트레커에 한해 1+1으로 한 병을 사면 1병은 공짜다. 단 첫 번째 구매에만 해당이 된다. 와인은 13$ 정도면 1병을 살 수 있다. 리조트 내에는 숙소도 있고 레스토랑, 카페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스테이크를 먹고 나면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사과 파이를 선택할 수 있는데 사과파이가 좋았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한 분들은 량이 많아 다 먹지 못했다. 저녁에는 모닥불을 피워 주는데 트레커들은 불가에 둘러앉아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공통 관심사인 트레킹 중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 JMT 트레커들이라 같은 목표를 갖고 있기에 쉽게 친해지며 대화도 편하다.
선착장부터 함께 한 미국인 친구가 잘 안내해 주어 편히 이용하고 맥주도 얻어 마셨다. 그는 헬기 정비사였고 58세로 명랑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쉽게 친해졌다. 마라톤을 한다고 하니 미국 사막 마라톤을 소개해 줬고 나는 제주 올레길을 안내해 주었다. 미국은 나라는 부자지만 개개인은 그리 넉넉한 생활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삶이란 어디나 팍팍한 게 우리네 생활 아니던가.
첫 배 시간이 9시라 늘 5시경이면 분주히 배낭을 꾸렸는데 오랜만에 여유를 부려본다. 하지만 그게 습성이 되어버린 탓에 새벽부터 짐을 꾸리고 탠트를 철거하는 소리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6시 30분에 일어났다. 조용한 시간에 고즈넉한 리조트를 한 바퀴 산책을 하였다. 호수에 비친 아침 햇살이 곱다.
오늘은 식사는 취사를 하지 않고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밥을 하지 않으니 홀가분하다. 가정 주부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것 같다. 저녁 시간이 늦으면 꼭 밥은 먹고 들어가야겠다. 식당에 스페셜 정식은 18$로 감자볶음과 베이컨 그리고 펜케익으로 식사를 했다. 식후에는 진한 커피 한잔도 잊지 않고 마셨다. 미국인 친구는 햄버거 한개와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때운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미국인 친구는 하루 더 쉬었다가 온다고 하여 작별인사를 하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작별인사는 짧을수록 좋은 것이다. 리조트 선착장에는 9시 출발시간에 맞추어 트레커들이 몰려든다. 25명 정도가 배에 올라 다시 JMT길을 하룻밤만에 다시 복귀다. 40여분을 바다같이 넓은 호수를 가르며 달려 선착장에 도착하니 이 페리를 타고 가려는 20여 명의 트레커가 배를 기다리고 있다.
배 시간에 맞추다 보니 출발시간이 많이 늦었다. 오늘도 목표한 거리를 걸으려면 늦게까지 부지런히 걸어야 하는데 한낮인 정오를 전후한 시간은 힘만 들지 속도가 나지 않는다. 몸만 고생할 뿐이다. 10시 20분에 JMT와 다시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하였는데 오른 무릎에 미세한 통증이 느껴진다. 예방을 위하여 왼쪽 무릎에 착용하고 있던 보호대를 오른 무릎에 착용했다. 아직 갈길이 먼데 여기서 더 이상 악화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말도 못 하고 숨기면서 조심스럽게 걸었다. 실버 패스로 오르는 오름길에서는 충격이 덜해서 그런지 오히려 통증이 덜하다. 다소 안심을 하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첫 번째 갈림길은 모노(Mono)로 가는 갈림길이고 두 번째 갈림길은 모토( Mott)로 가는 갈림길이다. 높이가 3,000m가 넘지 않는 지역인데 'NO Fire'란 나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3,000m 아래라고 어디서나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낮에는 내려 쬐는 열기가 대단하다. 더위를 참지 못하고 개울에 몸을 담그고는 너무 차가워 몸을 덥히려고 달구어진 바위를 껴 앉는다. 사막의 기후는 고온 건조하여 그늘만 들어 가도 시원함이 느껴진다.
이제 실버 패스가 눈앞이다. 고갯마루를 앞두고 왼쪽으로 커다란 실버 호수가 있다. 넓은 평원에 있는 호수로 물빛이 곱다. 햇볕에 몸을 말리려고 마멋이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하고 있다. 무리 중에 한 놈은 망을 보는 유난히 겁이 많은 마멋이다. 이들은 두더지 같이 땅속에 굴을 파고 사는데 땅속에 살다 보니 눅눅해진 몸을 말리려고 햇볕을 보러 나온다.
실버 패스는 3,275m로 완만한 경사라 그리 힘들지 않고 올랐다. 다른 패스와 달리 고개 정상에 올라서면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호수 이름은 전사 호수(Warrior Lake), 추장 호수(Chief Lake), 인디언 아기 호수(Papoose Lake) 분수 호수(Squaw Lake), 고독한 인디언 호수(Lone Indian Lake)로 대부분 예전에 이곳에 살던 인디언과 관련된 호수 이름이다.
바위 위에 붉은 티셔츠를 입은 트레커 한분이 물통만 들고 홀로 외로이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깡마른 근육질로 오랫동안 이 길에 있었던 것 같다. 홀로 몇 날 며칠을 걷다 보면 외로움을 느낀다. 혼자 길을 나서면 홀가분해 좋은 반면 여럿이 다니면 상대를 배려해야 하고 인간관계를 생각해야 하니 길에 집중하기는 어렵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쁨을 구분 지을 수는 없지만 그건 각자 취향에 맡겨야 할 숙제인 것 같다.
실버 패스에서 후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 두 분이 반대방향에서 패스로 올라오신다. 그간 산중 생활로 세탁을 하지 못해 보기에도 바지에 얼룩이 많이 묻었다. 내 바지도 간간히 빨아 입었지만 얼룩져 있는데 많고 적음의 차이지 비슷한 것 같다. 노년에 연배가 비슷한 두 분이 같이 걷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바지가 좀 더러운 건 JMT에서는 이해가 간다. 얼마나 배낭 무게를 신경 썼으면 여벌의 바지 무게도 줄여서 다니는 길이 아닌가.
실버 패스를 넘었으니 이제 남은 패스는 2개만 남는다. 이제 JMT도 종반으로 간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길을 아끼고 아껴서 걸어야겠다. 그래야 이 길의 끝에 섰을 때 아쉬움이 덜 할 것 같다. 뭐가 그리도 급한지 선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가 꽁지도 보이지 않는다.
호수를 내려서니 길은 계곡으로 이어진다. 뒤에 오는 분도 있으니 급히 서두를 일은 없다. 찬찬히 풍경을 감상하고 올라오는 트레커에게 인사도 나누고 발 가는 데로 걸어 본다. 이런 평화로움과 자유로움이 좋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 것 아닐까. 별생각을 다한다. 이 길은 버지니아 호수로 가는 나무다리 앞에 까지 이어진다. 산에 들면 집 생각하고 집에 가서는 산을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산에 왔으면 온전히 산만 바라보고 걸어도 좋다.
내리막길을 1시간 30분 동안 산 생각을 하며 홀로 걸었다. JMT는 여럿이 걷지만 결국 혼자 걷는 길이기도 하다. 전나무 숲에 들어오니 앞에도 뒤에도 인적이 없다. 숲이 무성해서 솦 속의 섬에 있는 것 같다. 숲이 끝나니 야영 중인 트레커를 만나 코리안 봤냐고 하니 한 10분 전에 지나갔다고 한다. 그리 멀리 있지 않다니 마음이 여유롭다.
계곡 나무다리에서 쉬고 있는 일행을 만났다. 아직 꽁지가 오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오래 기다리려면 그리 서두를 일은 아닌 듯하다. 계곡이 깊어 다리 아래에 물 뜨러 내려가기도 어려운 곳이다. 후미 일행이 도착하고 다시 오름이 이어진다. 오후 늦은 시간은 모두가 서서히 지쳐 가는 시간이다. 거기에 다시 고개를 오르는 것은 형벌을 받는 것 같이 힘든 시간이다.
개울 옆에 야영지를 잡았는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급히 탠트를 치고 안으로 대피하였다. 20여분 지나니 다행히 비가 그친다. 저녁식사는 늘 알파미다. 변함없는 식단에 질리는 메뉴다. 지금은 다른 대안이 없고 먹어야 걸을 수 있으니 김치 지게를 끓여 먹었다. 먹어야 하는 게 참 무섭다.
모닥불을 피우려 하는데 앞에 먼저 탠트를 친 현지 트레커들이 다가와 여기는 불을 피울 수 없는 지역이란다. 3,000m 이하에서는 불을 피울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도 장소에 따라 달리 적용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책임진다고 불을 피우고자 했지만 미국은 자기 자식을 훈육으로 때려도 옆집에 신고하면 경찰이 와서 잡아가는 문화인데 그런 말까지 전해 줬는데 불을 피우면 레인저에게 연락해 벌금 벼락을 맞을 것 같아 피우지 않았다. 문화가 다르면 그걸 인정해야 하는데 자기 스스로 해석해서 내가 맞다는 똥고집은 이제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내 생각이 중요하듯 남의 생각도 내 생각만큼 중요한 걸 인정해야 한다. 특히 그 나라의 문화는 나의 잣대로 보지 말고 그들의 잣대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내일은 레즈 메도우로 가는 날인데 이곳도 트레킹 초반의 호수슈 메도우 지역과 같이 비가 자주 내리는 지역이다. 워낙 긴 JMT 구간이다 보니 지역마다 다른 기후를 보여 준다. 레즈 메도우는 중간 보급이 있는 곳이다. 왠지 보급이 기다려지는 것은 맛있는 고기와 시원한 맥주 그리고 김치와 한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먹는데 집착하는 나를 보게 된다. 먹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 본능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먹는 것만 생각해도 기분이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