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피니스테라 가는 길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나 배낭을 챙겼다. 순례가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다. 로마인들이 세상의 끝이라 생각했던 피니스테라를 가기로 했다. 그래서 동행인과 서로의 자유를 주기 위하여 헤어져 여행하기로 했다.
배낭을 챙기다가 옆에 있는 메모에는 "진통제는 놓고 가." 메모가 눈이 뜨인다. 다리가 아파서 피니스테라를 버스로 간다고 하더니 걸어 가려는가? 어둠 속에서 혼자 알베르게 문을 나섰다. 대성당으로 가는 길은 몇 번 다녀본 길이라 헤매지 않고 산티아고 시내를 벗어 날 수 있었다.
낮에는 순례자로 그리도 붐비는 광장이 어둠 속에 고요 속에 묻혀 있다. 시내를 벗어나면서 잠시 길을 잃어 헤매다가 노란 화살표를 찾아 다시 길을 잡았다. 점점 어둠이 걷히고 밝아 올 때 뒤를 돌아보니 산티아고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점점 작게 보인다. 이른 이른 아침에 나보다 먼저 길을 나선 분이 앞서 걸어간다. 배낭과 조가비 그리고 지팡이도 짚고 가는 행색이 순례자다.
통상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피니스테라까지 길을 걷는 순례자는 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버스를 이용하거나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순례를 끝내기 때문이다. 순례자도 없고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걷다 보니 자연히 함께 걷게 되었다. 갈림길이 나타나며 가끔 길을 잘못 접어들면 서로 알려 주면서 걸었는데 그는 에스빠뇰인이며 이름은 빼빼, 사는 곳은 바르셀로나 아래에 있는 발레시아에 살며 65세로 카미노 길을 다 걷고 마지막으로 피니스테라까지 걷는다고 하였다.
그는 길을 걸으면서 마을 풍경, 지명 이름, 다리 등을 빠짐없이 사진을 찍으며 걷는다. 그와 나는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길을 나섰기에 시장기를 느껴 바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걸어도 바르가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 마을 주민에게 뻬뻬가 알아보니 이 산 넘어 10여 분만 가면 작은 바르가 있단다. 역시 현지인과 길을 걸으니 좋긴 하다. 그래서 그와 함께 걸으며 스페인의 삶과 생각을 엿보기로 했다.
9시 50분경에 시골마을인 Carballo란 작은 바에 들어가 간식을 먹는데 뻬뻬는 커피에 보드카를 타서 마신다. 아침부터 술을? 그리고 한번 쉬었다 하면 40여분을 푹 쉰다. 그간 나는 잠시 10여분 쉬고 걷곤 했는데 나와 생각이 달랐다. 스페인의 바르는 동네 주민의 만남의 장소로 소일거리가 없으면 바에서 비노 한잔 혹은 커피에 양주를 칵테일 하여 홀짝홀짝 마시며 수다를 떨곤 하였다.
우리가 그곳에서 쉬고 있는데 뒤에 오던 순례자 세 팀이 지나간다. 졸급증이 있었지만 그네들의 생활을 보기 위해 오늘은 함께 하기로 하고 기다렸다가 함께 출발하였다. 네 그로아(Negreira)는 꽤 큰 도시이고 21km를 걸었으니 통상 여기서 하루 쉬고 가도 좋은 곳인데 너무 일찍 출발한 탓에 이른 시간이라 좀 더 걷기로 하고 마트에 들려 먹거리와 간식을 준비하여 길을 나섰다.
오늘 이곳이 우리네 장날인지 인근 마을에서 생산된 치즈나 과일, 채소, 곡식 등을 파는 천막이 줄지어 있다. 잠시 둘러보고 언덕을 올랐다. 스페인 여자분이 타이즈 같은 바지를 입고 걷는 속도가 활달하게 빠르다. 그같이 속도를 높여 걸으니 함께 걸을 수 있었다. 에스빠뇰들은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그런 모습을 본다.
네그로아를 지나 샘터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뻬뻬는 양발까지 훌렁 벗고 발까지 씻는다. 그리고 빵을 꺼내 나이프로 배를 갈라서 치즈와 하몽을 넣고 그걸 점심식사로 한다. 네그로 아를 지났으니 다음 알베르게는 35km 지점에 가야 있다. 평범한 농촌길 유칼립투스가 많은 숲길의 오름과 내림을 많이 거치면서 걷는데 순례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야세리오(Villaserio)에 다 달으니 무니시팔 알베르게가 있다. 그런데 아무도 없고 관리자는 앞집의 아주머니이신데 스탬프를 가지고 오신다. 사용료는 도네이션이라고 하여 5유로씩 내고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가니 시설이 달랑 침대만 있고 아무 시설도 없고 썰렁하기 짝이 없다. 식사는 1km 전에 있는 알베르게에 가서 이용하라고 한다. 도저히 이곳에서는 잘 수가 없을 것 같아 다시 길을 나서는데 빼빼는 아까 준 5유로를 받아 온다.
이제 다음 알베르게는 8.1km를 더 걸어야 한다. 2시간 거리이니 서둘러야 하겠다. 앞으로 학생들이 30여 명 순례길을 걸어가는데 부지런히 걸어 그들을 앞서 산타 마리나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 알베르게가 Full이라 한다. 오늘 잠자리는 어떡하지? 사정하고 식당 바닥에라도 재워 달라고 할까? 뻬뻬가 있으니 같이 따라가면 되겠지 하고 시장하여 우선 허기를 면하려고 간식을 먹고 있으니 뻬뻬가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 나에게 와서 여기는 Full이라 잘 수 없으니 인근 숙박시설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동은 차로 하고 내일 다시 차로 여기에 데려다준다고 한다. 숙박비는 50유로인데 1인당 25유로씩이라고 한다.
잘 되었다고 좋다고 하고 벤츠 승용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이곳의 사람들은 여가생활을 를 어떻게 보내고 숙소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숙소는 순례길에서 많이 떨어진 곳으로 다른 순례자 2명을 더 싣고 도착한 곳은 산아래 작은 호스텔이었다. 스페인어를 모르니 뻬뻬가 알아서 식사를 주문하는데 그래도 스페인어의 느낌으로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15유로로 그리 비싸진 않다. 비노까지 포함인데 통상 스페인의 식단에는 으레 비노는 술의 개념보다는 음료의 느낌이다.
보통 스페인 사람들이 이용하는 평범한 숙소다. 방은 깨끗한 침대로 싱글 침대 2개다. 그런데 여긴 난방을 가동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리 춥다는 느낌은 없는데 샤워 때는 따뜻한 물은 잘 나왔다. 뻬뻬는 뭘 하는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마 한잔하며 수다를 떨고 있을게 분명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랬다. '여행은 계획대로 다 되면 그건 이미 여행이 아니라고.' 오늘도 우여곡절이 많은 하루다. 밤이면 기온이 많이 떨어지는데 숙소를 구하지 못해 결국 여기까지 왔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지 못하는데 지난 일은 다 잘된 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뻬뻬를 만난 것도 숙소가 없어 여기까지 온 것도. 다 잘된 일이다. 지난 일에 대해 후회해도 일어난 일에 대해 바뀌지도 않는데 마음만 상할 일이 없고 지난 일은 다 좋은 것이고 잘된 일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오늘은 순례길에서 가장 오래 걸은 날이고 가장 많이 걸은 날이다. 아침 5시 20분부터 저녁 5시까지 걸었다. 절로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 깔리는데 일기를 쓰고 기다려도 뻬베는 돌아 올 생각을 않기에 밤 10시가 넘어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도 어느 날과 같이 걸어야 한다. 집 떠난 지 한 달이 넘었다. 꿈속에 잠시 서울 집에나 다녀왔으면 좋겠다. 잘들 있는지 궁금해지는 밤이다.