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뮤어 트레일에는 9개의 큰 패스가 있다. 그간 포레스트 패스, 글렌 패스, 핀쵸 패스, 마더 패스 그리고 뮤어 패스를 넘었고 오늘이 6번째 셀던 패스를 넘는 날이다. 이 패스는 JMT를 걸을 때 넘는 패스이고 코튼우드에서 시작을 하였기에 코튼우드 패스도 넘었고 오니온 벨리에 식량을 보급받기 위해 다녀오느라고 키 어사지 패스를 갈 때와 올 때를 합하여 2번이나 넘었다. 패스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숨이 터질 정도로 숨이 가쁘고 다리는 아우성을 치지만 패스에 오르면 새롭게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가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 오늘 셀던 패스는 어떤 풍경으로 감동을 줄지 기대되는 아침이다.
산속의 아침은 산새들의 노랫소리에 아침잠을 깬다. 용하게도 여명의 시간이 되면 누가 깨우지 않아도 산새들의 지저귐이 있다. 오늘부터는 일정에 맞출 수 있어 출발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느긋한 아침이다. 6시 일어나 7시에 식사를 하고 8시 출발이다. 산중에는 아침에 기온이 뚝 떨어져 350g 침낭은 춥게 자야 하고 500g 정도는 되어야 JMT에서 포근한 잠을 잘 수 있다. 4시 일어나던 시간이 6시로 늦추어지니 아침이 시간이 여유롭다.
JMT에는 야생이 살아 있다. 아침에 만난 사슴 가족
개울 건너 숲 속을 산책하는데 사슴 무리를 만났다. 사슴은 꼭 암수로 다정하게 살아가는데 오늘은 3쌍인 6마리가 아침식사 소풍을 나왔다. 짝을 지어 풀을 뜯고 있다. 그간 사람들을 자주 보아 왔기에 놀라지도 않고 힐끔힐끔 보면서 풀을 뜯는다. 주변에 개울이 있어 풀들이 잘 자라고 물이 있으니 주변이 그들의 생활권인 것 같다.
이제 존 뮤어 트레일도 후반으로 간다. 어제 물품을 보급받은 뮤어 렌치를 지나면 반환점을 돌았기에 하루하루 거리가 많이 줄어든다. 끝남을 아쉬워하지 말고 남은 날들을 더 즐기는 게 조금은 덜 아쉬운 존 뮤엘 트레일이 되지 않을까. 지나고 나서 그때 그걸 할 걸 하는 후회는 하지 말자.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쌀쌀해서 모닥불을 피우려고 주워에 나뭇가지를 모아 모닥불의 재를 살펴보니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다. 늦게까지 모닥불 주변에 있던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냥 들어갔나 보다. 이곳에 사막기후라 마른 나뭇가지와 솔방울은 바짝 말라 있어 금방 불이 붙는다. 산에서 추울 때는 모닥불 만한 게 없다. 모닥불 앞에 불을 쬐는 시간이 행복하다.
하룻밤을 지새운 캠핑 그라운드와 모닥불의 흔적, 곰 통은 의자 대용
취사 담당이 정해져 있는데 중반으로 오면서 이제 담당별 임무도 모호해졌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고 배가 고픈 사람이 먼저 버너를 챙겨 물을 끓인다. 어제저녁에는 며칠 전 마더 패스를 넘을 때 '산불'로 마음 상해 먼저 앞서간 분이 사과를 하여 불편한 마음은 일단락 지었다. 먼저 사과 말을 꺼내기가 어렵지 말문을 열 면이바로 화해가 된다. 누가 틀린 게 아니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틀렸다고 할게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면 다툴 일이 그리 없을 것이다. 장기간의 여행 특히 육체적으로 힘든 트레킹에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대원중 한분은 이번 트레킹의 주식인 알파미를 먹지 못한다. 특유의 냄새로 인해 누룽지와 라면 그리고 미숫가루로만 식사를 하고 있다. 스스로도 본인의 식성은 해외여행 체질이 아니라고 한다. 서양 음식도 입에 잘 맞지 않다고 하니 어려운 여행은 하고 있다. 알파미는 뜨거운 물을 붓고 15분만 기다리면 밥이 다 된다. 가볍기도 하고 조리법이 간단해 뜨거운 물만 있으면 되고 연료도 적게 들어 이련 트레킹 에는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런데 다 좋아하는 메뉴는 아니다.
트레킹이 종반으로 가니 모두 피로가 누적이 되니 다들 신경이 날카롭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까칠한 반응이 나온다. 말수를 줄이고 남의 일에 간섭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고 싶은 말을 참가기 어렵다면 속으로 " 관세음보살 나무 아비타불" 염불을 외우는 게 낫다. 여유로운 마음은 피곤하고 힘이 들수록 가지기가 힘든다. 아마 그 여유로움은 이번 트레킹이 끝나는 요세미티에 도착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아침 메뉴는 알파미에 소스가 영양 새우밥이다. 뜨거운 물에다 미소된장을 풀면 바로 미소된장국이 된다. 그걸 반찬으로 아침밥을 먹었다. 후식은 뮤어 렌치에서 남들이 두고 간 식품 중에 골라온 사과차의 향이 좋다. 이런 맛이라면 넉넉히 가져 올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뱃속에 거지가 들어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이 있는 곳에 초원이 펼쳐 저 더욱 아름 다운 JMT
출발시간이되어 불을 끄려고 하니 추운데 왜 불을 끄냐고 따진다. 밤새 태운 나무가 많아 불씨를 끄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말씨름을 하기 싫어 '그럼 불은 끄세요'하고 배낭을 챙겨 일어섰다. 결국 불을 끄는데 개울물을 4~5 차례 길러 와서 불을 끄는데 물 한번 길러 오지 않는다. 이런 작은 일이 서로를 불편하게 한다. 각자 개성이 너무 다르다 보니 서로 마음고생이 크다. 그러다 보니 점점 말수가 적어진다.
이런 생활에는 중간에 가면 좋은데 급한 성질에 오랜 캠퍼 생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 가만히 있기도 힘든다. 이런 마음을 추리고 내 마음을 보는 게 이번 여행의 또 한 가지 배움이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보면서 '내가 또 화를 내려고 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본다. 잘하는 건 잘하는 데로의 배움이 있고 못하는 건 못하는 데로 배움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마음을 본다.
그간 출발시간보다 2시간 늦은 8시에 출발했다. 어제 오름이 끝나지 않아 아침부터 스위치백으로 오름이 시작된다. 아침이라 다리에 힘도 있고 상쾌한 아침 공기가 힘을 더해 준다. 곰통에는 어제 뮤어 렌치에서 챙긴 간식과 음식이 든든히 들어있어 부자가 된 기분이다.
오름이 끝나니 세콰이어와 소나무로 된 숲길이 걷기가 좋다. 연이어 초원으로 이어지고 Jmt 옆길에는 개울이 흐른다. 셀리 키스 호수에서 잠시 쉬어 간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호수에는 송어가 한가히 헤엄쳐 다니고 호수에는 세콰이어와 주변 산들이 그대로 반영된다. 트레커가 아침에 잠시 시간을 내어 송어 낚시를 하고 있다. 낚시 허가를 받아 와야 낚시를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Jmt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호수는 그 옆의 호수와 연결이 되어 2개의 호수로 아침햇살을 받아 보석 같이 빛난다. 두 호수는 마치 쌍둥이 호수 같이 존 뮤어 트레일을 가운데 두고 둘로 나뉘어 있다.
낚시 허가를 받아야 호수에 있는 송어를 잡을 수 있다.
셀리키스호수를 지나면 계곡을 따라 계속 초원이 이어지고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고 또 하나의 호수를 만나는데 그 모양이 하트를 닮았다고 하여 하트 호수이다. 셀던 패스를 오르는 마지막 길은 다시 스위치백으로 고도를 높여야 하는데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면 지나온 셀리 키스 호수와 하트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한번 숨 고르기를 하고 올라서면 존 뮤어 트레일의 6번째 고개인 3,325m의 셀던 패스다.
보석 같이 빛나는 맑은 물을 가지고 있는 셀리 키스 호수
앞으로는 가야 할 길에는 호수 향연이라도 하듯 10여 개의 반짝거리는 호수가 내려다 보이다. 왜 JMT가 물의 길이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가장 가까이 있으며 큰 호수는 마리 호수로 영롱한 에메랄드빛 물빛을 하고 기다리고 있다. 겨울 동안 내린 눈이 얼었다가 녹은 물이 끊임없이 호수로 흘러들어 간다.
이 길을 걸으며 느끼는 게 세상에서 가장 야생이 살아 있고 가장 고즈넉하며 가장 행복한 길이 존 뮤어 트레일이다. 파란 하늘로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높은 산봉우리들과 보석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호수들. 그 옛날 인디언들이 살았을 이곳을 걷는다는 게 시공을 초월한 그때로 들어온 느낌이다. 문명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는 대자연의 속살을 밟으며 산허리에 쌓여 있는 만년설과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과 내가 하나가 되어 가는 행복한 시간을 셀던 패스에서 느꼈다.
셀던 고개를 내려 서면 물의 길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를 안다. 마리 호수
점심은 마리 호숫가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곡물가루를 정수한 물과 흔들어 마시면 끝이다. 뮤어 렌치에서 챙겨 온 땅콩 초콜릿이 있어 오늘은 든든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행동식으로 식사를 하면 30여분이면 식사가 끝난다. 다시 길을 걷는다. 정오를 넘긴 햇살이 오늘도 강하게 내려 쬔다. 트레킹 초반 휘트니 부근을 지날 때만 비를 만나고 그 후는 계속 파란 하늘에 강한 햇살이 내려 쬐는 맑은 날만 계속된다. 이곳은 사막기후라 연간 강수량이 극히 적은 곳이다.
사막의 건조한 열기는 콧속까지 메마르게 하여 숨이 가쁘다. 이럴 때는 버프를 쓰고 입과 코를 가리면 습도가 유지되어 콧속의 건조함은 예방할 수 있다. 더위에 유난히 약한 분들은 계곡을 만나면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텀벙 뛰어드는데 금세 추위를 느껴 달구어진 바위를 끌어안고 체온을 높인다. 기온은 높아도 습도가 낮아 그렇게 견디지 못할 기온은 아닌데 더위를 힘들어한다.
다리가 없는 물길을 건너는 것도 JMT는 특별하다.
작은 계곡을 건너는데 나이 지긋한 엄마와 딸이 JMT길을 구간 종주하러 왔다고 한다. 엄마와 딸은 이런 야생에 살아가는데 어렵고 불편한 일이 많은데 함께 추억을 남기려고 딸이 모셔 왔다고 하니 효심이 지극하다고 해야 하나.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어머님의 걸음이 위험해 보여 부축을 해 주었더니 연신 감사하다고 한다. 야생에서 이런 조합은 한국의 문화에는 익숙하지 않은데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로즈메리 초원으로 오는 길에는 8월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JMT구간 종주하는 트레커들이 하루 해도 많이 남았는데 일찍 탠트를 치고 쉬고 있다. 짧은 구간을 걷기에 계곡 옆에 해먹을 설치해 편안한 휴식을 하고 있는 모습이 부럽다. 힘듬을 즐길 수 있는 여유 그게 선진국의 면모가 아닐까. 잘 산다는 게 뭔가? 돈만 많다고 잘 사는 것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생각을 해 봐야겠다.
여유롭게 놀멍 쉬멍 걷는 구간 트레커들
곰계곡으로 들어섰다. 얼마나 곰이 많길래 이름마저도 곰계곡이라 했을까. 곰계곡은 양쪽 산을 끼고 가운데로 개울물이 흐르는 곳으로 길은 내리막길로 이어졌다. 물이 있으니 야영사이트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계곡 폭이 넓고 바위가 있는 솦 속에 짐을 풀었다. 일정이 여유로워 17km만 걸었다.
아직 햇살이 곱게 비추고 있어 그간 밀린 빨래도 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느지막이 혼자 내려가는 여성 트레커가 길을 서두른다. 갈길이 바쁜 와중에도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니 미소를 보내며 기꺼이 응해 준다. 낯선 동양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오늘의 숲 속 캠핑 그라운드
내일은 에디슨 호수에서 오후 배를 타고 호수 끝에 있는 버밀리언 리조트에 가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고 맥주도 마실 수 있다. 그간 문명과 떨어져 있었더니 늘 먹을 수 있던 맥주나 콜라가 새삼 그립니다. 흔한 것들도 없으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끼는 JMT다. 내일을 맥주나 실컷 마셔볼 참이다. 얼마나 마실수 있을까? 기대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