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의 끝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그 길의 끝에 서다.

by 산달림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서른셋의 나이에 세상을 구원하고 죽은 예수. 그의 열두 제자 중에 한 분이었던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다. 그 길의 끝 산티아고에는 그의 무덤을 향해 1,200년 전부터 순례자들의 걷던 길이 었다. 이제는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더라도 내면으로 걷는 길이다. 그 길 위에 내가 섰고 오늘이 그 길의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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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 고조로 가는 순례자들


순례길이 계획보다 빠른 29일 만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입성이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카미노 길에서 익숙해진 새벽 기상시간이 느긋하게 자질 못하고 결국 5시 25분에 일어났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데 오늘 산티아고 대성당에 들어선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큰 아침이다.


철망에 꼬챙이로 만든 삽지가


어제 조금만 힘을 내어 고조(Gozo)까지 갔으면 산티아고 입성 전날의 설렘을 같이 느낄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마음은 그곳으로 달려가는데 이곳 숙소 주인이 문을 잠그고 퇴근하고 아무도 없다. 숙박비랑 식비는 아직 계산을 하지 않았는데 어쩌나. 그 사이 영국인 노부부는 어젯밤에 계산을 끝냈다고 닫힌 대문이 열리기를 기다리지 않고 담장 사이 뒷길로 나가 길을 나선다.


아직 계산을 하지 않아 어떡하냐고 하니 카운터에다 돈을 두고 가면 어떠냐고 한다. 미덥지 않고 정확히 얼마인지 몰라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만 하다. 7시가 넘어 느지막이 주인이 돌아오고 난 후 체크 아웃하고 길을 나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산티아고 가는 길의 마지막 구간의 길이다. 아쉬움에 조금씩 걸음을 줄여 아껴 걷는데 동행인이 마지막 날이라고 성큼성큼 서둘러 걷는다. 우중에도 사진을 남기기 위하여 카메라에 비닐을 씌워 찍으면서 걸었다. 사진을 찍다 보니 동행인과 거리가 멀어진다.


1982년 교황 바오로 2세의 방문 고조 언덕의 조형물 십자가에는 조가비가 있다.


고조(Gozo) 지역으로 들어서면서 순례길은 분명 왼쪽 길인데 동행인이 오른쪽 길을 간다. "오른쪽 길이야." 하니 그냥 간단다. 현지인에게 카미노 길을 물으니 왼쪽 길이 맞다고 한다. 혼자 고소산을 올라 가는데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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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의 산마르코스 예배당 외부와 내부 모습


산 마르코스 성당(San Marcos)에 들어가 세요를 받고 옆 가게에 가서 허기를 면하려고 커피 한잔과 빵 2개를 집어 들고 고조 언덕으로 올라갔다. 몬테 델 고조(Mounted del Gozo) 에는 1982년 교황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하여 산티아고 시내가 보이는 고조산의 제일 높은 곳에 대형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고조는 갈라시아어로 '기쁨'을 뜻하며 고조 산은 '기쁨의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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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대성상으로 내려가는 순례자들(좌) 조형물(우)

비보라가 몰아 치는 고조산에 올라 기념사진을 남기고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제 800km의 대장정이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얼 위해 걷고 왜 여기에 왔는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도착하기 만을 위한다면 차를 타거나 달려도 된다. 그러나 '자신을 들여다보려면 걸어서 가야 한다.'는 한 글귀가 생각이 난다. 그간 60 평생을 무얼 위하여 그리도 바삐 달려왔던가. 그래서 그 종착점인 정년이란 관문을 통과하고 있다. 매사에 완벽하고 철저히 하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무엇을 얻었는가? 마라톤도 서브 3이 아니면 안 된다고 기를 쓰면서 훈련을 하고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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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동상(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입성(우)


그러나 이제는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피곤해진 육신과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하나, 둘 내려놓아야 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내려놓자. 이제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이 필요하다. 남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행복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돈, 명예, 권력 그런 것을 위해 카미노 길을 걷지는 않았지 않은가. 진정 행복으로 가는 길은 나를 내려놓아야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고 여생은 그리 살아야 한다. 이 길에서 나는 나 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고 내 안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에 대한 방향성의 확신. 어쩌면 그런 답은 내 안에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애써 외면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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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조각된 조형물(좌) 비를 맞으며 산티아고 시내를 지나는 순례자들(우)


이제 점점 산티아고 대성당이 가까워진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이제 800km 카미노 길의 끝이다.' 카미노 길에서 느낀 그 마음 그대로 살려고 노력해 보자. 언덕에서 빤히 보이는 산티아고 대성당이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아깝다. 산티아고의 입성의 기억을 오래도록 남기라고 빗줄기는 점점 강해진다.


너무 강한 빗줄기가 내릴 때는 잠시 건물 처마 밑에서 쉬어 본다. 좀 더 천천히 가라는 그분의 뜻일까? 걸으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비닐을 씌운 렌즈 안으로 빗물이 스며든다. 카메라 속의 사진이 뿌옇게 젖어 온다. 대성당이 가까워지면서 순례자 수는 점점 늘어나서 무리를 이루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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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당의 벽 조형물(좌) 이 문을 들어 서면 오브라도이로 광장(우)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섰다. 보슬비가 내린다. 우의를 둘러 쓴 채 빗속에서 사진을 남긴다. 한분 두 분 속속 광장으로 몰려든다. 대성당 십자가를 보며 조용히 눈을 감고 '무사히 이곳까지 올 수 있음에 감사를 드렸다.' 환희의 기쁨이 함께 한다. 한동안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을 바라보았다. 비가 계속 내려 더 이상 오브라도이도 광장에 머무를 수 없었다. 순례자 증명서를 받으려고 발길을 돌렸다.


셍장을 출발 29일 만에 도착한 산티아고 대성당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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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라도이로 광장에서 본 왕립호텔(좌) 속속 도차하고 있는 순례자들(우)

산티아고 순례 완주증을 발급하는 곳은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줄이 무척 길다. 이 또한 순례길의 마지막 의식이 아니 겠는가. 조용히 줄의 끝에 섰다. 완주증을 받고 12시에 있는 대성당의 미사에 참석은 불가능하다. 2시간의 기다림 끝에 완주증과 거리 완주증을 받았다. 시간은 오후 1시를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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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완주증과 거리 완주증


이제 숙소를 잡아야 한다. 왔던 길을 되돌아 세미나리오 메노르(Semin Menor) 알베르게는 근 200명이 묵을 수 있는 숙소로 2박까지 할 수 있다. 계획보다 빨리 도착해 남은 시간은 땅끝 마을이 피니스테라로 가기 위하여 1박만 하기로 했다. 여기서 순례길에서 몇 번 만났던 독일인 대머리 아저씨와 콧수염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통상 하루 걷는 거리가 비슷하기에 대부분 길에 만난 순례자는 다시 만난다.


짐 정리는 빨리하고 늦은 점심식사를 위하여 시내로 나왔다. 점심식사는 쌀이 들어 있는 케밥과 와인과 콜라를 주문했는데 콜라 값이 와인보다 비싸다. 그게 스페인의 와인 값이다. 오늘 숙소는 오후 4시에 풀(Full)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오지 않을 때 성당 모습과 산티아고 대성당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혼자 오브라이도이로 광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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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대성당 모습 야고보 성체, 향로, 천정, 지하의 성 야고보 성체가 안치된 곳

대성당 내부는 생각보다 컸다. 장식벽 뒤에는 야고보 모형이 있다. 줄을 따라 주계단을 올라 사도 야고보의 널찍한 어깨를 껴안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무사히 이곳까지 인도해 주심에 감사하였다. 지하에는 야고보의 무덤으로 그의 관이 안치되어 있었다. 성당 내부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대형 향로가 튼튼한 긴 줄에 매달려 있다.


그 향로는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큰 향로로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에 향이 피워지고 거대한 향로가 성당의 허공을 가르며 나는 인상적인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피니스테라를 다녀와서 정오 미사에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향로를 움직이는 데는 8명이 필요하며 한번 향을 피우기 위해서는 500유로의 비용이 드는데 기부자가 있으면 향을 피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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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날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대자로 드러 운 순례자들


참 행복해 보이는 순레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부르고스 이후 알베르게에서 만난 독일인 친구를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오후에도 속속 순례자들이 속속 도착하여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순례자도 있다. 내일 걸을 피니스테라 가는 길을 확인하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노란 화살표 그리고 발자국 표시가 있어 현지인에게 확인해 보니 'si"한다. 내일 새벽에 걸어야 할 길이다.


여기서부터 동행인과는 4일간 헤어지기로 했다. 그는 피니스테라까지 버스로 이동을 한다고 하다가 내가 걷는다고 하니 천천히라도 걷겠다고 한다. 남은 4일은 온전히 나만의 산티아고 길이 되길 소망해 본다. 그 길이 이번 순례길의 끝이 될 것이다.

Buen Camino!(좋은 길이 되길!)


저녁에 지하식당에 내려가니 한국분으로 대구에서 오신 분은 처형부부팀과 함께 카미노 길을 걸었다고 하며 많이 대견해했다. 불현듯 아내와 다시 한번 걷고 싶은 생각이 든다. 누굴 원망하지도 말고 누구에 의해 내가 흔들리지 않고 내가 중심이 되는 주인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