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영웅 엘 시드의 고향 부르고스

스페인의 3대 성당 부르고스 성당

by 산달림


순례길에 선지 11일째가 되었다. 팜플로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부르고스를 통과하는 날이다. 새벽에 카톡을 여니 직장 일로 편지가 왔다고 한다. 거기다가 장모님이 혼자 시골에 계셨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원으로 모셨다는 소식이다.


서울에 있으면 금세 처리할 일을 카톡으로 알려주려니 쉽지는 않다. 심란한 마음에 배낭을 꾸리는데 손에 잡히지 않아 늦장을 부렸다. 이제 남은 거리 500km 정도. 처음으로 노고단을 앞에 보내고 뭉기적 거리며 걷는다. 순례길에서는 그런 일상의 일을 잊고 나에게만 집중하며 걷고 싶은데 세상의 인연이란 게 나무에 거미줄 걸리듯 지은 업보가 있어 자유롭지가 않다. 그 모진 인연의 끝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나를 얽어맨다.


부르고스 가는 길의 일출은 하루의 시작


누구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마음이 한없이 무거운 새벽에 부르고스로 가는 차가운 아스트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다.


어제 세탁한 빨래 중에 양발이 채 마르지가 않아 배낭에 매달고 걷는다. 가는 길도 줄곳 아스팔트 길이라 도시로 진입하는 길이 혼란스럽다. 그간 자연과 함께하며 걸었는데 인공 시설물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질 않는다. 순례길은 자연을 걸아야 제격이다. 고가도로 위를 통과할 때쯤 일출이 곱게 떠 오르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카메라에 담아 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순례길에 집중하는 것이다. 직접가서 처맇 일은 아내와 아들이 발품을 팔아야 할 일로 그건 그들의 몫이다. 여기서 내가 해줄 게 없다. 출근길에 부르고스로 가는 길은 지루하기만 하다. 5월 10일인데 이곳의 아침 복장은 초겨울 날씨 복장같이 두툼한 게 추위마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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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굴뚝의 닭 모형(좌) 부르고스 입구 성당((우)


부르고스 시내로 접어 드니 초입에서 성당이 반겨준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빈속이 허전하여 어제 사둔 빵을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앞서 걷던 노고단이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기다리면서 배낭을 내려놓고 쉬면서 빵을 씹고 있는데 어제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은 대학생이 뒤 따라왔다. 양주에 온 박처자를 여기서 다시 만났다. 먹고 남은 비스킷이라며 몇 개를 꺼내 준다. 비스킷도 아침식사 대용이 되는 순례길이다.


기다리다가 돌아오지 않아 열고 들어 가니 벌써 미사도 끝나고 조용하다. 그새 어디로 갔나 주변을 찾으니 벌써 길 건너에 혼자 쉬고 있다. 긴 여행에 조금씩 서로가 지쳐 가니 엇박자가 생긴다.


부르고스 도심으로 진입을 하는데 내 배낭 뒤에 꽂힌 태극기를 보고 스페인 아저씨가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자기 딸은 한국에서 입양해 왔는데 벌써 대학생이라 했다. 착하고 똑똑하다고 한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해외 입양을 해오지 않았던가. 우리 아기를 우리가 키우지 못하는데 머리색도 피부도 다른 그들은 어찌 입양해 키울까? 얼굴이 화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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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스 시내 풍경


그분과 헤어져 부르고스 대성당으로 향했다. 13세기 건물인 산타마리아 대성당은 스페인의 많은 성당 중 가장 아름답고 큰 대성당 중 하나로 세비야, 톨레도 성당과 함께 스페인의 3대 성당 중 하나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성당이다. 건축물 자체의 웅장함과 수를 놓은 듯한 정교한 조각이 돋보인다. 외벽은 수세기 동안 햇볕에 탈색되어 흰색으로 빛난다. 펠리세 2세는 이 성당을 '이것은 사람이 아닌 천사의 솜씨'라 극찬했다.


스페인의 3대 성당 중 하나인 부르고스 성당


성당 안에는 스페인의 전설적 영웅 엘 시드(El Cid)와 그의 아내 히메나의 무덤이 있다. 엘시드의 본래 이름은 로드리고로 엘시드란 이름은 아랍어로 '군주'란 뜻이다. 11세기 스페인 땅의 대부분은 이슬람교 세력인 무어 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북쪽에서 힘을 키운 기독교 세력인 로드리고는 이슬람 세력에 맞싸워 스페인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당시에 스페인 국토 수복 운동인 '레콘키스타'의 영웅이 된 그는 여러 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이슬람교도들은 그를 영웅으로 대접하여 엘 시드라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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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스 성당 앞 거르 풍경(좌) 할머니 동상(우)


성당 앞으로는 아를란손 강( Rio Arlanzon)이 흐르고 산 파블로 다리에는 검을 쥐고 망토를 두른 '레콘키스타'의 영웅 엘 시드의 조각상이 있다. 주변에는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는 멋진 스페인 할아버지의 중후함이 인상적이었다. 저런 늙음은 나이 든다고 하지 않고 익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러움이 앞선다.


스페인의 조경을 강전정을 한다. 그리고 나뭇가지와 나뭇가지를 잇는다. 마치 연리지같이


갈 길이 뭐가 그리 중하다고 바빠 성당 위로 난 순례길을 따라 부르고스 성 아래를 걸었다. 부르고스를 벗어나기 전 노고단의 기침이 심해 기침약을 샀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연기로 기침 흉내를 내니 물약으로 된 기침약을 준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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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스 대성당 앞의 멋쟁이 할부지


그리고 비야프랑카 호텔 알베르게에서 그간 쓴 일지 메모노트를 케비넷에 올려놓고 새벽에 서둘러 나오느라고 잃어버렸는데 노트가 필요해 문방구를 찾으니 없어 찾다가 복권을 파는 가게에 가니 살 수 있었다. 이런 것도 대도시를 지나기 전에 사야지 시골마을로 가면 노트 한 권 사기가 어렵다.


부르고스 시내를 벗어나자 큰 공원이 있어 식사하기 좋은 장소라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어떤 분은 말과 함께 순례길에 나서서 짐은 말 잔등에 싣고 말과 함께 걷어 간다. 순례길을 걷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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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짐을 싣고 가는 순례자(좌_ 녹음이 좋은 순례길


부르고스 시내를 벗어 나자 완전 뙤약볕이 반겨준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라고는 끝없는 밀밭뿐인 메세타(Meseta) 지역에 들어선 거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전체 길 중에 풍경이 가장 단조롭고 기후는 가장 혹독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다고 하는 구간이다.


이 길이 워낙 악명이 높아 시간이 부족하거나 의지가 약한 순례자들은 부르고스에서 레욘까지 메세타 지역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두발로 걷기로 작정하고 왔기에 그늘 한점 없는 길을 걷는데 도로공사로 순례길인지 시골길인지 표지판만 보고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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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스를 벗어 나는 길 (좌) 타르하도스 순례자 식수대(우)

타르하도스에 도착하니 다음 마을은 가까운데 알베르게가 작아 침대 구하기가 힘들 것 같아 여기서 자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직 알베르게 문을 열지 않았다. 오후 2시가 되어야 열리는 무니시팔(Municlpa) 공립 알베르게다. 요금도 기부제로 운영되는 18 베드로 작은 알베르게다. 늦은면 침대가 없다.


그리고 주방도 식당도 없는 오직 잠만 자는 그런 소박한 순례자 숙소다. 정확히 오후 2시가 되니 알베르게를 관리하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인 자원봉사자분이 오셔서 문이 열리고 침대를 배정받고 동네 작은 가게에 가서 내일 먹을 빵을 사고 쉬다가 저녁시간이 되어 부근 식당을 찾아 저녁식사를 하였다.


저녁에 독일에서 온 40대 남자 순례자가 와인 한잔을 하자고 한다. 그는 두 번째 순례길을 걷는단다. 둘이서 와인을 앞에 두고 묻는 말은 왜? 순례길을 걷는지와 한국의 남북은 왜 통일이 되지 못하는지 등에 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순례길에 단골로 묻는 질문이 순례길을 걷는 이유 그리고 남북한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곤 했다. 그게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다.


내일 일찍 길을 나서야 하고 알베르게는 밤 10시가 되면 불을 끄기에 서둘러 침대로 올라갔다. 비노(Vino)는 스페인에서는 많이 싸다. 한국과 비교하면 막걸리 값이다. 물론 오래된 고급 와인은 비씨지만 그냥 막 마시는 와인은 싼 스페인이다. 꿀꿀했던 마음을 비노로 달래고 나니 침대에 머리만 붙이면 잔다. 먹고, 걷고, 자고 하는 단순한 하루하루가 좋다. 세상을 복잡하게 살지 말고 때로는 단순히 살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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