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과 통기타로 성가 카리온

떨어져 있어야 빈자리가 보인다.

by 산달림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은 먼저 쳐다보는 버릇이 아닌 습관 같은 생활을 하는 게 순례자 생활이다. 아침 날씨가 잔뜩 흐린 날씨다. 오늘은 걸을 거리가 20km 정도로 짧아 늦장을 좀 부렸다. 알베르게 앞 성당을 돌아 나서니 차도와 같이 순례길이 나란히 이어진다. 오늘은 이 차도와 직선도로를 20km를 걸어야 하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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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온으로 가는 직선 도로 왼쪽에는 차도 흙길은 그냥 일자(우) 끋없는 밀밭(좌)


어제저녁에는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 중 남자들만 6명이 모여 술판을 벌렸다. 성균관에 계신다는 분 대전에서 정년퇴직 후 부부가 함께 순례길에 오른 분 등 각기 사연을 안고 순례길에 나선 분과 술자리를 만들었다. 와인에 맥주에 양주까지 마시고 안주로 통닭까지 넉넉하게 배불리 먹었다.


어젯저녁에 함께한 한국 순례자들 중에 초반에는 젊은 친구들이 먼저 앞서가고 성균관에서 오신 분이 파워 워킹으로 빠르게 걷는다. 하루도 아니고 근 한 달을 걸어야 하는 순례길이다. 남들이 걷는 속도에 신경 쓰지 말고 자기 페이스를 지켜 가는 게 완주하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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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건물(?), 좌, 밀밭 시이 마을들(우)


묵상을 하며 생각에 생각을 하며 걷다 뒤 돌아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잃을 곳은 아니기에 직선 길을 걷는데 비가 오락가락한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그냥 비를 맞기에는 많은 양이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의를 입고 걸었다. 이곳이 비는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하게에 우의도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하는 게 여간 성가시지 않은 일이다.


요즘 일주일 동안 매일 비를 만나는 것 같다. 어떤 날을 아침부터 어떤 날은 걷고 난 후 오후에 내리는 날도 있고 비를 맞고 걸은 날도 많다. 다행인 것은 비의 량이 많지 않아 신발이 젖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가 내리면 마땅히 쉴 자리가 없어 줄곳 걸을 수밖에 없다. 쉬면 금세 체온이 떨어지고 추위마저 느끼게 된다. 고생하는 것은 어깨와 허리다. 그것을 인내하고 버티며 걷는다. 순례길에서 고행은 당연한 일이고 각오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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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메 붙여 둔 가리비(좌), 스페인의 아이들(우)


연이어 나타나는 카미노 길 안내 표지석이 순례길을 제대로 가고 있음을 알려 준다. 오늘 걷는 거리가 짧은 이유는 카리온에서 다음 마을까지는 17km에 숙소가 없기 때문이다. 17km를 포함하여 다음 알베르게까지 간다면 37km를 걸어야 하는데 성균관에서 오신 분은 그 거리를 걷겠다고 하신다. 대단한 체력이고 주력이다.


이곳의 풍경은 변함없는 단조로운 풍경으로 지평선과의 만남이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전봇대 그리고 직선 도로 그 옆에 도로를 따라가는 순례길이다. 사람이 보통 직선으로 볼 수 있는 거리는 4km라고 한다. 그 거리에는 모두 밀밭이다.


배낭의 무게가 느껴져도 마땅히 쉴만한 장소도 없고 비도 내리니 무념무상으로 걷는다. 이게 순례길 인지도 모르겠다. 카리온을 6km 정도 앞두고 비야카사로 마을에 접어드니 길옆에 바가 있다. 일행이 오나 살펴도 보이지 않아 어깨도 쉴 겸 해서 바 들어갔다. 지나가면서 눈에 뜨이라고 배낭을 길가에 내려 두고 들어 갔다. 밀크커피와 빵 2개로 허기를 달래며 기다려도 보이 질 않아 전화로 지나가는 길의 바에 있으니 지나가지 말고 들리라고 했다. 같이 길을 걸어도 발맞추어 걷기보다 생각하며 따로 걸어도 좋은 순례길이다.


성당 입구의 순례자 상, 지팡이에는 물통인 표주박이 있고 순례자 표시로 가슴에 가리비가 있다.


통상 순례자들은 알베르게에서 아침에 배낭을 꾸려 바로 출발하고 제일 먼저 만나는 바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다. 그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순례길에서 빨리 길을 나서는 첫째 이유는 그날 거리의 알베르게의 침대 확보이고 두 번째가 스페인의 날씨는 한낮으로 가면 불볕더위가 되어 쉽게 지치니 일찍 그날 거리를 걸으면 한낮의 더워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에 잦은 비도 피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순례자들은 오후 1시경에 순례길을 끝낸다. 빠른 곳은 1시경부터 알베르게 문이 열리니 침대를 확보하고 빨래를 하고 마을을 둘러보고 낮잠도 즐기며 내일을 위한 재충전을 한다. 그러나 그 많은 시간 중에 책을 읽을 정도의 여유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노트에 그날 일정을 메모하는 시간도 짬을 내야 했다.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wi-fi가 되기 때문에 Sns를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고 주방이 있으면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그리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아구스딴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 12시 오픈 시간을 기다리는 순례자들


오늘은 카리온의 유서 깊은 아구스딴 수도회 수녀님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들려고 서둘러 도착했는데도 벌써 줄이 꽤 길다. 52개 침상을 가지고 있는 이 수녀회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에게 꽤 인기 있는 알베르게다. 우리는 그래도 안정권인데 대전에서 오신 부부와 어머님팀 4분은 결국 52번이 넘어 다른 알베르게로 가셨다.


2층 침대로 이루어진 알베르게 내부


입실할 때는 따뜻한 차 한잔을 내주셨다. 수녀님이 일일이 물어보고 안내해 주시는데 그게 언어 소통이 잘되지 않는 순례자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때 하는 말은 알베르게의 규칙과 이용방법을 안내해 주시는데 매일 그렇게 똑같은 말로 안내해 주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인 듯하다.


2층이 침상이 있는 숙소로 2층 침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녀 가리지 않고 오는 순서대로 침대를 배정한다. 그간 다행히 코골이가 없어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가끔 코골이로 잠을 설친 분도 많다고 하니 그건 행운이었나 보다.


알베[르게 앞이 공원에 있는 성모 마리아 상


이곳 알베르게는 주방이 있어 가게에 가서 장을 보아 밥을 짓고 된장국을 끓여 점심을 든든히 먹었다. 한국인은 아무래도 쌀이 주식이라 빵보다는 밥이 좋다. 그리고 소스로 된장이나 고추장만 있으면 가게에서 장을 보면 입에 맞는 한식을 먹을 수 있다. 특히 육류는 가격이 싸서 스테이크나 삼겹살 그리고 닭고기는 순례길에서 체력 보충으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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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건물(좌), 카리온 동판(우)


식사를 하고 마을 나들이에 나섰다. 카리온은 세력이 한창일 때는 인구 만 명 정도가 살았으나 지금은 2천5백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길은 구불구불하고 중세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큰 가게를 지나자 카리온 강이 흐른다. 그간 비가 많이 내렸는지 강가에 나무가 물에 잠겼고 거 센물이 빠르게 흘려간다.


비가 내려 불어 난 카리온 강물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분수광장에서 한국인 팀을 만났다. 재미교포인 분인데 베이비 부머 세대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데모를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 갔고 졸업 후 생계가 막막해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 살다가 이제 정년퇴직하고 스페인으로 순례길을 걸으로 오셨단다. 나이도 비슷해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함께한 분은 서울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휴직하고 온 아기씨는 남미를 돌아 스페인까지 왔는데 180일째 여행 중이라고 한다.


재미교포 분과 광장에 호프 한잔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과의 정 탓인가? 재미교포분이 흥에 겨워 호프 추가에 추가로 하며 "오늘은 내가 쏜다."다.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나 향수에 젖은 것 같다. 결국 3잔을 비웠다. 통상 여행객은 자기가 먹은 음식값은 본인이 계산을 하는데 굳이 전부 다 계산을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게 한국인의 정인가?


마을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수녀님들이 통기타를 치고 작은북을 두드리며 순례자들에 대해 축복을 해주었고 순례자들이 돌아가면서 응원 메시지가 있었다. 순례길의 이런 이벤트는 순례길을 왜 걷는지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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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과 통키타로 성가도 부르고 각국 나라의 노래도 부르는 흥겨운 시간


집 생각이 나고 울적해서 밤에 혼자 바에 들려 와인을 앞에 두고 딸애와 카톡을 오래 나누었다. 아빠도 늘 강한 아빠가 아니라 오늘은 약해 보인단다. 가장의 자리가 무거웠다고 하니 이해가 된단다. 그래 이제 딸애도 마냥 어린 게 아니고 나이도 먹었고 많이 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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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 모습


가끔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보아야 그 빈자리를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게 산티아고 순례길이 준 선물은 아닐까. 나는 너의 너는 나의 무엇이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 카리온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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