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칼립 투스 숲길을 따라 아르수아

배낭은 엉덩이가 아니라 등에 메는 거야.

by 산달림


오늘 걷는 길은 레이에서 아르수아(Arzua)까지 26.4km다. 알베르게의 새벽은 늘 분주하다. 부지런한 순례자는 5시가 되면 짐을 챙기며 출발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콧수염이 멋진 며칠째 같이 걷고 있는 독일인 아저씨도 서둘러 짐을 챙기고 있다. 아직도 자고 있는 다른 순례자를 위하여 배낭과 짐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복도에서 침낭을 말고 배낭을 꾸렸다. 1층 식당으로 내려가 빵과 우유 그리고 삶은 달걀을 챙겨 먹고 있으니 동행인이 그제야 짐을 챙겨 내려온다.


레이의 공립 알베르게 2층이 침실이고 1층은 부엌


6시 30분에 알베르게를 나서는데 아직도 어두운 새벽이고 하늘엔 반달이 선명하다. 다행히 비는 올 기미가 없고 레이 도시를 벗어나는데 어둠이 걷히지 않는다. 3.6km를 걸어 산술이안 마을에 들어서니 날이 밝아진다. 한국의 농촌보다 더 농촌스러운 갈리시아 지방의 시골마을에 정감이 간다.


DSC_0419.JPG
DSC_0422.JPG
어둠속에 레이를 벗어 나는 길에서 만난 동상과 카미노 안내판
카사 도밍고 카페, 가리비가 엄청 크다.


2시간을 걸으니 시장기다 돌아 길옆 바위에서 간식을 먹는데 광주에서 온 부부팀이 지나간다. 서둘러 간식을 먹고 따라 가는데 발걸음이 빠르다. 내리막 길에서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당나귀를 타고 가는 순례자도 만났다. 근데 등치가 작은 당나귀가 힘이 붙이는 것 같아 가엽게 느껴진다. 그렇게라도 순례길을 가야 하는가? 내가 편하자고 가축이라도 저렇게 혹사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가는 순례자
DSC_0434.JPG
DSC_0439.JPG
몽환적분위기의 북부 갈리시아 지방 카미노길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앞서 걷는데 무심코 유칼립투스 나무를 찍다가 갈림길을 보지 못하고 길을 놓치고 걷다 보니 건설공사장의 자재 적치소가 나타 난다. 카미노 길을 놓친 거다.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는데 10여분 걸었나 보다. 동행자가 찾을 것 같아 뒤에 간다고 급히 전화하고 문자를 보냈다. 멜리데 시내에서 광주 부부팀을 만나 성당을 들려 한 바퀴 둘러보고 보엔테(Boente)로 가는데 아직도 징검다리를 건너지 못했다는 전화가 온다. 그럼 아직도 앞에 가는 게 아니라 뒤에 온다는 거다.


DSC_0440.JPG
DSC_0445.JPG
유칼립투스 나무가 시원스러운 카미노 길(좌) 곡식 보관 창고(우)


천천히 갈 테니 따라오라고 하고 광주부부팀과 함께 걸었다. 작년 10월 카미노 길을 걷고 너무 좋아 아저씨가 다시 봄에 한번 걷자고 하여 5월에 다시 걷는 단다. 다시 걸을니 카미노 길에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 여기서 사진 찍었던 곳이라고 알려 주기도 했다. 긴 시간을 함께 힘들게 걷다 보면 다툼이 없는지 물으니 다른 별 큰 다툼은 없는데 새벽에 길을 나서기 전 아내가 꾸물거려 작은 불만을 말한 적이 있단다. 아무래도 여자는 아침에 간단한 화장이라도 하다 보면 시간이 다소 늦어지나 보다.


DSC_0464.JPG
DSC_0465.JPG
멜리델의 문어 요리 뽈보(좌) 산로케 성당(우)


천천히 걸어도 2km를 따라온다는 건 쉽지가 않다. 사진도 찍고 풍경도 감상하면서 여성 순례자와 보조를 맞춰 보기도 하는 데 따라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가끔 만나 와인 한잔씩 했던 독일인 젊은 친구가 반겨준다. 더 이상 걸으면 만나기가 힘들 것 같아 알베르게 의자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지친 얼굴로 걸어온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가지 했더니 그냥 가지고 한다.


DSC_0473.JPG
DSC_0482.JPG
광주에서 오신 부부팀 순레자(좌) 징검다리를 건너는 순례 숲속의 페나 다리(우)


뒤를 따라나섰는데 오름길에서 소녀 세명이 순례길을 걷고 있다. 그중 등치가 큰 여자 아가 제일 뒤에서 걷고 있다. 배낭끈이 축 늘어져 엉덩이에 배낭이 내려와 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게 힘든 것 같다. 배낭끈을 바짝 당겨 등에 붙도록 배낭끈을 조여 주었다. 배낭끈이 늘어지면 맬 때는 편하지만 걸을 때는 무게 중심이 아래 있어 힘들다고 했더니 씩 웃는다.


DSC_0513.JPG
DSC_0504.JPG
베낭을 엉덩이에 메고 걷는 스페인 소녀 순례자들(우측)
가끔씩 만나는 구멍가게 / 복장이 하나 같이 바지는 타이즈 차림


갈리시아 지방은 한국과 비슷한 풍경이라 정겹다. 동행인은 아침엔 잘 걷는데 점심때쯤이 되면 체력이 떨어져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길의 끝은 늘 피곤해한다. 아르수아는 인구 8천 명의 제법 큰 도시다. 중세 모습은 그대로 간직한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옛 그대로다.


DSC_0501.JPG
DSC_0516.JPG
목가적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의 농촌 풍경


성당 주변 알베르게에 들었으면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좀 더 걸으니 아르수아의 끝이다. 다시 돌아오는데 한국인 부부 순례자를 만났다. 자기가 묵고 있는 'Via Lactea 알베르게'를 추천해 준다. 120명의 규모의 침대를 가지고 있는 알베르게로 주방도 있다. 마트에 갔는데 시에스타 시간이라 문이 닫혔는데 카르프는 문을 닫지 않아 꽃등심 타령을 하여 1kg에 8유로로 착한 가격이다. 든든히 먹아야 힘을 쓰기에 야채와 과일을 넉넉히 사고 와인도 한 병 샀다. 이렇게 잘 먹어야 내일은 잘 걸을 수 있겠다. 잘 먹어야 잘 걷는 것 아닌가? 이제 산티아고 입성은 2일 남았고 코앞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