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숨 고르기 비야마르오이

울트레야! 조금만 더 힘내자.

by 산달림


아르수아 Via Lactea 알베르게에서 아침 5시가 되어도 아무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그간의 피로감인가? 이제 산티아고가 가까워서 여유를 부리는 걸까? 아침식사는 어젯밤 남겨둔 밥에 물을 붓고 삶아 흰 죽으로 먹기로 하고 열판의 불을 켰다. 달걀은 찜으로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어제 사온 반찬을 준비하고 동행자를 깨웠다. 먹어야 가는걸 그간 습득하여 식탁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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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조금 늦은 6시 50분에 숙소를 나섰다. 날이 훤히 밝아진 후였고 다들 바삐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에 들어섰다. 카미노 길이 알려진 탓인데 페친들의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다. 누구든 자신에게 선물하는 가장 큰 선물이 카미노 길이 아니겠는가?


아침에는 동행인이 빠르게 걷기에 사진을 찍기 위하여 뒤로 처졌다. 동쪽 일출이 있고 하늘에는 달이 떠 있어 일출과 달이 함께하는 아침이다. 갈리시아 지방은 흐린 날이 많아 습도가 높아 농촌의 집집마다 오레오라는 곡식 저장고가 한 개씩 있는데 모양도 제각각이다. 스페인 남부지방은 건조하고 화창한 날이 많아 곡식 보관에 별다른 시설이 필요 없어 오레오를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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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길은 떠나는 순례자(좌) 하루를 시작하는 동녁하늘의 일출(우)
갈리시아 지방의 곡식 저장고인 오레오


오늘 걷는 길은 유난히 유칼립투스 나무가 많다. 어린잎을 따서 비벼보면 은은한 박하향이 난다. 그래서 유칼립투스 숲에 들어서면 은은한 허브 향내를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에스파니아 중년의 여자분과 같이 걸었다 헤어졌다를 반복했는데 안면이 있다고 아는 척하는데 영어를 할 줄 몰라 대화는 되지 않지만 이심전심으로 마음은 통한다. 그게 순례길이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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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향 내가 나는 갈리시아 지방에서 흔히 볼수 있는 유칼립투스


고속도로 다리 육교를 지나는데 아직 도로는 공사 중이다. 그들과 함께 걷다가 시장기를 느껴 간식을 먹고 걷는데 먼저 갔던 에스파뇰 인들이 바르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꼬레아!"하며 손을 흔들어 준다. 에스파뇰 인들은 활달하고 걸을 때도 힘차게 걷는 매우 정열적인 기질이 있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배낭 뒤에 매달려 있는 태극기를 보고 '꼬아' 하면서 인사를 건넨다. 광주 부부팀은 길을 가다가 바르에 들어가기에 먼저 길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주 만나고 인사도 나누게 된다.

오늘은 유칼립투스 숲을 연신 지나는데 목적지로 생각한 페드로우스가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보이질 않는다. 시간상으로는 분명 통과했어야 하는 시간인데 쉬면서 찬찬히 지도를 보니 아뿔싸 지나고 말았다. 동행에게 지났으니 돌아갈까 계속 갈까를 상의하니 그냥 가자고 한다. 그러나 다음 알베르게는 지금부터 18km 거리인 고조(Gozo)까지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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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시아 지방의 전형적인 농촌풍경(좌) 넓은 초원이 있는 갈리시아 지방(우)


날씨는 더워지고 체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 시간으로 흐르고 있어 Bar에 들어가 간식을 먹고 진행 여부를 의논하니 힘들다고 하면서 가는데 까지 가보겠단다. 이곳은 바르와 호텔을 함께 하는 곳인데 2명 숙박료가 55유로라 한다. 좀 비싼 것 같아 좀 더 걷기로 했다.


가다 보면 이런 호텔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출발하였다. 그간 무리해서 인지 동행인은 다리에 통증이 심하다고 하여 진통제 2알을 주었다. 진통제 약효인지 통증은 사라졌다고 하는데 진통제는 치료제가 아니니 덧나면 내일이 문제일 수 있다. 고조(Gozo)까지 걸으면 지금 속도로 오후 4시 30분경에 도착이 가능한데 그렇게까지 걸어 줄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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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흙길인 유칼립투스 나무숲을 지나는 순례자들


전형적인 스페인 북부 마을인 비야마르오이에 도착하니 마침 바르가 있어 일단 맥주 한잔하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동행인의 피곤함 역 역하여 숙박이 가능한지를 물으니 50유로고 식사는 10.5유로라고 한다.

동행인이 지금 상태로는 무리니 여기서 쉬자고 하여 오후 3시에 숙소에 들었다. 그리고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간다. 무리해 걸으면 걸었겠지만 좀 짜증스러운 길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카미노 길을 걸으면서 마지막 밤을 조금 고급스러운 숙소에 자보는 것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간 잘 버티어준 나에 대한 선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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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뽀송항 침대에서 단잠을 잔 사설 알베르게(좌) 햇볕에 독서하고 햇볕을 쬐는 유럽인들(우)


햇볕이 쨍하니 유럽인들은 스페인의 강한 햇살에 얼굴을 맡긴다. 난 햇볕이 싫은데. 고조(Gozo)까지 알베르게가 없어 생겨난 사설 숙소인 듯하다. 이곳은 농가주택을 리모델링하여 숙소로 활용하는 곳으로 침구가 뽀송하고 깨끗한 숙소였다. 빨래를 널고 마을을 둘러보는데 이곳 갈리시아 지방의 주부들은 농기계 운전도 척척 능숙하게 운전하고 가정일도 척척하는 슈퍼 우먼이다. 그게 갈리시아 지방의 특색인 듯하다.


그 후에도 비를 맞으며 고조(Gozo)로 향해 가는 순례자 무리를 여럿 볼 수 있었다. 갈리시아 지방은 역시 흐린 날이 많고 비가 잦은 습도가 높은 지방이다. 이곳은 워낙 작은 마을이라 가게도 없어 주방은 있는데 식사 준비를 할 수 없다. 저녁식사는 숙소에서 제공해 주는 식사를 8시가 되어야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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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의 안내표지 Buen Camino!


내일이면 카미노 길도 끝이 난다. 이 길에서 난 무엇을 느꼈는가? 순례길의 하루하루는 매일 새로운 날이다. Everyday is a new day. 카미노는 길 위의 수많은 체험을 하는 길이다. 길에서 본 갈리시아어로 쓴 "Ultreia(울트레야)"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조금 더!" Podemos(뽀데 모스)는 "우리는 할 수 있다." 카미노 길 800km를 걸은 체력과 인내심이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Be the Change'는 순례길에서 경험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그간의 나를 변화시켜 사랑, 관용, 배려, 용서, 육체적 고통과 힘듦, 그리고 인내심을 실천하는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오랜만에 포근한 침대에 몸을 묻으니 포근함이 젖어 오면서 다음엔 아내와 이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카미노 길은 나를 많이 변화시키는 길임에는 틀림이 없다.


조가비와 표주박이 새겨진 산티아고 가는 길의 오래된 돌 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