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를 따라 걷는 프로미스타

묵상의 길

by 산달림

5시 50분에 알베르게를 나섰다.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는 시간인데 고갯마루를 넘는 깜박거리는 불빛이 보인다. 앞서가는 순례자들의 불빛이다. 출발 때부터 우의를 입고 길을 나섰다. 다행히 많은 양의 비는 아니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라 걸을만하다. 오르막길을 한걸음 한걸음 거리를 늘려 본다.


모스텔라레스 고개 정상에는 작은 집이 지어져 있고 옆에는 탠트가 처져 있다. 아마 순례길을 탠트를 매고 하는 가장 낮은 자세로 길을 나선 순례자인 것 같다. 고갯마루에서 뒤를 돌아보니 아직도 우리가 묵었던 알베르게 마을의 불이 깜박거리고 뒷동산의 고성이 아스라이 보인다.


비 오는 날 새벽에 넘는 모스텔라레스 고개의 순례자


우리가 갈 순례길에는 우의를 입은 순례자들이 움직임이 보인다. 비가 내리면 길에는 웬 달팽이가 그리도 많은지 어제도 많은 달팽이를 만났다. 무심코 걷다 보면 밟을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걸었다. 멀리 가려면 달팽이처럼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


첫 번째 만나는 마을까지는 10여 km로 근 두 시간을 넘게 걸어야 했다. 마을을 벗어나려는데 빈집의 처마 아래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비가 내리는 날은 땅이 젖어 엉덩이를 붙일 마땅히 쉴 때가 없다. 그러다 보니 힘이 들더라도 자꾸만 걷게 된다. 아직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기에 여기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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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아래로 밀밭 사잇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들(좌) 까미노 안내 표시(우)


비가 내리는 날은 잠시만 쉬어도 체온이 떨어진다. 체온을 높이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움직여서 혈액 순환을 시키는 방법, 더운물이나 핫팩 등으로 외부에서 열을 전달해 체온을 높이는 방법이 있고, 마지막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체온이 높아지면 면역력이 높아진다. 걷기는 운동으로 체온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시 이슬비 내리는 길에 나섰다. 통상 오후에 자주 오던 비가 오늘은 새벽부터 계속 비가 내린다. 아마 어제 우리가 걸은 메세타 지역의 진흙길은 더욱 힘든 길이 될 것 같다.


다시 오름길로 이어지는 길 마루에서 뒤돌아 보니 일행은 멀리서 보인다. 걸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마땅히 쉴 곳이 없어 그냥 걸었다. 순례길은 같이 걸어도 마음속은 혼자 생각하며 걷고 따로 걸어도 혼자인 그런 자기를 생각하는 길은 아닐까?


프로미스타로 가는 길에 만난 돌로 만든 오래된 다리


이 길에는 특별한 알베르게가 있다. 이테로 델 카스티요에 있는 오스피탈 데 산 니콜라스 알베르게다. 성당을 개조해 만든 알베르게로 이탈리아의 성인을 모신 곳이라 이탈리아에서 이 성당의 복원을 하였고 자원봉사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맡고 있다. 이곳 알베르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실내조명은 촛불을 켠다. 호스피탈레로들이 저녁과 아침을 준비해 다 함께 나눈다.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며 뒤쪽 건물에서 샤워를 할 수 있고 휴대폰 충전도 할 수 있다. 저녁이 되면 자원봉사자들이 순레자의 발을 씻겨주고 마지막에 발에 입을 맞춘 후 이름을 불러 주며 까미노 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잘 갈 수 있도록 기도를 해준다.

그런 의식이 끝나면 20명이 촛불 아래에 둘러앉아 소박한 저녁식사를 한다. 까미노 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알베르게가 아닐까. 조금은 허름하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순례길에서 이곳의 하룻밤은 가장 아름다운 밤이 될 것 같다.


이탈리아 국기가 내걸린 특별한 숙소인 오스피탈 데 산 니콜라스 알베르게


늘상 보던 밀밭이 수로가 있는 순례길로 접어든다. 카스티야 운하로 나무가 늘어선 한적한 길을 따라 프로미스타로 흐른다. 18세기 이 수로는 옥수수 방앗간을 돌리는 힘뿐만 아니라 경작된 곡물의 수송까지 담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로의 끝에는 운하의 수문이 있다. 무척 견고하게 건설된 수로를 건너서 프로미스타에 들어가면 이 마을은 도시 느낌이 나는 좀 큰 도시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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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수로가 잘 발달된 푸로미스타 수로(좌) 실물 같은 성경책 (우)



마을 입구에는 쾌 큰 마트가 있어 영양보충을 위해 닭고기 햄과 건포도, 맥주를 사고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을 하니 아직 문은 열지 않았다. 이곳 알베르게가 열리는 시간은 오후 1:30분이다. 배낭은 줄을 세워 두고 이슬비가 내리는데 비를 피해 알베르게 바로 앞에 있는 산 마르틴 광장에서 간식을 먹으며 시장기를 달랬다.


프로미스타 공립 알베르게 입구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순례자 배낭
산 마르틴 성당


이곳에서도 한국인 순례자가 많아 그간 헤어졌던 분들과 재회를 했다. 저녁 식사는 이곳에 주방이 따로 없어 알베르게 옆에 있는 호텔 식당에서 델 다이 순례자 메뉴로 식사를 했다. 오늘은 26.4km를 걸었다. 걷는 동안 줄곳 비를 맞고 왔더니 마음도 착 가라 않는다. 햇볕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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