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기온이 쌀쌀한 게 일교차가 극심하게 느껴지는 JMT다. 덜덜 떨면서 4시에 일어나 피곤한 몸뚱이를 끌고 나와 출발 준비를 한다. 야영지가 계곡 옆 물가 바위 옆이라 물소리가 요란하다. 어둠 속에서 랜턴 불을 켜서 짐 정리를 끝냈는데도 어둠이 걷히지 않는다. 어제 맨 늦게 도착한 여성분이 얼마나 피곤했는지 출발시간이 되어도 일어날 기색이 없다. 다들 피곤이 누적되니 사소한 말에도 신경이 예민해져 까칠한 상태라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아 누구 하나 깨우질 못한다.
늦게 일어나니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고 뒤에 따라온다. 오기 하나로 버티는 것 같다. 마더 배스에서 앞서간 분은 어제 만나지 못해 이 계곡 어딘가 혼자 잤다. 낯선 산중에 별일 없이 잘 잤는지 걱정이 된다. 오늘 뮤어 렌치에서는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래저래 어수선한 분위기다. 오늘은 식량보급을 받는 날이라 마음은 가볍다. 텅 빈 곰 통을 채울 수 있으니 배불리 먹을 수 있어 행복한 날이다. 행복이 별건가 이런 깊숙한 산중에서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즐거운 일이다. 사람이 산중에 오래 살다 보니 점점 단순해진다. 걷고 먹고 자는 일과의 연속이다.
몰길이 있으면 초원이 넓게 펼쳐지는 JMT
내리막길이라 걷기 좋은 세콰이어 숲길이다. 울창한 숲길을 걸어가다 보면 아스펜 메도우를 지난다. 초원은 계곡 옆에 널찍한 땅에 풀들이 자라서 녹색 숲을 만들어 놓았다. 계곡 폭이 10m도 훨씬 넘는 넓은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다. 여기는 등산화를 벗고 건너야 하는 곳이다. 양발까지 벗고 바지는 무릎까지 둥동 걷고 등산화는 신발끈을 묶은 다음 목에 걸치고 스틱을 짚고 조심스럽게 계곡을 건넜다. 다행히 수심이 깊지 않고 물살도 세지 않아 건너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개울을 건널 때는 다리가 없어 맨발로 건너는 물길
눈이 녹은 호수에서 흘러내린 물이라 차갑다 못해 시리다. 계곡 깊이가 깊은 곳은 무릎까지 찬다. 원시를 즐기는 느낌이라 마냥 싫지만은 않다. 계곡을 건넌 후 발을 말리고 다시 등산화를 고쳐 신었다. 존 뮤어 길에는 이런 이벤트가 있어 오래 기억이 될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는 폭포 소리가 요란하다. 계곡이 좁고 수량이 풍부하니 높이가 있어 물소리가 우렁차다.
어른 주먹만 한 미국 소나무의 솔방울 뭐든지 Big
숲길에는 세콰이어 나무뿐만 아니라 미국산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미국 소나무의 솔방울이 어른 주먹보다 훨씬 큰 솔방울이 가득하니 떨어져 있다. 그 옆으로 향나무는 세월의 연륜을 말해 주듯 밑둥이가 어른 두 명이 감싸 않아도 감싸지 못할 만큼 크다. 계곡과 만나는 삼거리 길에서 뮤어 렌치에 10일 치 식량을 보급받고 남진하는 트레일러를 만났다. 식량이 줄어들 동안 식량이 가득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녀야 한다.
한낮이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는 길
길은 점점 고도를 낮추더니 사막 특유의 건조함과 높은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데 그늘에 들어서면 그래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건 습도가 낮은 탓이다. 북진하는 트레커는 다음 식량공급을 받을 수 있는 레드 메도우가 있어 3일 치 식량만 챙기면 되니 무게에 대한 부담은 적다. 오니언 밸리에서 한나절 늦은 게 하루가 늦을 가봐 노심초사했지만 어제 29km를 걸어 제 날짜에 도착하게 되어 다행이다.
뮤어 트레일 렌치로 가는 삼거리 갈림길
후끈한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뮤어 트레일 렌치 입구 삼거리 도착하니 한 무리의 트레커들이 쉬고 있다. 길은 오른편 길을 따라 걸어야 JMT 가는 인데 뮤어 렌치를 가려면 왼쪽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여기서 뮤어 렌치까지는 약 2마일로 3.2km의 거리다. 더운 열기를 받으면 걷는 길은 더디지만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는 기분으로 걷고 또 걸으니 사람의 흔적이 보인다. 얼마 만에 만나는 문명의 흔적인가. 먼저 보이는 것은 마구간이다.
뮤어 트레일 렌치 이날이 2018. 8. 7
여기 오는 길에 남진하는 트레커를 만나면 궁금했던 것이 뮤어 렌치에 가면 햄버거와 콜라를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글세요? 였다. 햄버거와 콜라에 대한 기대로 부지런히 걸어왔는데 햄버거의 '햄'자도 구경할 수 없는 뮤어 렌치다. 뮤어 렌치는 우편으로 보낸 식량이나 보급품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여기까지 배달되어 오려면 차에서 내려 배를 타고 호수에 도착하면 호수는 배로 건너고 호수에서 다시 말 등짐으로 운반되어 온다.
JMT의 중간지점에 있는 보급소로 JMT나 Pct를 걷는 이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남진이나 북진하는 트레커들은 이곳에서 10일 치 식량을 지고 JMt를 끝낸다. 북진의 경우에는 2~3개소 식량을 공급받을 때가 있지만 남진의 경우에는 휘트니를 경우 휘트니 포탈에 도착할 때까지 마땅한 식량 공급처가 없다. 그래서 무겁게 10일 치 식량을 꼭꼭 눌러서 출발하는 곳이 뮤어 트레일 렌치이다.
뮤어 렌치에는 트레일러들이 운행 중 필요 없는 물품이나 식품을 통에 넣아 두면 누구가 요긴하게 쓴다. 식품을 보내고 이곳에 오지 못한 트레커의 식품도 개봉해서 이 통에 넣어 둔다.
이곳은 그간 버리지 못한 휴지나 못쓰는 건전지 등을 버릴 수 있고 불필요한 장비도 버리고 간다. 보급받은 식량이나 장비 중에도 무게가 무겁고 잘 사용하지 않는 장비는 과감하게 버리고 간다. 심심할 때 읽으려고 가지고 온 책은 버리는 품목 1순위다. 그런 것들을 품목별로 통에 담아 두는데 그걸 필요한 트레커가 챙겨서 가도 된다. 도착 기한 7일이 넘는 물품도 이곳에서 개봉해서 다른 트레커가 사용할 수 있도록 통에 담아 둔다.
그런 품목은 주로 시리얼, 에너지 바, 선크림, 파스타, 초콜릿, 의류, 화장지, 건전지, 가스통, 병에 담긴 과일이나 소스 등 별의별 물건이 다양하다. 트레킹 중에 사용하다가 고장 난 물품도 있는 등 트레커의 종합전시장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는 작은 가게가 있는데 식품을 팔지 않고 트레킹 중에 사용할 장비를 판다. 우의나 가스, 건전지 등 트레커에게 필요한 작은 물품도 판매를 한다.
남진하는 트레커, 이들은 10kg의 곰 통에 10일 치 식량을 넣고 길을 떠났다.
이곳 트레커들은 고칼로리의 에너지 바 등을 주로 사용하고 10kg의 곰 통 안에 그것으로 차곡차곡 정리해 넣어 나머지 170km의 길을 걷는다. 처음에는 무겁지만 하루하루 무게가 줄어 점점 가벼워지니 처음에는 짧게 걷고 뒤로 가면서 좀 더 길게 걷는단다. 뮤어 트레일 렌치는 말들의 전진 기지로 쾌나 큰 말을 키우고 있다. 이곳에서 일부 구간을 말로 다녀오기도 하고 말로 짐을 운반하기도 한다. 인디언들이 살던 시에라 네바다 산맥 속이 이제는 미국인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우편으로 보낸 식량을 받아 분배를 하는데 여기까지 오지 못한 분의 식량은 고스란히 여분의 통에 넣었다. 누군가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계 트레커라면 알 파미가 좋은 식량이 될 것이다. 거기다 발효를 하면 빵빵해지는 김치는 익힌 김치를 가지고 왔더니 보관 상태가 좋다. 무게가 나가는 통조림을 빼고 이곳 트레커가 버리고 간 건과류와 에너지바를 챙겨서 넣었다. 누군가 남기고 간 식품 중에는 동서커피도 있는 게 한국인이 다녀 간 것 같다.
말이 싣고 온 보급품은 이곳 창고에 보관하고 트레커가 오면 꺼내 준다. 우체국에서 보낼 때는 반드시 둥근 통을 사용해야 한다.
좀 더 가지고 갔으면 하는 욕심도 생기지만 무게가 얼마나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에 든든히 먹는 것으로 만족을 하고 배낭을 꾸련다. 이곳 트레커들도 혼자 다니는 분들이 많다. 보급받은 물품과 그간 트레킹을 하면서 필요한 것을 다시 정비하는 뮤어 트레일 렌치이다. 물품 작업이 끝나니 오후 3시 30분이다. 이제 다시 JMT길로 접어들려면 1.5km 오르막길을 걸어야 JMT길을 만날 수 있다. 뮤어 트레일 렌치는 해발 12,500m 정도로 낮은 곳에 위치하여 고도를 많이 높여야 한다.
보급품을 찾아 다시 분류해 곰 통에 넣는다. 그간 트레킹 경험으로 필요한 것은 챙기고 불필요한 것은 뺀다.(우) 한국인의 식단과 많은 차이가 있다.(아래)
다시 곰 통에 식량으로 가득 채워 묵직한 배낭의 무게가 어깨로 전해 온다. 길은 스위치 백으로 지그재그로 오르는데 온도가 높고 습도가 낮아 콧속이 바짝바짝 다 마른다. 사막의 모래밭에서 나오는 열기 마냥 훅훅 뿜어 나오는 지열이 대단한 오후다. 이런 오르막 길에서는 영혼이 가출하는 느낌이다. 얼마나 무게에 민감했으면 보급받은 물품 중에 꿈에도 그리던 김치도 다 넣지 못하고 몇 개만 챙겼다.
오름길에서 말을 타고 오는 일행을 만났다. 카우보이 복장을 한 마부가 선두에서고 뒤로 말을 타고 내려오는 초호화 여행자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들은 말을 타고 둘러보고 오는 일행이다. 상당한 비용을 주고 말을 타고 Jmt의 일부를 둘러보는 사람들이다. 10여필의 말이 건조한 산을 내려가니 흙먼지가 풍긴다. 존 뮤어가 바라는 길은 이런 걸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은 거리에 그리 욕심을 내지 않아도 좋은 날이다. 다음 고개가 셀던 패스(Selden Pass)인데 그곳까지는 너무 멀고 가까운 계곡에 물을 구할 수 있으면 오늘의 야영지가 된다. 다행히 맨 후미에 걷던 여성분이 뮤어 트레일 렌치에 충분히 쉬더니 일행과 그리 떨어지지 않고 잘 따라온다. 만약에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된다면 이곳 뮤어 트레일 렌치에서 탈출을 해야 하는데 다행이다. 이곳만 지나면 휴식일도 있고 후반 일정이 여유로워 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말, 마치 서부 개척시대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존 뮤어 트레일의 풍경은 한마디로 규모가 크고 장엄하고 웅장하다. 미국은 땅이 크기만 한 게 아니라 풍경 하나하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길에서 만나는 이곳 트레일러는 친절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산을 걷는 사람은 여유가 있고 덕이 있는 것 같다. 관광지에서 만난 미국인과는 다른 친절함은 산이 주는 여유로움이 아닐까.
물의 계곡이라는 말과 같이 호수로 이어진 Jmt길은 화강암이 무너질 듯 돌산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계곡에는 폭포수가 떨어지고 넓은 초원이 이어지고 빙하기부터 살아온 세콰이어와 수백 년이 넘은 소나무 그리고 향나무는 이곳의 역사를 전해 주는 것 같다. 패스 하나하나를 넘을 때마다 새로운 신세계가 펼쳐지는 Jmt길에서 벅찬 자연의 향기를 느낀다.
모닥불을 피우고 곰 통을 의자 삼아 불가에 모여 앉은 오늘 캠핑 그라운드
오늘 야영지는 첫 번째 만나는 계곡인 세널크릭에서 여장을 풀었다. 넉넉한 식량으로 부자가 된 기분으로 여유로운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파이어링이 있는 곳에 모닥불을 피웠다. 마른 나뭇가지는 주변에 널려 있고 송진이 있어 불은 금세 활활 타오른다. 한낮에는 그렇게 덥더니 해가 지자 금세 싸늘함이 느껴진다. 밤에는 역시 모닥불이 최고다. 그믐으로 가는 날이라 세콰이어 나무 사이로 밤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오늘따라 별들의 축제라도 있는지 더욱 많은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인다. 또 존 뮤어 트레일에 하루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