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가 저기다. 팔라스 델 레이

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다.

by 산달림


순례길 후반으로 가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지고 바지 허리가 헐렁한 게 체중도 좀 빠진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하는데 빵은 지겹다. 그래도 입맛에 맞는 게 한식이다. 이곳은 한식집이 없으니 한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5시 20분 어제저녁에 먹고 남은 밥을 맹물에 삶아서 흰 죽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여기 인덕션에 불을 켜는 게 쉽지가 않다. 안전장치가 있어 그냥 눌러서 켜지지 않고 동시에 눌러야 불이 켜지게 인덕션마다 달라 켤 때마다 생고생을 한다. 내 생각에는 삶는 밥의 량이 적다는 생각인데 굳이 많다고 우긴다. 그게 나를 기준으로 했고 그는 그를 기준으로 했을 때는 많다는 것이다. 많다 적다는 상대적이지 굳이 내가 맞다고 우기는 나를 본다.

DSC_0380.JPG
DSC_0381.JPG
포르토마린의 'Novo 포르토' 알베르게(좌) 포르토 마린의 새벽 거리 풍경(우)

예를 들어 맥주컵과 물컵을 비교하면 맥주 컵은 크고 물컵은 작다. 물컵과 소주잔은 비교하면 물컵이 크다. 그러면 물컵은 큰가? 아니면 작은가? 물컵은 맥주컵과 비교할 때는 크지만 소주잔과 비교할 때는 작다. 크다 작다하는것은 비교대상이 크냐 작냐에 따라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한다. 본질은 변한 게 없는데 말이다. 물컵은 크지고 작지도 안고 그냥 물컵일 뿐이다. 생각이 늘 깨어 있지 않으면 늘 고집을 부리게 된다. 내가 옳다고 고집하지만 내 생각일 뿐이다. 그 마음을 이 아침에 다시 본다.


결국 밥을 좀 적게 넣고 끓였는데 다 먹고 나서도 배가 헛헛하다. 길을 가다가 가게가 나오면 간식을 좀 사 먹어야 할 것 같다. 6시 30분에 길을 나섰는데 아직도 어두움 속이다. 그런데 부지런한 순례자들을 벌써 길을 걷고 있다. 레온 전에 알베르게에서 같이 숙소를 사용했던 그 금발의 중년 여자 순례자를 이 새벽에 다시 만났다. 길 위에서 헤어짐은 헤어짐이 아니라 다음 만남의 약속이다.


미뇨강 벨레사르 호수 다리를 건너는 새벽풍경


어둠 속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간밤에 비가 내렸는데 흐린 날씨에 구름 사이로 간간이 별들이 보인다. 다행히 당분간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씨다. 카미노 길은 댐을 거슬러 올라가서 댐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서 오르막 길로 이어진다. 포근한 아침 기온이 배낭을 멘 등에 땀이 촉촉이 베여 온다.


길에서 만나는 아침 일출


여명이 올 때 어제 만났던 광주에서 온 부부팀을 다시 만났다. 그분들은 2번째 카미노 길을 걷는 분들로 작년 가을에 카미노 길을 걸었는데 봄 풍경을 느끼고 싶어 봄에 다시 왔다고 했다. 가을은 황량한 들판을 걷는데 사각사각하는 낙엽을 밟는 소리가 좋았단다. 딸이 파리에 살고 있어 파리에서 며칠 쉬었다가 생장에서 출발했단다.

건설업을 하는 6학년 후반인 나이가 지긋한 분이신데 그간 걷기를 생활화하여 800km 카미노 길도 힘들지 않다고 하시면서 평소 스포츠 댄스, 트레킹, 자전거 타기, 등산 등을 꾸준히 하셨단다. 그리고 카미노 길 수칙 중 하나는 출발하여 첫 번째 바르에서 아침식사를 한단다.


DSC_0388.JPG
DSC_0389.JPG
사리아부터는 점점 순례자가 늘어 나는 길


첫 번째 마을인 곤사르(Gonzar)에서 그분들을 바르로 가고 우린 준비한 빵과 사과로 간식을 먹고 출발하는데 작은 무게라도 줄어 드니 어깨가 많이 가볍게 느껴진다. 그래서 카미노 길을 걸을 때 제일 중요한 게 배낭을 가볍게 싸는 방법이 필요하다. 매일 걷는데도 체력소모가 심해 매 2시간 정도 간격으로 뭘 먹어 줘야 허기를 면하고 걸을 수가 있다.


그냥 평범한 스페인 북부 마을을 통과한다. 길에서 한국 젊은 친구를 만났다. 27일 만에 산티아고에 입성한다고 오늘은 늦게 까지 40km 이상을 걷는 단다. 뭣이 그리 바쁘고 뭣이 중한지 생각 않고 젊은 패기로 객기를 부리는 게 아닌가 싶다. 순례길이 마라톤도 아니고 빨리 걸었다고 자랑할 일은 아니지 않나. 조금 천천히 생각하면서 음미하면서 걸어도 좋은 마지막 카미노 길이 아닌가. 카미노 길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걸어가는 과정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는 그런 일련의 일들이 더 중하지 않을까?


남은 거리 78.1km를 알려 주는 순례길의 표지석


레이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한국 아가씨도 오늘 멜리데까지 간다고 한다. 멜리데는 레이에서 약 15km를 더 걸어야 한다. 그래서 내리막 길을 거의 뛰다 시피하여 걸어간다. 한국인을 왜 이리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걸까? 그간 우리 교육은 남에게 지지 않는 법을 배운 결과의 산물은 아닐까? 나도 학교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남에게 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 입시부터 무한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지금도 교육현장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나무가 많이 걷기 좋은 순례길


레이(Rei) 입구 인포메이션센터에서 세요를 받고 간단한 질문이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서 출발을 했는지. 며칠 일정으로 걷는지 등에 대한 간단한 질문이다. 알베르게 가기 전 성당에 들렸더니 성당에서 세요를 찍어 주는데 줄이 길다 이유인 즉 아가씨가 가지고 있는 크리덴시알이 전부다 세요가 찍혀 빈칸이 없어 풀로 붙여 순례자 카드를 만들고 있다. 아무리 줄이 길어도 차례대로 그게 끝나야 다음 순례자의 순례자 수첩에 세요를 찍어 준다.


DSC_0393.JPG
DSC_0409.JPG
순례자 행열이 많은 북부길(좌) 숲이 있어 운치있는 걸기 좋은 길(우)


12시 20분 레이 무니시팔에 도착했는데 오후 1시가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데 30분을 기다려 들어갔다. 숙박비는 6유로이고 자원봉사자가 접수를 보고 있는데 아들도 와서 옆에서 거든다. 많은 유럽의 순례자들은 여길 드는데 한국인들은 사설 알베르게로 많이들 간다. 광주에서 오신 부부팀도 사설 알베르게로 가셨다. 이곳은 부엌은 있는데 주방기구가 없다. 취사를 할 수 없어 저녁식사 때까지 기다리가 지루하여 가게 가서 와인 1병을 사서 마시고 나니 피로가 몰려와 낮잠 자기 좋다. 동행인은 샤워도 않고 잔다.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다.



DSC_0415.JPG
DSC_0416.JPG
성당의 규모가 화려하지 않는 산 티로소 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의 현관


하루 걷기를 마치고 알베르게에 들면 통상 침대 시트커버를 받아 끼우고 침낭을 펴 놓고 샤워를 하고 밀린 빨래를 손세탁하고 건조대에 널어놓고 잠시 낮잠을 자고 마을 구경에 나선다. 그리고 마을에 먹을 만한 식당을 골라두고 저녁식사를 하고 일기를 쓰고 내일 걸을 구간에 대해 책을 보고 9시경에 잠자리에 든다. 그게 평범한 하루 일정이다.


이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는 3일. 한걸음 한걸음이 아까운 걸음이다. 그래도 다들 빠른 걸음으로 산티아고로 향하고 있다. 금방 생각한다고 깨닫지는 못하지만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시간이 된 건 분명한데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느껴져야 하는 건 아닐까.


팔라스 델 레이의 공립 알베르게 2층에 침대가 있음.


요즘 연일 비가 오다가 흐리다를 반복하는 스산한 날씨다. 스페인의 북부는 춥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녁 식사는 카미노 메뉴로 식사를 하였는데 콩 수프는 좋았는데 고기는 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많이 질기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식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레이의 무니시팔은 콘센트도 많이 부족해 휴대폰 충전도 힘들고 부엌에 주방용기가 없어 불편한데 다행히도 실내 난방은 해 주네. 그래서 다들 사설 알베르게로 가는 것 같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데 집중이 되지 않는다. 오늘 이곳 알베르게에서 독일인 대머리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늘 용감하다. 산티아고에도 비슷하게 도착하지 않을까? 대부분 걷는 거리가 비슷하니까. 아직 밖은 훤하다. 그러나 상가는 거의 문을 닫았고 바르만 몇 집 문을 열고 있는데 이곳은 문어(뽈보)가 유명하다는데 별로다. 주문진의 싱싱한 삶은 문어 같은 그런 맛은 기대하기 힘들다. 산티아고! 29일 만에 산티아고에 입성할 것 같다. "부엔 카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