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의 끈을 놓자.
어제는 긴 길을 걸어 피곤한 탓에 늦잠을 잤다. 평소보다 1시간 늦은 6시 30분에 일어 나 아침식사를 하는 곳을 알아보고 온 뻬뻬가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은 순례길의 알베르게와 달리 아침이 늦게 시작되는 것 같다. 이곳에 머무는 순례자도 우리 외에 몇 팀이 더 있었다. 주변의 알베르게가 Full이 되면 이곳이 와서 자고 가는 게 자주 있는 일인 것 같다.
8시가 되어서야 문이 열렸다고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배낭을 챙겨 식당으로 가니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붸페식인데 빵, 우유, 오렌지주스, 요구르트, 커피, 하몽을 넣은 빵과 여러 과일 등이 있어 일단 배를 든든히 채워야 걷기에 많이 먹어 두었다. 뻬뻬는 아침식사부터 밀크 우유에 양주를 타서 마신다. 술을 꽤나 좋아하는 친구네. 커피에 우유를 타서 마셨는데 약간 알코올 도수가 있는 커피다. 계산을 하는데 방값 25유로와 식사로 저녁과 아침 포함해서 15유로 합계 40유로다. 그리 비싼 요금은 아닌 것 같다.
9시에 다시 순례길로 데려다준다. 이번에는 시트로엥 차를 타고 어제 걷다가 그만둔 산타마리아 알베르게 앞에서 내렸다. 벌써 순례자들이 이전 알베르게에서 이곳까지 와서 걷고 있다. 우리가 늦게 시작한 거지.
오늘은 베뻬가 앞에서 걷는다. 뒤에 걸으며 페이스를 높이지 않았더니 뻬뻬와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간다. 그냥 사진을 찍으며 혼자 걸었다. 어쩌면 뻬뻬도 오늘은 혼자 홀가분하게 걷고 싶은지도 모른다. 내가 불편했으면 그도 편하지 만은 않을게다.
참 묘한 인간의 마음이 혼자 걸으면 외롭고 둘이 걸으면 외롭지 않아 좋은데 상대를 배려해야 하니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놓아야 하고 둘을 다 취할 수 없는 게 인간사인 것 같다.
그게 상대에 대한 나의 집착임을 알아차린다. 그 집착의 끈을 놔 버려야 되는데 그걸 놓기가 쉽지 않다. 집착의 끈을 놓아 버리자. 좋아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오늘 길은 뻬뻬를 놓아 버리고 혼자 걸었다. 따라가지 않으니 자연히 멀어져 버렸다.
순례자 수도 적어 보이지 않는 묵시아 가는 길을 홀로 걸었다. 가는 길에는 야생에서 자라는 디기탈레스 일명 장갑의 손가락이라 부르는 분홍색 병꽃 같은 꽃이 자주 눈에 뜨인다. 호수도 지나고 댐도 지난다. 자연과 함께 되어 걷는 호젓한 길이 좋다. 하늘도 맑고 푸르고 산 능선에 풍력발전기가 자주 보인다.
어제 길을 많이 걸었고 다음 알베르게는 인원수도 적어 점심시간을 조금 넘겨 일찍 알베르게에 들었다. 묵시아까지는 30km 남짓한 거리로 7~8시간 거리의 길이라 내일은 일찍 그 길을 걸어 보리라 생각했다. 첫 번째 순례자로 들어서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별로 할 일도 없다. 워낙 작은 동네라 근처에 마트도 없어 모든 것은 Bar에서 해결해야 한다. 주방에 주방기구도 있는데 가게가 없어 무용지물이다. 알베르게는 깨끗하고 좋았다. 여기서 피니스테라와 묵시아의 갈림길까지는 2km 정도 떨어져 있어 묵시아나 피니스테라를 가기 위해 하루 쉬는 데는 좋은 위치에 있다.
이 길에서 많이 만난 분홍색 병꽃을 찾아보니 이름은 '디기텔레스'로 일명 '장갑의 손가락'으로 부르기도 한다. 꽃말은 '가슴속의 생각'으로 그 의미는 '거짓 사랑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지 않나요?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일 것입니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단다. 참 별스러운 꽃이다.
조용한 오후에 그간 순례길을 뒤돌아 보는 시간을 만들어 보았다. 사랑을 하면 그냥 하면 되는데 내가 사랑한 만큼 되돌려 받으려는 마음이 나를 힘들게 한다. 주는 사랑으로 끝내면 되는데 준 만큼 돌려받으려는 그 마음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집착이다. 그 집착의 끈을 놓아 버리는 순간 나는 행복해지는데 왜 그걸 놓지 못하는가. 상대를 미워한다고 내가 행복해지는 게 아닌데 왜 미워만 하고 있었을까?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남으로 인해 내가 흔들리지 않은 내가 중심으로 살아가 사람이 되어 가길 소망해 본다. 혼자 있으니 생각의 시간이 많아서 좋다.
저녁도 혼자 카미노 메뉴로 비프스테이크와 파스타, 와인으로 9유로다. 여긴 고기가 질기지 않아서 좋다. 느지막이 일본인 순례자가 3명이 들어왔는데 다짜고짜로 '곤니치와' 한다. 내가 일본인으로 보이나? '와 다시와 간고 쿠진 데스' 나는 한국인인데 말이다.
내일 아침에는 좀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서야 한다. 묵시아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 대서양의 일몰과 일출이 기대되는 묵시아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고 성모 발현지로 성지의 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