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m 돌파 남은길 두 자릿수
산티아고 순례길의 남은 거리 100km 통과하는 날로 남은 거리가 세 자리에서 두 자리로 줄어든다. 흐리고 비가 올듯한 날씨다. 아침 5시 25분에 일어나서 부엌에서 달걀을 삶았다. 삶는 방법을 이번 순례길에서 배웠는데 물이 끓고 7분이 딱 좋은 시간이다. 스페인은 달걀값이 싸고 부족한 단백질 섭취에는 딱이다. 먼길 떠날 때는 속이 든든해서 좋은 먹거리가 된다.
간밤에 평화방송 작가분이 남은 6일간은 각자 걸어 보면 더 유익한 시간이 될 거라고 권했는데 동행인이 싫단다. 달걀을 삶아 왔는데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마다 잠을 깨워 주는 것도 짜증스러운 일인데 알아서 일어 나주면 얼마나 좋으련만 이것도 업보로 생각하고 6시에 깨워도 출발은 6시 40분이 된다. 출발 준비하는데 시간이 너무 긴 것 같다. 스스로 인내심을 발휘해 보면서 이것도 나를 시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 도시를 빠져나왔다.
하루 통상 걷는 거리로 남은 거리를 계산해보니 28일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입성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기본거리만 생각하고 22.4km를 걷기로 했다. 어제 많이 걸은 탓에 피곤했고 방송작가와 만남이 속내를 다 드러낸 것 같아 동행인에게 미안한 것 같기도 하다.
컨디션이 별로인지 배낭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줄곳 앞뒤로 따로 걷다가 아침식사 때 준비해온 빵과 과일 삶은 달걀을 먹을 때 만났다가 다시 앞뒤로 걸었다. 그게 서로 편히 걷는 방법이다.
흐린 날씨가 빗방울이 떨어져 우의를 입고 걸었는데 좀 걷다 보니 100km 표지석이다. 비가 내린다. 남은 거리 99.987km 표지석에 우의를 입고 사진을 남기고 같이 걷던 외국인 순례자도 사진을 부탁한다. 이제 남은 거리가 두 자리 숫자이다.
마음이 가벼운 탓인가? 발걸음이 빨라진다. 평범한 스페인의 목가적인 농촌마을만 지나다가 호수가 있는 마을인 포르토 마린이다. 이 마을은 중세 때 중요한 마을이었으나 댐 건설로 마을은 물속에 잠겨 수몰되었고 주요 건물은 그대로 이전하여 지금의 포르토 마린에 다시 복원하여지었다고 한다. 그러니 신도시인 셈이다. 가는 길에 한국 컵라면 있습니다. 란 글이 있다. 김치도 있단다. 입맛을 잃은 한국 순례자라면 먹고 회복을 해도 좋겠다. 요즘 순례길에 한국인을 자주 만난다. 많이들 걷고 있다는 것이다.
포르토 마린을 가려면 댐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다리로 가는 길이 비가 내려 많이 미끄럽다.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나이 드신 분은 거의 앉아서 걷는다. 다리를 건너는 것도 만만치 않다. 다리 난간 아래는 시퍼런 댐의 물이 가득 차있고 바람마저 부니 오금이 떨린다. 다리를 무사히 건너면 도시로 올라가는 계단이 기다린다. 그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가는데 힘든 마지막 고비다. 계단 끝에는 가게가 있는 이 마을의 중심부가 된다.
비를 맞으며 마을로 들어섰는데 알베르게가 너무 많아 어느 알베르게로 가야 할지 망설이다가 주방이 있는 Novo Porto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밥이 먹고 싶었다. Dia에서 싱싱한 채소와 쇠고기 스테이크 거기다 쌀을 쌌다. 밥을 짓고 쇠고기를 굽고 감자, 양파와 라면 수프를 넣고 찌개를 끓였다. 라면 수프 한 개의 고마움을 처음으로 느꼈는데 이것이 한국의 맛이다.
수몰 전에 옮겨온 산니콜라스 성채 성당은 원래 건물에 사용했던 돌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새로 조립해 세운 것이라 한다. 구 시청과 산페드로 성당도 마찬가지로 옮겨온 건물이다. 성당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교차하는 지점의 전면부에 있는 장미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톱니 모양의 지붕, 크지만 소박한 내부를 통해 그 아름다움을 유지했다고 한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오니 피곤하여 낮잠을 한숨 잤다. 호숫가 마을 포르토 마린에서 순례길 하루가 간다. 쌀은 1kg 단위로 판매를 하는데 전부 밥을 지으면 늘 남곤 한다. 남은 밥과 스테이크로 저녁식사를 했다. 스페인은 고기 값이 싸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여기에 와인 한 병이면 뭘 더 바라겠는가. 추가해서 상치 겉절이를 하여 푸짐한 식사를 하였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서니 비를 자주 만난다. 그간 잘 사용하지 않던 우의를 자주 꺼내게 된다. 비가 내리니 카메라를 잘 꺼내지 않게 된다. 맑은 날 보다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비가 내려 먼 곳은 안개가 끼어 흑백 사진 같다.
시작한 곳으로 돌아가 나가는 길이 곧 들어오는 길임을 깨닫는 것. 죽음으로 향하는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완전히 용서하는 것뿐이다. 그 길을 순례길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