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휴식 버밀리안 벨리 리조트

에디슨 호수의 오아시스

by 산달림


존 뮤어 트레일을 시작하면서 일상적으로 먹던 맛있는 음식과는 멀리 해야 한다. 워낙 길이 멀고 험해 과일과 채소와 육식과는 자연히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무게와 신선도 유지를 위해서는 가지고 다닐 수가 없다. 매일 반복되는 변함없는 걷기 중 갈증을 달래고 문명으로 돌아가는 먹거리가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 버밀리안 벨리 리조트다.

버밀리안 벨리 리조트의 실내 모습

이곳은 JMT에서는 떨어져 있는 곳이다. 바다 같은 에디슨 호수에서 40여분을 배를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리조트다. 길이 없어 차량의 접근이 불가능한 JMT지만 버밀리안 벨리 리조트까지는 도로가 이어져 있다. 에디슨 호수가 있어 휴양지로 조성된 곳인데 JMT를 걷는 트러커들이 배를 타고 가서 오아시스 같이 이용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스테이크와 맥주를 배불리 먹고 마실 수 있고 물론 과일도 먹을 수 있는 곳인데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역시 육즙이 가득한 스테이크와 목 넘김이 좋은 맥주다.


하룻밤을 포근하게 자고 오늘도 하루 걷기가 시작된다. 늘 함께 하는 배낭

간밤의 야영지는 고도가 높지 않은 개울가에 사이트를 잡아 춥지 않고 포근하게 잤다. 탠트는 밖과 안의 기온 차이가 심하면 이슬이 맺히는 결로현상이 생기는데 물방울도 맺히지 않고 바닥도 물기가 없다. 이런 작은 일 하나도 감사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간밤에 잘 때는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정리하고 잤다. 몸은 피곤하니 누우면 절로 잠이 온다.


걷고 먹고 자고 하는 단순한 일과의 연속이라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하루 일과는 참 단순하다. 일어나면 탠트 안을 정리하면서 배낭을 꾸리고 뜨거운 물을 붓어 아침식사를 하고 길을 걷다가 배가 고프면 간식을 먹고 점심때가 되면 선식을 물에 타서 마시고 오후를 걷는다. 해가 질 때쯤 편안하고 전망이 좋은 야영지를 찾아 탠트를 치고 하루를 끝내는 지극히 단순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집을 떠나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출하는 게 여행에서는 중요한 건강 척도다. 그중 뭐든지 하나라도 균형이 깨어지면 빨간 신호다. 연일 강행군으로 몇 분은 입술이 부르텄다. 피곤하다는 몸의 신호이기도 하다. 힘을 몰아 쓰지 말고 조금씩 나누어 써도 피로를 줄일 수 있다. 길을 걸을 때 숨이 가쁘지 않게 토끼보다 거북이 같이 꾸준히 걷는 게 피로를 덜 느끼는 걷기 법이다. 오늘 가야 할 곳을 어떻게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걸어가느냐가 중요하다.

수백 년을 살아온 거목 앞 절로 경외심이 생긴다. 그는 인디언의 슬픈 역사를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6시 40분에 JMT의 하루가 시작된다. 뮤어 렌치에서 챙겨 온 여분의 음식이 있어 든든히 먹었더니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이렇게 잘 먹으면 남은 길도 무사 완주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남은길도 만만하지 않으니 어떤 분은 무게를 줄이려고 음식물을 줄여 오기도 한다. 적당량은 가지고 다녀야 마음이 든든하다. 힘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고 잘 먹어야 힘이 생긴다.


초반 걷는 길이 편하니 선두는 빠른 걸음질을 한다. 삼거리에서 이정표가 길을 안내한다. 버밀리언 벨리 리조트 가는 길과 실버 패스로 가는 길이 나누어지는 곳이다. 그곳에서 선두로 가는 3명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갈림길이 나오면 기다렸다가 함께 가도 좋으련만 마음만 바빠 빠르게 지나갔다. 지도를 확인하고 실버 패스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세콰이어와 전나무로 이루어진 숲은 가파르지만 길은 스위치백으로 지그재그로 천천히 올라간다.


가끔씩 물이 있는 길을 지나는데 앞서 간 분들의 발자국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삼거리에서 이 길이 아닌 배를 타지 않고 돌가는 버밀리언 벨리 리조트 방향으로 바로 간 것 같다. 어찌 연락할 방법도 없어 길이 잘못된 걸 알고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걸었다. 그분들은 GPS를 가지고 걷기에 틀린 걸 알면 찾아올 것이다. 아니면 계속 걸어 버밀리안 리조트까지 걸어가도 되는 길이긴 하다.

모닝커피로 시작하는 아침, 이런 전망 좋은 곳에서 마시는 커피 맛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진다.

여유 있는 걸음으로 주변 산을 둘러보며 훠이훠이 길을 걷는다. 급한 걸음이 아닌 여유로운 길이다. 트레킹은 목적지를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주변 풍경을 음미하면서 걷는 게 좋은 것 같다. 오늘 같이 여유로운 일정은 그렇게 걸어도 좋은 날이다. 1시간 30여분이 지나서 쉬고 있는데 앞서가다 길을 잃은 분들이 따라와 다시 만났다. 따라오느라고 숨이 차다. 알바를 했다고 한다.


이제 내리막 스위치백이 시작된다. 급경사길을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그 경사가 아찔할 정도로 가파르다. 내일 일정이 좀 힘들 것 같다. 버밀리언 리조트에서 나오는 첫배가 9시에 있는데 10시나 되어야 걸을 수 있다. 시작이 늦으니 오후 늦게까지 걸어야 하루 걷는 거리를 마치게 될 것 같다. 이런 사실은 가기 전에 계획을 짤 때 생각을 하지 못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첫배를 대절해 올 수도 없고 정기운행 시간인 9시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길에서 마주치는 트레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길을 내준다. 가벼운 인사로 지나간다. 그게 JMT의 예절이다.

산을 내려오면 바로 개울과 만난다. 제법 수량이 풍부한 개울에서 여름휴가로 이곳을 찾은 현지인들이 송어낚시를 하고 있다. 에디슨 호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송어가 많은 것 같다. 여름휴가로 시원한 이런 계곡으로 휴가를 즐기는 것은 우리네와 많이도 닮았다. 이곳 에디슨 호수에서 뮤어 렌치까지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기에 트레킹 길을 말을 타고 넘는 여행자를 만날 수 있었다. 편히 가는 대신 비싼 비용을 들여 넘는다. 그 대열은 선두를 끄는 마부가 앞장을 서고 5~6명이 말을 타고 가면 3~4마리의 말은 그들의 짐과 말먹이인 여물을 싣고 간다. 가죽 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가는 대열이 서부영화의 한 장면 같이 느껴진다.

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송어를 잡으려는 계곡의 낚시꾼들

그렇듯 JMT는 오직 현대문명을 들이지 않고 오직 아날로그 삶인 그때처럼 오직 두발이나 말의 힘을 빌려 가는 그런 길이다. 인터넷은 물론 전화가 되지 않고 전기 조차도 없는 그런 자연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게 존 뮤어의 정신이고 그 정신을 생각하며 걷는 길이 존 뮤어 트레일이다. 트레일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어느 대부호도 소유할 수 없는 원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다. 그건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잃고 난 후에 느림과 여유의 소중함을 알게 될까.


에디슨 호수 선착장에는 12시 30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버밀리언 벨리 리조트로 가는 배편은 하루에 2차례 있는데 9시 45분과 오후 4시 45분에 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빨리 와도 너무 빨리 온 것 같다. 선착장 세콰이어 나무 그늘에 메트레스를 깔고 오랜만에 느긋한 휴식을 즐겨 본다. 점심은 볶음김치에 밥을 볶아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 배가 부르니 신선이 따로 없고 내가 바로 신선이 된다.

페리 보트를 타기 위해 속속 몰려드는 트레커들

집을 나오면 뭐든지 잘 먹어야 하는데 알파미에 거부감이 있는 분은 누룽지와 미숫가루로 살아가고 있다. 문화가 다른 곳을 여행할 때 가장 힘이 드는 부분이다. 먹는 문화는 하루아침에 변화가 되지 않으니 여행 자체가 힘들어진다. 장거리 여행에 힘든 트레커에게 버밀리안 벨리 리조트는 그런 사람들에게 달콤한 휴식으로 체력을 충전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으로 JMT를 구간 종주하는 이들에게는 시점이 되고 종점이 되는 곳이다. 여기에서 뱃길로 나가면 도로와 만나는 길이 이어지는 외부 문명의 세계와 만나는 곳이다.


늘어지게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오후 3시 30분 경이되니 배를 탈 트레커들이 모여든다. 켈 포니아에서 왔다는 남매를 둔 부부는 휴가를 이곳으로 와서 JM를 걸었단다. 그런데 사람 수만큼 많은 게 개 들이다. 4마리의 개를 몰고 휴가를 왔으니 개 먹이까지 챙기려면 무게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개도 등에 배낭을 메고 자기 먹을 사료를 메고 걷는다.

LA에서 온 58세 가장. 그는 헬기 부품회사의 엔지니어로 여름휴가 중 JMT 구간 종주 중이다.

LA에서 혼자 트레킹을 온 친구는 올해 58세로 JMT 구간 종주를 한단다. 아내가 길의 들머리까지 차로 데려다주고 돌아갈 때도 아내가 데리러 온단다. 천사표 아내다. 혼자 걷는 트레킹은 자유로워 좋긴 한데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한 탓인지 친절히 Jmt에 대해서 안내도 해주고 버밀리안 리조트의 메뉴 등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출발시간이 가까워 오자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든다. 오후 4시 45분 출발하는 배는 버밀리안 벨리 리조트에서 나오는 이용자는 별로 없고 들어 가는 손님만 한배 가득이다. 멀리서 올 때는 저렇게 작은 배에 이 사람들과 짐을 다 싣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는데 여유 있게 모두 태운다. 물결이 잔잔한 에디슨 호수를 가르며 달리는 배에는 선장과 조수가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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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밀리안 리조트에서 하루 두번 운항 하는 보트(좌) 주로 JMT트레커들이 이용객인 승선자들(주)

주로 리조트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운영되는 것으로 뱃삯은 배에서 지불하는 게 아니라 도착해서 사무실에서 내면 된다. 워낙 큰 호수라 45분을 달려 호수 반대편에 있는 버밀리안 벨리 리조트(VVR)에 도착하니 그곳이 단일 리조트다. 리조트 안에 있는 숲의 탠트 구역 내에 마음대로 탠트를 치면 된다. 기쁜 소식은 JMT 트레커에게는 맥주를 한 병 사면 한 번에 한하여 1병은 공짜란다. 소위 원플러스 원이다. 흑맥주를 추천해 준다. 역시 오랜만에 맛보는 맥주 맛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시원한 목 넘김이 좋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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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밀리안 리조트의 저녁 메뉴 쇠고기 스테이크(좌) 아침메뉴 (우)

여기의 별미가 스테이크인데 가격도 착하고 맛도 좋다. 오랜만에 맛보는 스테이크 맛은 절로 입에서 살살 녹는 그런 맛이다. 곁들어 나오는 야채도 소스도 맛이 최고다. 지금 이 순간 뭔들 맛이 없을까. 오랜만에 트레커로서 모든 먹는 걸 절제하고 자제하며 생활해 왔는데 마음대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만 해도 복권에 당첨된 듯 행복하다. 우리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내듯 일상에서 소중함을 놓치고 살지는 않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버밀리안 벨리 리조트의 안내판 숙박과 식당 페리보트 등을 서비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